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꿈틀대는 의료전달체계 개편 논의

다시 꿈틀대는 의료전달체계 개편 논의

의원 공동화현상 심화에 의사협회 TF 구축… 개편가능성은 ‘글쎄’

기사승인 2018-07-28 08:41:35

우리나라 의료서비스 공급 및 이용 행태를 새롭게 정립하는 의료전달체계개편논의가 다시 시작될 전망이다. 국회의 요구에 보건복지부가 응답했고, 전달체계 개선 합의문 작성을 거부했던 대한의사협회가 내부적인 의견수렴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하지만 의료전달체계 개편의 한 축을 담당하는 대한병원협회는 여전히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데다, 국민여론이 의료계가 내놓을 전달체계 개선안을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가운데 환자들의 대형병원 쏠림이 심화되고 있다.

보장성 강화? 같은 질환에 돈 더 쓰는 환자들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 일명 문재인 케어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기대가 잘못된 방향으로 표출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보건당국이 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혹은 의료비 부담 완화를 중점적으로 알리며 부작용이 표면으로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실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18년도 1분기 진료비통계지표에 따르면 건강보험 진료비가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12% 이상 증가했다. 문제는 상급종합병원의 증가세가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1분기 상급종합병원 진료비는 통 22801억원으로 지난해보다 41.43% 늘었다.

심지어 이대목동병원의 상급종합병원 탈락에 따라 43개소였던 상급종병이 42개소로 줄었음에도 건강보험 진료비는 오히려 급증했다. 반면 의원급 의료기관의 건강보험 진료비는 20171분기와 비교해 8.72% 증가했다. 의료기관 종별 증가율 중 가장 낮은 수치다.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변화는 더욱 심각하다. 2018년도 1분기 요양급여비용을 입원과 외래로 나눠 살펴보면 상급종병은 전년 동기 대비 64.1%11.43% 상승했다. 같은 기간 종합병원은 16.83%8.89%, 병원은 9.24%9.01%, 의원은 1.61%9.53% 늘었다.

내원일수도 여타 종별이 상급종병의 증가율을 따라갈 수 없는 수준으로 변했다. 수치로는 상급종병의 입원과외래 내원일수 증감률이 각각 49.37%3.85%, 종병이 4.75%2.76%, 병원이 5.15%2.66% 증가했다. 이에 반해 의원의 입원일수는 5.81%가 줄었고, 외래방문일수도 1.62% 늘었을 뿐이다.

이는 진료비 통계지표 상 환자들이 의원급 의료기관보다 상급종합병원으로 몰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빅5로 불리는 한 대학병원의 경우 지난해보다 환자가 급격히 늘어, 갑작스레 복수가 찬 암 환자가 치료를 위해 입원하는데 1주일 이상 기다려야 하는 일도 있었다.

이와 관련 한 의료계 관계자는 문재인 케어에 대한 기대감으로 인해 환자들의 상급종합병원 쏠림현상이 극심해지고 있다. 전달체계가 무너진 것이라며 환자는 동일한 질환에 더 많은 의료비를 내며 일주일씩 기다려 상급종병에서 의원과 유사한 질의 진료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달체계 개편 공감대는 형성, 하지만

이에 서울시개원내과의사회(회장 박근태)는 지난달 24‘22회 학술대회에서 선택진료비 폐지로 인해 외래진료의 경우 2~3시간을 기다려야하는 등 혼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현재 경증환자까지 의원에서 진료의뢰서를 받아 상급종병을 가는 상황이라며 전달체계 붕괴를 우려했다.

그는 또, “현재 의료전달체계는 역주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내과나 외과 등 각과를 떠나 단계별로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 전달체계 개편 필요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1차의료기관을 거쳐 2~3차로 갈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한다고 제안했다.

