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영리병원의 개설여부를 결정하는 의사결정이 8월 중 마무리될 전망이다.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원희룡)는 10여년을 끌어온 논쟁을 어떻게든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영리병원 설립에 대한 의견은 여전히 팽팽히 맞서는 분위기다.
현재 녹지국제병원은 서귀포시 토령동 제주헬스케어타운에 세워져있다. 제주도에 따르면 모든 공정이 마무리돼 시설 및 설비까지 갖춰져 있으며, 일본인과 중국인, 한국인으로 구성된 의료진과 코디네이터 등 130여명의 인력이 고용돼 개설허가가 떨어지면 즉시 진료가 가능하다.
문제는 병원의 성격이다. 녹지병원은 외국자본이 투자를 목적으로 설립하는 병원이다. 즉, 국내법 상 허용되지 않는 영리추구적 진료가 특별법에 의거해 가능해지는 셈이다. 이에 국내 자본의 우회투자, 비영리 의료법인과의 형평성, 건강보험제도의 붕괴 등이 우려되고 있다.
특히 무상의료를 주장하는 등 공공의료 강화를 요구해온 시민사회단체가 중심이 돼 영리병원 설립을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정부도 의료는 공공재적 성격을 띠는 행위로 영리적 목적을 우선해서는 안 된다는데 동의하며 영리병원 설립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외면해왔다.
그러나 외국인의 국내 투자 활성화를 통해 해외자본유입을 유도해온 지난 정권들에 의해 특별법이 마련됐고, 외국인 자본을 앞세운 영리 목적 의료기관의 설립이 가시화되며 몇 번의 시도와 좌초가 반복된 지금 녹지국제병원의 개설을 코앞에 두게 됐다.
더구나 영리병원을 추진해온 보수정권에 적을 뒀던 원희룡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제주도지사를 연임하며 녹지국제병원의 설립에 힘이 실리자 의료의 영리화를 막아서려는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대 목소리는 높아졌고 충돌은 격화됐다.
이에 원 지사는 지난 18일 사안을 공론화해 민의를 최대한 반영해 더 이상의 잡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며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를 구성, 녹지국제병원 개설허가 여부에 대한 권고안을 오는 8월 말까지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과정에서 최대한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30일에는 제주시에서, 31일에는 서귀포시에서 도민 토론회를 열어 찬성과 반대 의견을 충분히 청취할 수 있도록 했다. 이후 3000명을 대상으로 전화설문 형태의 공론조사와 200명의 참여단과 위원회가 2~3일간 의견을 모으는 워크숍을 열 계획이다.
◇ 찬성, “의료의 선택권 존중해야” vs 반대, “의료의 공공성 확보해야”
고리원전 가동문제를 두고 주민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하겠다며 추진했던 숙의공론조사의 형태와 유사한 의사결정과정으로 진행된 제주도의 의견수렴은 30일 제주시 도민토론회로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뜻에 맞춰 녹지병원 개설을 둘러싼 찬성과 반대 입장은 팽팽히 맞섰다.
개설을 찬성하는 입장을 피력한 신은규 동서대학교 보건행정학과 교수와 장성인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고태민 전 제주도의회 의원은 의료서비스를 선택할 자유를 국민에게 보장해야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반대 입장을 내건 오상원 제주도 보건의료정책 심의위원회 위원, 홍영철 제주참여환경연대 공동대표,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대표는 의료의 영리화에 따른 공공성 훼손을 이유로 들며 보편적 의료보장과 서비스 질 확보를 위해 주장했다.
요약하면 이들의 논쟁은 ‘자유’와 ‘보편성’의 충돌이었다. 신은규 교수는 의료 선택권 확대를 위해 영리병원을 허용해야한다고 봤다. 비용을 환자가 모두 부담하며 그렇게 마련된 이윤이 제대로 쓰일 수 있다면 오히려 도민이나 국가에 이득이라는 입장이다. 게다가 절차상 하자가 없고 개설을 위한 모든 구성을 마무리한 만큼 승인을 해야 한다고 봤다.
반면 반대 입장을 피력한 우석균 대표는 태국 등의 사례를 들며 영리를 추구함에 따라 발생하는 의료서비스의 질적 하락과 주변 비영리병원의 의료비 동반상승에 따라 전체 의료비가 증가하는 부작용을 문제 삼았다. 여기에 영리병원 개설로 발생하는 비영리 민간의료기관과의 형평성 문제, 영리법인 설립에 따른 실익문제를 거론하며 비영리법인으로의 전환을 촉구했다.
◇ 제주도민과 대한민국 국민을 위한 선택은?
전문가들과 같이 도민들의 의견도 찬성과 반대로 나뉘는 모습이다.
찬성측은 병원설립에 따른 일자리 창출효과와 세수증대에 대해 언급했다. 녹지병원의 경우 인력의 80%를 도민으로 구성했으며, 병원 수익의 일부가 세금으로 걷혀 도민 전체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쓰일 것이라는 의견이다.
영리병원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투자가 이뤄질 것이며 결과적으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선택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릴 것이며, 절차상 문제가 없이 진행돼온 사업이 좌초될 경우 제주도와 정부에 대한 국제적 신뢰도가 떨어질 우려가 있다는 풀이도 내놨다.
50개가 채 안 되는 병상을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만 제공할 경우 국내 보건의료체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여지가 거의 없으며, 대내외적 신뢰도를 높이고 국내 의료서비스 수준을 해외에 알릴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반대로 영리병원인 녹지병원의 개설을 고민하기에 앞서 도내 3개만이 존재하는 공공의료서비스를 확대해야한다는 의견부터 영리병원 개설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 영리병원의 확산, 필수의료서비스 부족현상에 대한 우려를 표하며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심지어 투자 이상의 수익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영리병원에서 양질의 일자리와 의료서비스가 제공되기는 어렵다는 판단에서 도민의 건강과 생활을 위해서라도 녹지병원을 국내 비영리 대학병원 등이 인수하는 방안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와 관련 제주도 관계자는 “아직 1번의 토론회로 찬반으로 대립하는 의견을 하나로 모으기는 어렵다. 토론회도 최대한 도민들이 찬성과 반대 입장을 청취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자리”라고 토론회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어 “1번의 토론회와 설문조사, 워크숍 등을 통해 8월 중 발간될 숙의공론조사위원회 보고서를 객관적으로 검토해 개설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며 “모든 과정은 투명하게 공개되고 도민의 뜻을 최대한 수렴해 진정 도민과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결론이 날 것”이라고 부연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