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짓거나 체념하거나…탈락자가 바라본 이산가족 상봉

눈물짓거나 체념하거나…탈락자가 바라본 이산가족 상봉

기사승인 2018-08-21 05:00:00

2년 10개월 만에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됐다. 1차 상봉 행사에 참여하는 남쪽 방문단은 모두 89명. 20일 금강산 호텔에서 오후 3시부터 2시간 동안 이뤄지는 단체상봉을 시작으로 2박3일 동안 총 11시간의 ‘짧고도 긴’ 재회의 시간을 갖는다. 이들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전파를 타는 동안, 부러움에 눈물짓는 사람들도 있다. 일부는 “어차피 당첨되지 못했을 것”이라며 체념하기도 했다.

장사인(78)씨는 569대1의 경쟁률을 뚫지 못한 이들 중 하나다. 올해가 21번째다. 장씨는 이번에도 100명 안에 들지 못했다. 이산가족 상봉 후보자 추첨 당일 서울 중구 대한적십자사를 방문했던 장씨. 떨어진 게 처음이 아니지만 속상한 마음은 가눌 길이 없었다. “이번에는 혹시 될까 싶어 따라갔는데….속상함에 우울증도 심해졌어요” 옆에서 장씨의 아내 이명순(70)씨가 눈물을 글썽였다.

68년만의 만남. 장씨에게는 꿈같은 얘기다. 장씨 고향은 전북 진안이다. 13살 위 큰형은 6.25 전쟁 발발 1년 전 자진입대했다. 그리고 국군포로가 돼 납북됐다. 지난 2008년, 장씨는 중국 브로커를 통해 형의 편지를 받았다. 2013년에는 형을 만나러 중국으로 갔지만 재회에 실패했다. 집에 돌아온 장씨를 기다린 건 형이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이제는 조카라도 만나는 게 소원이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진행된 날, 서울 동작구 사당동 자택에서 장씨를 만났다. 장씨는 이산가족 상봉 방송 중계를 매번 빠짐없이 챙겨봤다. 처음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울컥 치밀어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 이후부터는 덤덤해졌다고 했다. “매번 보는 방송, 항상 똑같지 뭐”라고 무심히 그가 말했다.

오후 4시35분. 애초 예정됐던 시간보다 35분 늦게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생중계가 시작됐다. 장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 TV 앞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화면에 빨려 들어갈 듯 집중했다.

남측 가족들의 행사장 입장이 TV 화면에 나왔다. 장씨는 “하 참 저렇게 많이 갔네” 라며 말을 흐렸다. 피난길에 헤어진 4살 아들과 재회한 이금섬(91·여)씨가 화면에 나오자 “이렇게 만나니까 얼마나 좋겠어. 표정이 참 밝네”라며 “어째 아들이 더 나이를 먹은 것 같네”라고 말했다. 재회의 기쁨에 자매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오자 “닮았네 닮았어”라고 읊조렸다. 북측 가족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 보따리가 방송에 나오자 장씨는 “별거 다 샀네”라며 “예전에는 선물은 소개를 안 해줬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장씨 표정에는 부러움, 원망이 뒤섞여있었다. 

장씨는 만약 조카를 만난다면 가장 먼저 얼굴을 살펴보고 싶다. 형을 닮았는지 확인하고 싶어서다. 남쪽 가족들의 사진도 챙겨갈 생각이다. 또 형이 어떻게 살았는지, 조카들에게는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묻고 싶다. 

“상봉단 규모를 늘리고 더 자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통일하자 어쩌고 하면서도 왜 우리를 못 만나게 하나. 총 들고 싸우는 것도 아닌데” 장씨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는 “원망스러운 감정도 있고.... 지금 속상한 사람 엄청 많을 것”이라며 “나는 만날 수 있을까 부럽다”고 털어놨다.

