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정권을 몰아내고 진보정권을 세우며 뜻을 함께했던 더불어민주당과 시민사회노동단체와의 관계에 금이 가며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27일 오후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를 비롯해 민주노총, 보건의료단체연합, 참여연대, 보건의료노조 등 진보적 성향을 띠며 현 정권과 긴밀한 정책 공조를 펴왔던 14개 단체들이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이 민주당 당사 앞에 모인 이유는 여야 3당 원내대표가 지난 17일 지역특구법과 규제프리존법 등 여야에서 각각 발의한 3개 법안을 병합해, 오는 30일까지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키로 합의하자 이에 반대의사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연합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정부에서 추진한 의료영리화 등 재벌에게 특혜를 주는 정책은 중단한다고 약속했지만 집권 2년차에 접어들며 지난 정권보다 더 위험한 규제완화 기조를 내세웠다”며 “문재인 정부와 여당이 공약파기를 일삼고 있다”고 비난했다.
민간자본이 주도하는 신기술의 시험·검증을 목적으로 규제특례를 적용하는 규제샌드박스 도입과 우선인증 후 검증이 골자인 네거티브 방식의 규제완화는 국민을 제품안전성과 위해성을 검증할 시험대상으로 내모는 정책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민간자본의 규제특례를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국민안전과 관련된 의료법 등 기존 규제법안을 무력화시키는 효과가 있어 반대 기조를 보였던 여당이 합의했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규탄발언에 나선 유재길 무상의료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당시 규제프리존법 입법에 찬성한 안철수 후보에게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계승자를 자처하는 것이냐’고 비판한 바 있다”며 “문재인 정부가 이대로 규제프리존법 추진을 강행한다면 이는 문 정부가 박근혜 정부의 계승자임을 자인하는 꼴”이라고 힐난했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위원장도 “빅5 등 대형병원은 카페, 음식점, 백화점 등 각종 부대시설로 병원 수익과 지방 환자를 적극 끌어 모으는 반면 지방은 의료진 부재로 문을 닫는 의료 기관이 허다하다”며 “의료기관의 영리부대사업을 허용하는 규제프리존법은 대형병원 쏠림현상과 의료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이날 집회에 참여한 14개 단체는 오는 30일 규제프리존법 국회 통과저지를 위해 공동행동에 나서겠다는 뜻을 천명하며 입장문을 신임 이해찬 민주당 대표에게 전달하고자 면담을 신청했지만 끝내 전달하지 못했다. 심지어 문전박대를 당하다시피 했다.
이에 단체 관계자는 “이해찬 신임대표가 당선 직후 가진 기자간담에서 무엇보다도 노동조합, 시민단체와 만나 민생에 대해 대화하겠다 말했지만 말 뿐이었다”면서 “공식적인 면담을 신청했고 몇 번이나 확인했지만, 합의에 대한 입장을 듣기는커녕 당사로 발도 들이지 못했다”고 불편한 심기를 여과없이 드러냈다.
이와 관련 민주당은 “의견서를 전달받으러 당사 앞으로 나갔으나 받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방문해 당사 내에는 당의 입장을 전하거나 책임 있는 답변을 할 수 있는 이가 없었다. 당사로 들이는 것 또한 권한이 없어 수행할 수 없었다”라고만 해명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