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안시성’(감독 김광식)이 사극 전투 액션의 한 획을 그었다. 공들여서 찍은 높은 완성도의 액션 장면들이 이번 추석 연휴 동안 관객들의 시선을 빼앗지 않을까.
첫 장면부터 전투다. 영화 시작부터 당나라 이세민(박성웅)의 20만 군사와 고구려 연개소문(유오성)의 15만 군사가 넓은 벌판에서 창과 방패를 부딪치며 정면 대결을 펼치는 장면이 아무 설명 없이 펼쳐진다. 기마부대가 방패부대를 뚫고 진격하는 장면의 속도감과 창과 칼, 도끼가 부딪히는 전투 현장의 치열한 현장을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 서로 몸이 맞부딪히는 지루한 과정만 보여주는 건 아니다. 군사를 이끄는 장군들의 전술이 실제 전투에서 구현되는 과정을 잘 살린 덕분에 전투마다 각기 다른 스토리가 부여된다.
주필산 전투에서 패한 태학도의 수장 사물(남주혁)은 반역자 양만춘(조인성)을 죽이라는 연개소문의 지령을 받고 안시성으로 향한다. 하지만 사물은 5000명의 적은 군사 숫자에도 철저하게 전투 준비를 마친 안시성의 모습에서 가능성을 발견한다. 또 성주로서 성 안의 백성들을 챙기는 양만춘의 모습을 보며 연개소문의 지령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한다. 그러던 와중에 당 태종 이세민의 대군이 안시성을 공격해오자, 고구려와 당은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전투를 펼치기 시작한다.
‘안시성’은 전쟁 사극의 기본 공식을 충실히 따른다. 개성 넘치는 인물들을 빠르게 설명하고 백성들을 보살피는 자애로운 군주의 모습을 그린다. 그 모두가 힘을 합쳐 적군과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희생도 따르고 배신도 있다. 어떤 결말이 펼쳐질지는 관객들이 안시성 전투에 대해 알고 있는 그대로다.
‘안시성’이 지금까지의 사극과 차별화하는 지점은 전투다. 135분의 상영 시간 동안 총 네 번의 전투 장면이 이어진다. 하지만 그 전투들의 맥락이 모두 다르고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 싸움에 임하는 마음이 조금씩 다를 뿐 아니라 전투 자체보다는 사전에 적군의 공격을 예상하고 준비하는 양만춘의 전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기는 싸움 대신 지지 않는 싸움을 해야 하는 공성전의 성격도 잘 보여준다. 어느 순간 할리우드 영화 ‘반지의 제왕’(감독 피터 잭슨)의 대규모 전투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인물들의 개성을 잘 살린 액션 장면들은 특히 눈여겨 볼만하다. 한국 사극에서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액션이 360도 스카이워커와 드론, 로봇암, 팬텀, 러시아암 등을 통해 완성됐다. 직접 지었다는 총 길이 180미터의 안시성 세트와 약 5000평 규모의 토산 세트도 CG로 만들어낼 수 없는 현장감을 보여준다.
가장 돋보이는 배우는 기마부대장 파소 역할의 엄태구다. ‘밀정’의 하시모토와 ‘택시운전사’의 검문소 중사처럼 단단하고 무서운 역할을 주로 맡아왔지만, ‘안시성’에서 백하(설현)과 멜로를 펼치는 역할도 잘 소화해냈다. 캐스팅 단계부터 양만춘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논란에 시달린 조인성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양만춘을 연기했다. 조인성 특유의 현대적인 분위기를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해석해냈다는 점에서 비판하기 어렵다. 마지막 화살을 쏘는 장면은 관객들의 실소를 자아낼 가능성이 높지만 연기의 문제는 아니다. 오는 19일 개봉. 12세 관람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