대한의사협회(회장 최대집, 이하 의협)도 이 같은 상급종병 환자쏠림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에 공감하며, 지난 25일 상임이사회를 통해 의료전달체계 개선TF’를 구성하고 내부적으로 전달체계 개편을 논의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의료전달체계 개선 TF는 총 15명 내외로 구성되며 위원장은 안치석 충북도의사회장이 맡을 예정이다. 이와 관련 정성균 의협 기획이사 겸 대변인은 의료전달체계가 많이 잘못돼 있다. 1차에서 3차로 심각한 쏠림이 진행돼 의원의 공동화현상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라며 의료전달체계 개편을 위해 내부적인 조율부터 시작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능후 장관 또한 지난 25일 열린 보건복지부 국회 업무보고에서 의료전달체계 개편 논의를 다시 추진할 생각이며, 이와 별도로 1차 의료기관은 만성질환과 경증질환 중심, 대형병원은 입원과 중증질환 중심으로 가도록 수가를 개편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복지부 또한) 상급종합병원으로의 환자쏠림을 우려하고 있다. 전달체계 개선을 위해 지난 1년간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했으나 합의문 작성단계에서 무산됐다더 노력해 전달체계가 개선된 상황에서 문재인 케어가 시행되도록 준비하겠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당사자(병의원 등 의료계) 간 합의에 기초한 전달체계 개편을 시도해 큰 틀은 합의가 됐지만 미세한 부분에서 합의가 안됐다의원급 입원실을 인정하느냐 마느냐는 작은 문제로 부딪쳤다. 그 문제를 정리하면서 빨리 합의를 하도록 하겠다고 의지를 피력했다.

전달체계 개편에 대한 온도차 극명속도가 문제

이처럼 의료계와 정부가 개선의지를 보이며 공감대를 형성함에 따라 의료전달체계 개편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여전히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모습이다. 당장 이해당사자 중 하나인 대한병원협회(회장 임영진, 이하 병협)의 태도가 미온적이다.

병협 관계자들은 전달체계 붕괴조짐에 대해서는 인지하면서도 대내외적으로 의료전달체계 개편을 위한 논의가 구체적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을 공통적으로 내비쳤다. 시민사회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쉽지 않고, 국내 의료서비스 이용행태의 명확한 방향이 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구체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하기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한 관계자는 환자 입장에서 같은 돈을 주고 더 좋은 시설과 서비스를 받겠다는 것을 누가 막을 수 있느냐고 반문하며 실질적으로 전달체계를 개편하는 문제는 의료서비스의 공급과 이용 전반을 갈아엎는 대수술이다. 의료계 내부적으로도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특히 의료기관의 기능재정립의 해결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지금의 1, 2, 3차로 나뉜 의료기관 종별기준을 유지하고는 전달체계 개편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힘들다면서 결국 의료기관의 기능을 세분화하고 정립해 환자의 이용을 제한해야하는데 정부가 추진하는 수가위주의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장관의 설명처럼 의원급 입원실의 존폐나 수가 중심의 개편만으로는 전달체계 개편은 불가능하다는 관측이다. 크게 내과와 외과, 의원과 중소병원, 중대형병원과 종합병원, 요양시설과 요양병원 간의 이해관계를 모두 조율해야하고, 각 종별, 진료과별 환자 이용행태를 제한하거나 조절하는 것이 논리만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또 다른 고위 관계자는 문재인 케어 시행을 위한 의료전달체계 개편의 적기는 지난 1월이었다. 의료계가 기회를 걷어차 이미 늦어졌고, 환자와 시민사회의 감정도 좋지 않은 상황이라며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조속한 개편이 필요하지만 대내외적 환경이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여기에 전달체계 개편의 포괄적 논의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정부가 주장하고 추진하는 커뮤니티 케어의 실체가 없다. 단순히 지역사회 돌봄 체계를 만든다고 될 일이 아니다. 1, 2, 3차 의료기관의 전달체계를 개편하기도 어렵지만 환자를 보내고 돌아오는 지역중심 복지체계와도 함께 고려해야하는 문제라며 난제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의협 또한 개편의 속도에 대해서는 부정적 견해를 내비쳤다. TF 구성 등이 마무리되는 8월 중순경 논의를 시작할 계획이며 내부적 입장정리와 의견조율 과정을 거쳐야하는 만큼 시급하게 개선안을 만들기는 힘든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더구나 병협과 각 진료과목의 입장을 조율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은 만큼 1~2년으로는 가시적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부연했다.

실제 정 대변인은 메르스 이후 시민단체, 복지부, 병협 등이 모여 2년간 많은 의견을 나눴지만 의견을 좁히는데 실패해 권고안이 무산됐다실패한 경험을 바탕으로 의견을 좁혀가겠지만 병원과 상급종병, 국민 등의 시각차를 좁힐 부분이 굉장히 많아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고 답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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