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새터민으로 불리는 탈북자들을 우리는 매체 등에서 자주 접할 수 있다. 탈북 과정에서 겪은 고단함과 위기, 사선을 넘나드는 경험도 들을 수 있지만 피부로 잘 와 닿지는 않는다. 영화 ‘뷰티풀 데이즈’(감독 윤재호)는 자신을 버린 탈북민 엄마(이나영)를 찾으러 온 조선족 젠첸(장동윤)을 통해 한 여자가 겪은 인생의 고단함을 그린다.
어릴 적 자신과 아버지를 남겨두고 집을 나간 어머니를 찾아 한국에 온 젠첸은 한 술집에서 그녀를 찾는다. 사진 속의 얼굴로만 남아있던 그녀지만 젠첸은 어머니를 한 눈에 알아본다. 하지만 막상 뭐라고 해야 할 지 몰라 술집에서 새벽에 퇴근하는 그녀를 맹목적으로 쫓게 되고, 결국 그녀와 함께 사는 남자가 수상해 보이는 젠첸을 때린다. 젠첸은 엉겁결에 중국어로 “나는 젠첸이다”라고 외치고, 어머니는 그를 집에 들여 얻어맞은 얼굴을 치료해준다.
그렇게 그리워하던 어머니지만 막상 만나고 나니 젠첸은 복잡한 마음을 어찌할 줄 모르고 방황한다. 가족을 버리고 집을 나간 어머니가 기껏 술집에서 웃음을 팔고 있다는 것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도 교차한다. 그러다 결국 젠첸은 어머니와 사는 남자를 돌발적으로 때리기까지 한다. 어머니는 젠첸에게 별 말 하지 않고, 그에게 옷을 사 준 후 중국으로 돌려보낸다.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던 젠첸은 어머니가 사 준 옷이 담긴 가방에서 그녀가 넣어 둔 예전의 일기장을 발견한다.
관객들은 일기장을 펼치는 젠첸과 함께 어머니의 삶을 들여다본다. 2003년부터 2017년까지를 넘나드는 그녀의 삶은 보통 사람이 감히 짐작하기 힘든 일들로 점철돼 있다. 젠첸은 며칠 내내 그녀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며 그녀가 가족을 떠난 이유부터, 훨씬 더 커다란 슬픔과 비밀까지 발견한다.
‘뷰티풀 데이즈’는 배우 이나영의 6년 만의 복귀작이다. 이나영이 “시나리오를 본 직후 만족이 커 출연을 결정했다”고 단언한 만큼 기대감도 높았다. 이나영은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탈북자 어머니 역을 맡았다. 그녀의 배역에 이름이 붙지 않은 이유는 어머니의 삶이 ‘탈북민’으로 대변되는 수많은 이들의 삶의 교집합이라는 의미도 있다.
극중에서 어머니는 소수자의 삶을 전전한다. 분단된 국가를 탈출한 도망자, 그리고 피착취자에서 팔려간 아내로, 그리고 또다시 피착취자로. 그 삶 속에서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기보다는 속으로 슬픔을 삭혀낸다. 울어도 봐줄 사람이 없는 까닭이다. 그간 이나영이 연기해 호평받아온 캐릭터들과 맥락을 같이 하기에 그를 기다려온 팬들에게는 더 반가울 작품이다.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고 싶었다"고 영화 제작의 계기를 설명했던 윤재호 감독은 작품 속에서 인물들의 감정을 원색 조명과 그림자로 담아낸다. 네온사인이 그대로 비치는 허름한 공간들 속에서 빛을 따라 변주되는 감정들은 별다른 대사나 설명 없이도 직관적이다. 오는 11월 개봉.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