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화의 영문학 기행] 서른두 번째 이야기

[양기화의 영문학 기행] 서른두 번째 이야기

기사승인 2018-11-16 06:00:00

런던 아이에 가까워지면서 북쪽 강변에 서 있는 웨스트민스터궁전과 빅벤이 눈에 들어온다. 웨스터민스터브릿지 아래 있는 부두에 배가 정박하고 우리 일행은 배에서 내린다. 40여 분 간 유람선을 타고 거슬러 올라간 템즈강은 글로스터셔(Gloucestershire)의 템즈 헤드(Thames Head)에서 발원한다. 총 길이 346km의 템즈강은 옥스퍼드(이 지역에서는 이시스라고 부른다), 레딩(Reading), 윈저(Windsor), 런던을 거쳐 흐르고, 템즈 강어귀(Thames Estuary)를 통해 북해로 들어간다. 

수많은 소설, 일기 혹은 시에서 템즈강이 이야기됐지만, 1889년에 출간된 제롬 K. 제롬의 ‘보트 위의 세 남자(Three Men in a Boat)’는 특히 템즈강은 물론 당시 영국의 사회상을 잘 소개하고 있다. 으스대기는 기본, 과장과 허풍까지 심하고, 식탐에 게으르기까지 한 세 남자가 킹스턴에서 옥스퍼드까지 보트를 타고 여행하면서 겪는 이야기를 담았다. 가히 종합병원이라 할 정도로 많은 병을 달고 사는 제롬은 당시의 영국 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을 냉소적이면서도 익살스럽게 묘사하고 있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강변 풍경에 대한 작가의 묘사가 대중의 관심을 끌어 템즈강이 유명해지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우리 일행이 유람선에서 내린 웨스트민스터 지역은 중세 무렵에는 쏜(Thorn) 섬이라고 부르던 전략적으로 중요한 장소였다. 크누트(Canute) 대제는 1016년부터 1035년까지 이 지역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앵글로-색슨계 왕조의 끝에서 두 번째 왕인 에드워드 성인은 시티 오브 런던의 바로 서쪽에 있는 쏜 섬 지역에 왕궁과 수도원을 짓고 웨스트민스터 수도원이라고 했다. 아마 서쪽에 있는 수도원(West Monastery)이라는 의미를 담은 듯하다. 

1066년 앵글로색슨 왕조를 몰아낸 노르만의 윌리엄 1세는 런던탑을 왕궁으로 삼았다가 뒷날 웨스트민스터로 이주했다. 궁전 주변에 많은 공공시설들이 들어서게 됐다. 의사당의 전신인 추밀원은 웨스트민스터 홀에 설치됐고, 1295년 최초의 잉글랜드의회인 모범의회(Model Parliament)가 열렸다. 1520년 헨리8세는 토머스 울지 추기경의 요크궁전을 빼앗아 화이트홀 궁전으로 이름을 바꿔 사용하면서, 웨스트민스터 궁전은 의회 및 법원 등 왕실의 정궁으로 사용했다. 웨스트민스터궁전은 영국의회와 동의어로 사용될 만큼 영국 정치의 중심이다.

1834년 10월 16일에 발생한 대화재로 웨스트민스터 홀과 보석탑, 세인트 스티픈 경당의 지하실, 회랑만 남기고 웨스트민스터 궁전 대부분이 불타고 말았다. 현재의 건물은 1836년 97가지 설계안을 검토한 왕립 위원회가 찰스 베리의 고딕 양식의 설계안에 따라 1840년 공사를 시작해 1860년에 완공된 것이다. 보석탑을 제외한 고궁의 유적들을 통합한 새로운 궁전은 112,476㎡의 바닥면적에 들어있는 1100개 이상의 방들이 2개의 안뜰을 중심으로 대칭으로 배열돼있다. 리버프런트라고 부르는 300m에 이르는 파사드를 세우기 위해 템즈강변의 3.24ha의 부지를 매립했다.

찰스 베리는 다양한 석재를 검토한 끝에 비용 등을 고려해 안스톤(Anston)에서 나는 마그네시안 석회암으로 건물을 지었다. 하지만 건물이 완공된 다음 런던의 심각한 대기오염에 의해 석재가 부식되기 시작했다. 20세기 들어 석재의 교체가 검토됐지만, 전쟁 등으로 미뤄지다 1950년에서야 루트랜드(Rutland)에서 나는 꿀색 석회암, 크립스햄(Clipsham)으로 교체했다. 1960년대 들어 오염이 다시 시작되면서 1981년 석조 보전 및 복구작업을 재개해 1994년에 끝났다.

웨스트민스터 궁전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14차례에 걸쳐 폭격을 당했다. 1941년 5월 10일의 폭격에서는 12발의 폭탄이 웨스트민스터 궁전에 떨어져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에드워드 엘리엇(Edward Elliott) 상원의원과 경찰관 2명이 사망하고, 하원의회당이 전소됐다.

웨스트민스터 궁전에는 3개의 탑이 있다. 그 중 가장 크고 높은 것은 강에서 보아 왼쪽인 남서쪽 끝에 있는 98.5m 높이의 빅토리아 탑(Victoria Tower)이다. 원래 이름은 왕의 탑(The King's Tower)이었다. 1834년의 대화재가 윌리엄4세 시절 발생했던 점을 고려한 챨스 배리는 정사각형의 탑을 입법의 상징이자, 궁전의 왕실 입구로 삼고자 했다. 빅토리아 탑은 여러 차례에 걸쳐 증축돼 높이를 더했다. 

