어린 자녀를 잃어버린 뒤 행방이 묘연해 생사를 알 수 없었던 부모가 DNA 검사를 통해 최근 성인이 된 자녀를 30년 만에 극적으로 만났다.
A씨는 1987년 3월 경남 밀양에 있는 큰 집에 제사를 지내러 갔다가 5살 B양을 잃어버렸다.
딸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수소문해봤지만 헛수고였다.
시간이 오래 흐르면서 A씨의 남은 가족이던 남편과 아들마저 사망하면서 곁을 떠났다.
2016년 7월 B양 실종사건을 맡게 된 경남경찰청 장기실종전담반 심성배 경사는 당시 신고자였던 A씨를 찾아다녔다.
A씨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주변을 탐문한 결과 A씨도 건강이 좋지 않아 대구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A씨는 심 경사에게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딸을 찾느라 고생 많았다. 이제 그만 실종사건을 종결해 달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심 경사는 실낱같은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B양이 가족력 등으로 장애시설에서 생활할 수 있다고 판단한 데다, 관련법에 따라 보호시설에 있다면 B양의 DNA가 데이터베이스에 보관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심 경사의 간절한 설득에 결국 A씨는 자신의 DNA 검사를 의뢰했다.
이 결과 일치하는 DNA를 발견, A씨는 30년 만에 꿈에 그리던 딸의 행방을 찾을 수 있었다.
지난 3일 이들 모녀는 극적으로 상봉했다.
5살이었던 어린 딸은 37살의 어른이 돼 있었다. B양(지적장애 1급)은 그동안 자신의 이름도 모른 채 다른 이름으로 30년 넘게 살아왔었다.
A씨는 딸을 어루만지며 하염없이 눈물만 쏟았다.
이런 기적 같은 일은 또 있었다.
C(12)군은 1986년 9월 학교 운동회에 간다고 집을 나선 뒤 그 길로 행방이 묘연해졌다.
C군 부모 역시 경찰에 신고를 하고 아들을 찾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지만 끝내 찾질 못했다.
이 사건 역시 2016년 12월 C군 아버지가 사망해 호적정리를 위해 재신고 되면서 지난해 12월 심 경사가 맡게 됐다.
C군 어머니인 D씨는 아들의 생사를 걱정하며 생업을 포기한 채 반평생을 노심초사하며 지냈다고 심 경사에게 토로했다.
그러면서 “죽기 전에 아들을 한 번 보는 게 소원이다. 그저 생사만이라도 알고 싶다”고 눈물로 호소했다.
지난 1월 D씨의 DNA를 채취해 분석한 결과 아들(44‧지적장애 2급)이 서울의 한 보호시설에서 다른 이름으로 지내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안타깝게도 아들을 보기 전 어머니는 뇌경색으로 쓰러져 C군의 누나가 40을 훌쩍 넘긴 동생을 만났다.
누나는 연신 “미안하다. 고생 많았다”고 동생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심 경사는 “실종아이들이 보호시설에 있는 동안 새로운 주민번호 부여 등의 목적으로 DNA를 채취하는데, 다행히 일치하는 DNA가 확인돼 가족이 극적으로 상봉할 수 있었다”며 “세월이 한참 흘러 만나게 됐지만 실종자 가족들의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 드리게 돼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경남경찰청은 이 공로를 인정해 심 경사에게 표창을 수여할 계획이다.
현재까지 경남경찰청에 집계돼 있는 장기실종자는 17명이다.
경찰은 2016년 3월부터 장기실종전담반을 구성, 1년 이상 경과한 실종아동 등을 찾기 위해 집중 수사하고 있다.
창원=강승우 기자 kkang@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