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에서 벌어진 생일파티, 간호조무사와 간호사의 불법 시술, 유령수술로 불리는 담당 집도의가 아닌 제3자의 대리수술, 수술실에서 일어난 각종 성추행과 폭력 등, 허가된 소수만이 출입할 수 있는 곳에서 다양한 일들이 지금도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내부고발자가 없는 한 수술실에서 벌어지는 각종 불법적 행위들을 알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히 집단문화가 발달된 사회에서는 그마저도 나오기 힘든 구조다. 이에 2015년 1월, 최동익 19대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은 일련의 문제를 법으로 해결하려했다.
최 前 의원은 “환자의 권리를 보호해야한다”며 쉽게 드러나지 않는 수술실에서의 불법행위를 막기 위해 환자가 요청할 경우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으로 촬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에 환자단체는 “수술실은 병원의 고유 영역이라 잘못이 있어도 내부 제보자가 나오지 않는 한 입증이 매우 어렵다”면서 “환자가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환영의 뜻을 담은 기대를 드러냈다.
반면, 대한의사협회는 방어적으로 수술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 목숨을 살릴 수 있는 환자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고, 의사도 1명의 주체로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는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보건복지부도 개인 신체정보의 유출 등을 우려하며 ‘사회적 합의’라는 말 뒤로 숨었다.
결국, 법안은 19대 국회가 막을 내리며 함께 자동폐기 됐다. 그렇게 수술실 내 CCTV 설치의무화 논쟁은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최근 같은 의료인 직역단체인 대한한의사협회(회장 최혁용)가 해당 사안을 다시금 쟁점화 했다.
쟁점화의 배경을 떠나 한의협은 21일 “아직도 근절되지 않고 있는 대리수술 문제와 수술실 내 각종 성희롱과 폭력사태를 미연에 방지한다는 차원에서 수술실 내 CCTV 설치 입법화는 필요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환자의 안전보장은 물론 의료인과 환자, 의료인 간 신뢰를 쌓는데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혹시라도 발생할지 모를 의료사고에 대한 불필요한 분쟁과 오해를 막고 책임소재도 명확히 할 수 있다는 장점도 강조했다. 나아가 사회적 합의를 위한 협의체 구성을 촉구했다.
그럼에도 의료계나 정부의 입장은 3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의사협회는 22일 기자들 앞에서 “수술실 내에서 이뤄지는 행위와 장면은 굉장히 민감한 개인정보를 담고 있다”며 “이를 외부로 노출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집도의의 입장에서도 본인의 수술과정이 노출되는 것을 꺼릴 수도 있다”고 사실상 반대의사를 밝히며 “한의사와는 전혀 관계없는 사안이다. 오히려 복지부 등에서 내야할 의견”이라고 주장했다.
복지부 또한 “개인정보 유출이나 신체·건강정보를 촬영하는 것에 민감한 이들도 많은 것으로 안다. 과거 환자단체에서 환영의 뜻을 표했다지만 국민 모두를 대변한다고 볼 수는 없어 필요하다면 사회적 요구가 어떤지,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이뤄졌는지를 살펴볼 것”이라고 답했다.
다만, “한의사들이 관련 의견을 낸 것이 의아하다. 협의체를 당장 구성 한다, 안 한다 답을 할 수는 없지만 쟁점이 된 맥락을 살필 필요는 있어 보인다. 더구나 협의체를 구성한다고 해도 의사협회 등 당사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조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복지부의 태도에 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의료계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라고 힐난했다. 이어 “의료소비자의 선택권과 권리가 최대한 보장될 수 있도록 관련 장치를 마련해 정책적 결단을 내려야하는 사안”이라며 “일단 협의체를 구성해 사안을 조속히 논의해야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의계 또한 “의료적 치료과정이나 환자의 개인정보 노출이라는 주장을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면서 “정부와 의사협회, 치과협회, 간호협회 등 의료인 단체를 비롯해 환우회 등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 문제를 조속히 해결할 수 있도록 힘을 모으자”는 의지를 전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