15m의 아치형 통로는 국왕이 출입하는 통로이며, 빅토리아 여왕을 비롯해 영국의 수호성인인 조지 성인, 스코틀랜드의 수호성인인 안드레아 성인, 아일랜드의 수호성인인 파트라치오 성인의 조각상이 있다. 12층의 빅토리아탑에는 총 연장 8.8km에 달하는 강철선반이 들어있고, 여기에 300만건의 국회기록이 보관돼있다. 1497년 이래, 의회에서 결의된 모든 법령의 사본은 물론 권리장전 및 찰스 1 세 의 사망 증명서와 같은 중요한 자료가 포함된다. 주철로 된 지붕에는 22m 높이의 깃대가 있는데, 국왕이 있을 때는 왕실기를, 국왕이 없을 때는 영국 국기, 유니온 잭을 게양한다.

궁전의 북쪽 끝에 있는 높이 96m의 엘리자베스탑은 일반적으로 빅 벤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에는 시계탑이라고 불렀지만, 2012년 엘리자베스2세 여왕의 다이아몬드 희년을 기념해 엘리자베스 탑으로 명명했다. 

웨스터민스터 궁전을 설계한 찰스 베리의 요청을 받아 아우구스투스 피긴(Augustus Pugin)이 설계한 시계탑은 바닥의 각 변이 12m인 네오 고딕양식의 사각형 탑으로 61m까지는 벽돌을 쌓고 모래색의 안스톤 석재로 겉을 덮었다. 그 위로는 주철로 된 프레임 첨탑이다. 지면 아래로는 4m 깊이에 3m 두께의 콘크리트로 만든 15.2m의 정사각형 주춧돌을 만들었다. 

네 방향으로 단 시계판은 지상에서 54.9m 높이에 있다. 시계판의 지름은 7m고 각 면의 시계판 아래 부분에는 “주여 빅토리아여왕을 지켜주소서(DOMINE SALVAM FAC REGINAM NOSTRAM VICTORIAM PRIMAM)”라고 적혀있다. 매 시간 15, 30, 45분에 4개의 관종이 울리고, 정시에는 13.8톤 무게의 빅벤이 울린다. 빅벤의 공식명칭은 웨스트민스터의 그레이트 벨 (Great Bell)이다. 웨스트민스터 궁전의 중앙홀 바로 위에 있는 팔각형의 중앙탑은 세 개의 탑 가운데 제일 낮은 91m이다. 창문의 내포에서 올라오는 수많은 뾰족탑 등과 함께 궁전의 환기를 위한 구조물이다. 

웨스트민스터 궁전을 지나면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있다. 기록에 따르면 7세기 무렵 이 지역에 교회가 세워졌다고 전한다. 960년대, 혹은 970년대 초 수도원기록에 따르면 던스탄(Dunstan) 성인과 에드거(Edgar)왕이 베네딕트 수도원을 세웠다고 한다. 앵글로 색슨왕조의 에드워드 왕은 1042년에서 1052년 사이에 성 베드로 대 수도원을 재건해 왕의 장례 교회로 사용하고자 했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은 영국 최초의 교회가 1060년경에 완공됐고 1065년 12월 28일 봉헌됐다. 일주일 후 왕이 죽어 이 교회에 묻혔다. 

1066년 노르만의 윌리엄왕이 이 교회에서 대관식을 치른 이래, 영국의 국왕의 대관식은 이곳에서 치렀다. 지금의 교회는 헨리3세의 주도로 1245 년부터 짓기 시작했다. 교회는 1269년 10월 13일 봉헌됐다. 이후에도 보완이 이어졌는데 헨리7세는 1503년 수직양식의 교회를 축복받은 성모 마리아에게 헌정하는 예배당을 지었다. 

1535년 수도원 해산 조치 이후에도 웨스트민스터 수도원은 큰 변화가 없었지만, 1560년 엘리자베스1세 여왕은 왕실 소속의 성공회 교회로, 정식 명칭은 웨스트민스터 세인트 피터 참사회성당(Collegiate Church of St. Peter in Westminster)이다. 영국 왕의 대관식, 결혼식, 장례식 등 주요 행사가 열리는 곳이자 잉글랜드와 영국 왕의 장지(葬地)이기도 하다. 영국의 역대 왕은 물론 영국의 총리, 그리고 아이작 뉴턴를 비롯한 과학자와 문학가 등 위인들 역시 웨스트민스터 수도원에 묻힐 수 있다. 

웨스트민스터사원의 북쪽 문 앞으로는 의회광장(Parliament Square)이 펼쳐진다. 런던을 찾는 관광객들이 모이는 장소이기도 하며, 동시에 많은 시위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광장 주변에는 주요한 공공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다. 

동쪽으로는 국회 의사당, 북쪽으로는 화이트 홀, 서쪽으로는 대법원, 그리고 남쪽으로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있다. 광장 중앙은 넓은 녹지대가 펼쳐지고 주변에는 모두 12명의 영국과 영연방 그리고 외국의 정치 인사 12 개 동상이 서있다. 

윈스턴 처칠 등 6명의 역대 총리를 비롯하여 조지 캐논 외무장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얀 스머츠(Jan Smuts) 총리와 넬슨 만델라 대통령, 마하트마 간디 인도 총리, 아브라함 링컨 미국 대통령 등이며, 최근 여성운동가 밀리센트 포셋(Millicent Fawcett)의 동상이 여성으로는 처음 세워졌다. 

글·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평가수석위원

1984 가톨릭의대 임상병리학 전임강사
1991 동 대학 조교수
1994 지방공사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1998 을지의대 병리학 교수
2000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원 일반독성부장
2005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2009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2018 동 기관 평가수석위원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오준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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