장씨는 북측 나름의 사정이 있는 것도 이해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생중계 방송 중 녹화 스튜디오에 출연한 교수가 북쪽에서는 이산가족들을 사전에 집결시켜 교육 시키고, 끝나고 나서도 사후교육을 시키는 등 상당히 정치적으로 부담이 가는 행사라고 설명하자 장씨는 “그러니까 많이 못 해”라고 말하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장씨는 혹시라도 피해가 갈까 봐 북쪽 조카들의 사진이 공개되는 것도 조심스러워 했다.

“바랄 게 뭐가 있어. 그저 만날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만나는 것이지” 장씨는 다음 이산가족행사도 신청할 예정이다. ‘조카 만나면 많이 우시겠네요’ 질문에 “울긴 왜 울어.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운다고 했다”고 답하던 장씨. 눈가에는 물기가 어렸다.

이산가족 일부는 “어차피 당첨되지 못했을 것”이라며 체념했다. 같은 날, 서울 중구 남북이산가족협회 사무실에서 TV로 상봉장면을 지켜보던 최지윤(81)씨는 “전부 우리 또래네”라며 운을 뗐다. 5분 정도 상봉 장면을 지켜보다 이내 볼륨을 줄였다. 화면에서 아예 시선을 뗐다. 최씨 주변의 이산가족 중 이번에 상봉대상자가 된 이는 없다. 최씨는 “‘로또’나 다름없다”며 “5만여명의 이산가족 중 100명만 당첨되는 것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이산가족 상봉에 당첨될 것이라는 기대도 거의 없다”고 전했다. 

최씨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다. 그는 지난 1991년 중국을 거쳐 북측에 있는 남동생과 서신을 주고받는 데 성공했다. 부모님의 사망소식과 살아온 과정 등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순탄히 연락을 주고받지는 못했다. 지난 2001년 드문드문 주고받던 연락이 끊겼다. 지난 2016년 다시 연락이 닿았지만 어느 순간 답신이 오지 않았다. 남동생의 마지막 편지에는 ‘병을 앓고 있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최씨는 “소식을 알지 못해 답답하다”며 아쉬워했다.

함께 사무실에 앉아있던 김경재(87) 남북이산가족협회 회장은 상봉에 전혀 무관심한 듯 했다. 책상 앞에 앉아 모니터만 바라볼 뿐이었다. 김 회장도 북측 가족과 연락을 주고받기 위해 자구책을 찾은 사람 중 한 명이다. 김 회장은 지난 91년부터 북측 가족과 서신을 주고받고 있다. 다만 상봉 대상자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드러났다. 그는 “북측 가족의 소식을 알다보니 만나야겠다는 절박한 감정은 없었는데 좀 아쉽긴 하다”며 “나한테도 북에 있는 동생과 얼굴을 마주할 기회가 올까”라고 토로했다.

이날 최씨와 김 회장 등은 “정부가 이산가족의 생사확인과 공식적인 서신 교환, 상시적인 상봉을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이산가족의 생사확인을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첫째는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로 당첨돼 북측 가족의 생사여부를 대한적십자사로부터 전해 듣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이산가족 당사자가 브로커에게 수수료를 주고 직접 알아보는 방식이다. 그러나 브로커 등과 연락을 취할 방식을 알지 못해 애만 태우는 이산가족이 부지기수다. 서신 교환도 마찬가지다.

심구섭 남북이산가족협의회 대표는 “북한에서도 스마트폰 이용이 가능하다. 직접적인 만남이 어렵다면 스마트폰을 이용한 화상통화 등의 방법이 강구돼야 한다”며 “남측에 생존해 있는 5만6000명의 이산가족 중 1만2000명은 90세 이상의 노인들이다.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진 오늘도 누군가는 가족을 그리다 돌아가셨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했다. 

민수미, 정진용, 이소연, 김도현, 신민경 기자 min@kukinews.com/ 사진=박효상, 박태현 기자 tina@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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