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을의 눈물’을 닦기 위해 전방위적인 현장조사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임원들의 대기업 취업청탁 등이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빛이 바래게 됐다.
◇ 규제·개혁 속도… ‘공정거래법 특위 개정안’ 초읽기
27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공정위는 일감몰아주기와 가맹본부-가맹점간 불공정 거래행위 등과 관련된 규제의 고삐를 강하게 쥐고 있다.
오는 29일 최종 발표에 앞서 공개된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특별위원회의 개정 초안에는 대기업집단 지정제도 개편과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 공익법인 의결권 제한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번 개정안은 2015년 각계 의견을 수립해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시행된지 불과 3년만이다.
제계는 대기업 공익법인 등이 소유한 계열사 지분 의결권을 5% 이내로 제한해야한다는 점에서 난색을 표하고 있다. 현재 총수일가 지분이 30% 이상인 대기업 계열사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받게 돼있다. 특위는 이 기준을 비상장사 기준인 20%로 맞추자고 강조하고 있다. 현제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총수 일가 지분을 29% 수준으로 맞춘 계열사는 10% 가까운 지분을 처분해야 한다.
여기에 특위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계열사의 지분을 50% 넘게 보유한 자회사도 새롭게 규제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보고 있다. 공정위가 이러한 초안을 받아들일 경우 규제 대상 회사는 203곳에서 441곳으로 대폭 늘어나게 된다.
이와 함께 총수일가 지분율 산정시 직접보유지분 외 간접보유지분도 포함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 6월 규제확대에 대한 청사진을 공개하면서 ‘규제 사각지대에 대한 보안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총수일가가 규제 직전까지 지분을 보유하는 것을 일종의 ‘꼼수’로 판단한 것이다.
이밖에 지난 17일에는 세븐일레븐과 이마트24 등 편의점 본사에 대한 현장조사도 진행했다. 공정위는 이 두 본사가 가맹점주에게 부당한 부담을 떠넘긴 혐의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가맹점주에게 불필요한 품목을 구입하도록 강제했거나 광고비를 점주에게 떠넘기는 등의 불공정 거래 행위가 있었는지를 확인하고 있다.
이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16일 기자간담회에서 가맹점주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본부의 불공정 행위에 대한 조사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힌 지 하루 만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외식업·편의점 분야 6개 가맹본부를 대상으로 현장조사를 착수했다”고 말한 바 있다.
또 “앞으로 200개 대형 가맹본부와 1만2000개 가맹점을 대상으로 서면조사를 벌여 가맹시장 법 위반 실태를 더 상세히 파악하겠다”고 강도 높은 조사에 대해서도 시사했다.
이보다 앞선 3일에는 공정위 기업집단국은 삼성전자 수원 본사와 삼성물산, 삼성웰스토리 등에 대한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조사관들은 이들 계열사의 내부거래 실태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했으며, 이를 토대로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삼성 계열사에 대한 현장조사 역시 지난달 말 공정위가 대기업집단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규제 도입 이후 계열사 간 내부거래 실태변화 분석결과를 발표한 이후 진행된 것이다.
◇ 주체에서 대상으로… 빛 바랜 개혁
그러나 공정위의 이러한 개혁 행보는 암초를 만나게 됐다. 전직 공정위 임원들의 대기업 취업은 물론 이 과정에서 조직적인 청탁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또한 대기업에 대한 사건 축소 의혹도 여전히 미결로 남아있다.
이러한 의혹들은 문재인 정부 기조에 맞춰 ‘공정한’ 시장환경을 만들겠다는 공정위의 본질을 훼손하는 문제다.
지난 26일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이날 정재찬 전 공정위원장과 김학현 전 공정위 부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에 따르면 정 전 위원장 등은 공정위 운영지원과가 4급 이상 퇴직자들 명단을 관리하게 하면서 민간기업에 퇴직자들의 취업을 강요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공직자윤리법상 4급 이상 공무원은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 부서의 업무와 관련이 있는 곳에 퇴직 후 3년간 취업할 수 없다.
검찰은 공정위의 조직적인 퇴직간부 취업알선이 현재 김 위원장 취임 전까지 관행적으로 이뤄졌으며 운영지원과장과 사무처장, 부위원장을 통해 위원장에게까지 보고된 정황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공정위 핵심 간부들이 브로커 역할을 맡은 셈이다.
이들은 대기업에 퇴직자들의 취업 청탁을 하면서 행정고시 출신은 2억5000만원, 비고시 출신은 1억5000만원 안팎이라는 실질적인 연봉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검찰은 공정위가 기업들의 주식소유 현황 신고 누락 등을 인지하고도 제재하거나 형사고발을 하지 않은 채 사건을 종결한 사실과 관련해 해당 기업과의 유착여부도 들여다보고 있다.
‘김상조號’ 역시 이러한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만은 없다. 김 위원장은 올해 1월부터 퇴직심사 대상을 7급 이상 공무원으로 확대했다. 또 퇴직 전관과의 만남을 막는 ‘로비스트법(외부인 접촉관리규정)’을 제정해 시행해왔다. 그간 내부적으로 이뤄져온 ‘관행’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는 이유다.
앞서 김 위원장은 검찰의 공정위 압수수색과 관련해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공정위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지 스스로 점검하고 반성하는 내부 노력을 더 하겠다”면서 “수사에 성실히 임할 것이고 결과가 나온다면 겸허히 수용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조현우 기자 akg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