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김영란법’의 취지와는 다른 결과들이 전해져 아쉬움을 자아내고 있다.
김영란법에서 정하고 있는 경제적 이익의 상한을 넘는 등 위법행위가 적발됐음에도 기득권층에게 관대한 법적용이라는 우리사회의 병폐가 여전히 작동하는 듯 ‘기소유예’라는 이름으로 1번의 기회가 더 제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청탁금지법’은 2012년 국민권익위원회 김영란 위원장이 공직사회의 기강확립을 위해 발의한 법안으로 2015년 3월27일 제정됐다.
제정 당시 우리사회에 만연하는 금품수수와 향응제공을 차단하기 위해 공직자를 비롯해 언론인, 사립학교 교직원 등으로 대상을 확대하고 1회 100만원, 연간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았다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도록 규정했다.
만약 담당하는 직무와 관련된 경우에는 1회 100만원, 연간 300만원 이하의 금품을 받았다면 대가성에 관계없이 수수금액의 2~5배를 과태료로 물도록 했다. 식사와 다과, 주류 등 음식물은 3만원, 선물은 5만원, 경조사비는 10만원을 기준으로 경제적 이익의 상한도 제한했다.
이후 법안을 발의한 그 김영란 서강대 석좌교수는 “소수의 악당들이 저지르는 거대한 부정부채도 있지만, 다수의 선한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부정에 젖어드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입법취지를 설명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법이 시행된 지 3년여가 지난 지금, 법이 철저히 지켜지는 경우는 죄질이나 금액이 큰 경우를 제외하면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최근에는 ‘있으나 마나한 법’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달 국민권익위원회는 2016년 9월부터 올해 4월까지 1년 7개월간 유관기관으로부터 부당하게 경비를 지원받아 해외출장을 다녀온 공직자가 261명에 달한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기준과 근거가 불명확한 해외출장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는 국회의원 38명, 국회의원 보좌진 17명, 지방의원 31명, 상급기관 공직자 11명을 포함해 자신이 감독할 책임이 있는 피감기관이나 산하기관으로부터 지원을 받은 96명의 공직자가 포함돼 사회적 논란이 일었다.
이와 관련 한 칼럼리스트는 “공직자 부패의 질긴 악습과 망령이 되살아난 것”이라며 “아무리 법망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그물처럼 촘촘하게 법을 만들어도 위반한 공직자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면 법은 무력화되고 공직자 부패는 더욱 활개 치게 될 것”이라고 평했다.
문제는 이처럼 잘 알려진 공식적인 사안과 달리 제대로 알려지진 않았지만 김영란법이 무시된 사법부 판단들이 왕왕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법에는 분명 직무관련성과 관련 없이도 기준에 따라 형사처벌의 대상을 정하고 있지만 사법현장에서는 ‘인정(仁情)’이나 금액의 많고 적음 등을 따져 법집행을 하지 않았다. 때론 김영란법을 적용하지 않고 유사 법률을 적용해 처벌을 피하기도 했다.
2016년 12월, 정년퇴임을 앞둔 서울대병원 선배 의대교수에게 17명의 의사교수들이 70만원씩을 십시일반 모아 730만원 상당의 골프채를 선물했다 공익제보에 의해 검찰에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경찰은 명백한 김영란법 위반혐의를 적용, 이들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검찰은 선배교수를 비롯해 18명 모두를 지난해 11월 기소유예 처분했다. 이들 모두 김영란법 위반혐의가 인정되지만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었던 점, 퇴임선물을 제공하는 것이 의과대학의 오랜 전통이라는 등 정상참작 할 부분이 있어 한 번의 기회를 더 제공하기로 했다는 이유다.
최근에는 2016년 5월 서울 강남의 한 호텔 식당에서 의료기자재 납품업체 대표로부터 70만원 상당의 향응을 제공받은 한양대학교구리병원 보직교수 A씨 역시 김영란법 위반혐의로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지만, ‘기소유예’ 결론이 내려졌다.
이에 대해 사건을 담당한 의정부검찰청은 “해당 사건의 경우 3명이 식사 등의 비용으로 70만원이 나온 만큼 1인당 비용은 20만원정도에 불과하고 대가성으로 보기도 어렵다는 판단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확인된 바에 따르면 해당 납품업체는 사건이 발생한 5월로부터 3개월 후인 8월 한양대구리병원과 재계약을 앞두고 있었으며 A씨는 이에 대한 결제를 해야 하는 관리자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검찰은 해당 사항을 김영란법이 아닌 의료법상 리베이트 금지조항을 적용해 처분을 유예한 것으로 확인됐다. 의료법 23조2에서 정하고 있는 ‘부당한 경제적 이익 등의 금지’ 조항에는 수수금액이 300만원 미만일 경우 1차에 한해 경고조치를, 2차부터 면허정지 등 행정처분을 내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와 관련 한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의 결정에 대해 “수사과정에서 어떤 것들이 드러났는지를 좀 더 면밀히 파악해야겠지만, 금액이 크지 않고 기소유예 또한 범죄사실에 대한 이력이 남는 만큼 (이 같은) 처분을 내릴 수는 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다만 그는 개인적 견해를 전제로 “의료법으로 사안을 적용할 경우 처벌기준 금액의 범위가 크고 기소유예 등의 조치를 내리기에 보다 명확한 규정이기 때문”이라며 1번의 기회를 주는 경고 차원에서의 처분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어 “특별법 우선원칙에 따라 김영란법을 의료법에 앞서 적용해야하는지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며 “1번의 경고조치를 허용하고 있는 의료법 상 리베이트 조항을 적용할지, 원칙적으로 즉각적인 처분이 가능한 김영란법을 적용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보건복지부 또한 “의료법 상 리베이트 조항을 적용해 처분을 결정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아 보이지만, 김영란법과 리베이트 금지법이 같은 문제를 다르게 해석하고 처벌 기준과 정도 또한 다른 부분도 있어 여기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면서 검토의사를 밝혔다.
한편, 일련의 조치에 대해 한 보건의료계 종사자는 “보건의료의 경우 리베이트에 대한 별도 조항이 있어 김영란법을 만든 취지가 무색해지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며 “안 그래도 권력자에겐 관대한 처벌이 법률의 사각으로 인해 더 느슨해져서는 안 될 것”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