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편의점 등에서 판매가 가능한 안전상비의약품 13품목의 재조정을 둘러싼 논의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보건당국은 회의를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은 여전히 첨예하게 갈리며 일부 충돌양상도 보여 결론을 내기가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이 가운데 대한약사회는 오는 8일로 예정된 6차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조정위원회(이하 지정심의위)를 앞둔 2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1년5개월여 간을 이어온 논의를 지금이라도 중단하고 약사회와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자는 입장을 피력했다.
적어도 현행 제도 상 편의점에서 판매가 가능한 13개 품목 중 타이레놀과 부루펜시럽, 판콜에이, 베아제정, 훼스탈플러스, 신신파스아렉스 6개 품목을 제외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국회 등에서 언급된 겔포스 등의 폼목 추가는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만약 6차 회의에서 일련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수적 우위를 내세워 품목추가를 밀어붙인다면 강력한 투쟁으로 막아내겠다는 의지도 표명했다. 재벌유통업체의 배만 불리며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정책에 동조할 생각이 없다는 의지표현이었다.
약사회를 대표해 지정심의위에 참여해 온 강봉윤 정책위원장(사진)은 “기존 검토기준을 폐지하고 약사회와 협의체를 구성해 새로운 안전성 검토기준을 만들어 품목지정논의를 해야한다”면서 보건복지부를 비난하며 사안을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해야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5번의 회의 동안 국민의 편의라는 탈을 쓰고 의약품 부작용과 오남용을 조장하며 재벌유통업체의 배만 불린 정책의 문제점을 지속적이고 논리적으로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했지만 전혀 반영되지 못했다”면서 회의 진행과정에서의 문제점과 수용할 수 없다는 이유를 전했다.
실제 약사회는 국민의 건강을 위해 지방자치단체 시범사업으로 운영되고 있는 공공심야약국이나 달빛어린이병원과 연계한 달빛약국, 병-의원을 연계한 당번약국 등의 대안을 정부가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이며 전향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져야함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복지부는 일련의 대안에 대해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강 위원장은 “돈이 없다는 이야기만 한다”며 “진정 국민의 취약시간대 의약품 접근성과 건강을 걱정한다면 투자를 해야한다”고 비난했다.
이와 함께 약사회는 편의점 판매가 가능한 영국과 불가능한 프랑스의 부작용 사례건수를 비교할 경우 한 해에 영국은 아세트아미노펜 제제 복용으로 150명이, 프랑스는 16명이 사망했다는 사례와 국내 부작용 보고사례를 근거로 의약품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오남용에 따른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심지어 “직역이기주의, 밥그릇 싸움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몇 품목을 추가한다고 약국의 매출이 크게 줄어들지도 않는다. 대안을 내놓거나, 당장 제도를 폐지해야한다고도 주장하지 않는다. 취약시간대 의약품 접근성의 문제로 국민의 건강이 위협받을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며 약사들의 진전성이 전해지길 바라는 모습도 보였다.
한편, 강 위원장은 “편의점 판매약 품목확대를 소비자의 요구이자 국민여론이라고 주장하지만 허구와 같다. 3번의 공식적인 설문조사결과 품목확대를 원한다는 자료는 단 한 건도 나온 적이 없다. 위원과 정부도 알고 있다”면서 제도필요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어 고리원전 폐쇄조치와 관련 정부가 숙의공론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사안을 풀었던 선례를 예로 들며 “국민들이 안전상비약의 약국 외 판매에 대한 문제점과 장점을 충분히 숙지하고도 국민이 품목 확대를 원하고 제도가 필요하다고 한다면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더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