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기증자가 발생했습니다.”
지난 10월 15일 오후 7시, 기증자가 발생했다는 메시지가 전송되자 고려대안산병원 심장이식수술팀의 단체 채팅방이 들썩였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팀원들은 곧바로 현장에 복귀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외과중환자실에 대기하고 있었던 이식 대상 환자의 컨디션 확인은 물론, 공여자의 상태와 이식의 적합 여부, 보호자의 동의 등 심장 이식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쳐야 하기 때문. 이날 저녁부터 이틀 뒤인 17일 새벽까지 두 사람의 생명을 잇는 시곗바늘이 숨 가쁘게 돌기 시작했다.
◇'생명' 향해 달리는 적출팀...새 심장 맞을 준비하는 이식팀
심장 근육이 망가져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한 말기심부전증. 이 환자들에게는 다른 사람의 심장을 이식받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다. 그러나 심장은 공여자가 사망하기 직전 뇌사상태에서 기증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간이나 콩팥에 비해 이식이 어렵고, 수술건수도 많지 않다. 국내 심장이식 수술은 연간 120례에서 140례 정도에 그친다. 심장 공여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팀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인 것도 이 때문이다.
환자 송기쁨씨(가명, 52세)는 심근경색으로 이미 지난달 인공심장 수술을 받았으나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5주째 심장이식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다. 송씨는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 기준으로 가장 우선 순위인 0등급 환자다. 0순위에 오르면 대개 2주~3주 정도 기다리지만 송씨의 경우 5주 이상으로 유독 오래 기다린 케이스라고 한다.
신재승 흉부외과 교수는 “아직까지 국내 심장 기증이 많지 않은 편이다. 또 기증자가 나타났다고 해서 무조건 이식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이 환자 분의 경우 혈액형이 B형으로 0형이나 A형에 비해 비교적 드문 편이었고, 또 몸무게가 80kg가 넘기 때문에 기증자도 비슷한 체형이어야 하는 등 혈액형과 체형, 그리고 기증자의 상태를 전반적으로 고려하느라 대기시간이 길어졌다”고 설명했다.
오랜 대기 끝에 심장이식이 진행된다는 소식에 가족도 한달음에 달려왔다. 환자 배우자인 김주영(가명, 52세)씨는 “감사하면서도 죄스럽다”고 말했다.
김씨는 “심장 이식이라는 것이 누군가 돌아가셔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에 (기증에) 감사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중에 저도 줄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기증하겠다”며 “좋은 마음으로 기증해주신 만큼 열심히 잘 살겠다”고 눈물지었다. 그러면서 김씨는 “(말기 심부전으로)여러 번 수술을 받을 때마다 눈물이 났는데 오늘은 마음이 덤덤하고 편하다”며 재차 감사 인사를 전했다.
같은 시각 신홍주 흉부외과 교수는 구급차를 타고 기증자가 입원해있는 경기도의 한 병원으로 출발했다. 심장 기증자가 발생한지 이틀째인 16일 오후 4시 30분 쯤 일이다. 신홍주 교수와 적출팀은 기증자의 심장을 환자가 있는 고대안산병원 수술장으로 안전하게 가져오는 임무를 맡았다.
뇌사자의 장기이식은 이식이 가능한 여러 장기를 동시에 적출하기 때문에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를 통해 결정된 다른 병원 의료진들과의 조율을 거쳐 진행된다. 심장은 생사를 결정짓는 만큼 가장 마지막에 적출이 이뤄진다.
신홍주 교수는 “심장이식이 결정되었다고 해도 무조건 수술을 진행하는 것은 아니며, 기증 당일에도 심장의 상태가 나빠져 적출과정에서 이식수술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며 “적출팀과 실시간으로 연락하여 최종 이식결정이 나면 수술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혜자의 심장을 미리 절제하고 대기하다가 심장이 도착하면 바로 수술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단 4시간 만에 새로 뛰어야...'시간과의 싸움'
오후 9시. 심장 적출을 끝낸 신홍주 교수와 적출팀이 수술방에서 나왔다. 타 장기에 비해 수술을 위한 시간적 여유가 길지 않기 때문에 가장 먼저 병원을 나선다.
교통량을 감안할 때 평소 1시간 반 이상 소요될 거리였지만, 구급차는 단 40분 만에 무사히 병원에 도착했다. 운전자들의 양보와 배려 덕이다.
적출팀이 움직이는 동안 이식팀은 환자를 수술실로 이송한 후 이식수술을 위한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 기증자에게서 장기를 적출한 후 4시간 30분 이상이 경과하면 이식성공률이 크게 떨어지므로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수술을 진행할 수 있도록 환자와 수술팀 모두 대기해야 한다.
적출팀이 안산병원에 도착하자 환자 송씨는 인공심폐기를 가동한 채 새로운 심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바로 아이스박스에 차갑게 보관된 공여자의 심장을 꺼내 바로 이식 수술에 들어갔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수술 성공률이 떨어지기 때문에, 혈관을 이어나가는 흉부외과 의사들의 손놀림은 바쁘게 이어졌다.
이번 수술의 관건은 시간과 유착 여부였다. 수술 전 신재승 교수는 “환자가 한 달 전에 심장수술을 한 상태이기 때문에 유착이 심할까 걱정”이라며 “유착이 심하면 엉겨붙은 조직들을 떼어내야 해서 4시간 내에 수술을 끝내기 어려울 수도 있다. 최대한 서둘러야 한다”고 귀띔했다.
이식 수술이 끝나면 환자는 4주 정도 면역억제치료와 감염예방에 주력한다. 그 다음에는 물리치료와 함께 앉고 일어서고 걷는 연습을 하고, 이를 마치면 일상으로 돌아간다. 이식 후 6개월까지는 감염에 취약하기 때문에 주의가 요구된다.
신 교수는 “연간 국내에서 120여건이 시행되는 심장이식 수술은 1년 생존률이 95%에 이를 만큼 성공 가능성이 높은 수술”이라며 “이식은 한 수술에 두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수술이다. 의사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 순환기내과, 감염내과, 신장내과, 마취과 등 모든 의료진이 하모니를 이뤄내는 작업이기에 의미가 깊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다른 사람에게 새 생명을 줄 수 있는 장기이식이라는 숭고한 행위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동참해 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마침내 새로운 심장은 적출 후 약 3시간 만에 다시 박동을 시작했다. 무사히 이식이 끝났다는 신호다. 기증자의 숭고한 뜻은 의료진들의 손을 거쳐 다른 이에게 생명이라는 선물을 안겼다. 환자는 심장수술을 받은 이력이 있어 이식 후 추가 수술이 필요했고 총 7시간에 걸쳐 진행된 수술은 다음 날 아침 5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