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화의 영문학 기행] 서른세 번재 이야기

[양기화의 영문학 기행] 서른세 번재 이야기

기사승인 2018-11-20 06:00:00

다음 일정은 트라팔가 광장에 있는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이다. 의회광장과 트라팔가 광장을 잇는 화이트홀 거리를 걸어서 갔다. 토마스 울지 추기경의 요크 궁전을 빼앗은 헨리8세가 화이트홀 궁전으로 이름을 바꿔 사용하던 자리이다. 1622년의 대화재로 ‘이니고 존스의 연회장(Inigo Jones’s Banqueting House)‘만을 남기고 모두 파괴됐다. 지금은 거리 양편으로 영국정부의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그리고 화이트홀 거리 가운데에는 몇 개의 전쟁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의회광장에서 출발해서 왼쪽 첫 번째 건물은 재무성이다. 이어 외무·영연방부 건물이 있고, 그 앞에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 전몰자를 기념하는 화이트홀 현충비(whitehall cenotaph)가 서있다. 홀랜드, 한넨 그리고 큐비츠 등이 설계해 포틀랜드 돌로 제작한 이 현충비는 제1차 세계대전의 전몰자를 기념하기 위해 종전 2년 뒤인 1920년 11월 11일 제막됐다. 

거리의 양쪽으로 향한 면에는 단순한 형태의 화환을 새겼고, 그 아래로 ‘영광스러운 죽음(The Glorious Dead)’라는 구절을 새겼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는 기념대상을 제2차 세계대전의 전몰자로까지 확대했다. 매년 11월 11일에 가장 가까운 일요일로 정한 현충일 오전 11시에 현충일 기념행사가 열린다. 

이어지는 철창이 굳게 닫혀있는 곳이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공관이 있는 곳이다.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경찰이 철문을 지키고 있어 서늘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총리공관에 관심을 보이는 관광객들과 농담을 나누는 여유도 있다고 한다. 다우닝가를 지나면 말을 탄 남녀 병사들이 지키고 있는 건물이다. 영국 근위기병여단의 본부(Horse Guard)다. 오가는 사람들마다 말을 탄 병사들과 같이 사진을 찍느라 법석을 떤다. 

다우닝가와 근위기마병여단의 사이쯤, 거리 중앙에 하이그 백작 기념탑(The Earl Haig Memorial)이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서부전선을 지휘한 영국의 원수 더글라스 하이그원수를 기념하는 청동상으로 조각가 알프레드 프랭크 하디만 (Alfred Frank Hardiman)이 제작한 것이다.

다우닝가 10번지에 있는 수상관저를 무대로 한 영화로는 ‘러브 액추얼리’가 있다. 영국 수상 데이비드(휴 그랜트 분)와 그의 비서 나탈리(마틴 매커친 분)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곳이다. 2003년에 개봉된 이 영화에서는 크리스마스 무렵의 런던을 무대로, 19명의 남녀 주인공들이 펼치는 사랑 이야기가 옴니버스형식으로 다뤄진다. 사랑 때문에 끙끙 앓는 청춘 남녀라면 크리스마스를 맞아 돌파구를 찾는 사랑의 묘방을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우닝가를 지나면 도로 중앙에 ‘제2차 세계대전 기간 헌신한 여성에게 바치는 기념비 (Monument to the Women of World War II)’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다양한 분야에서 전쟁에 기여한 여성들에게 바치는 기념비다. 부스로이드(Boothroyd) 남작부인의 후원으로 존 W. 밀스(John W. Mills)이 제작한 청동 기념물의 길이는 4.9m, 폭 1.8m, 높이 6.7m다. 2005년 7월 9일 엘리자베스여왕이 제막했다.

다우닝가의 맞은 편 건물이 국방성 건물이다. 정원 끝에 있는 작은 건물이 화재로 소실된 화이트홀 궁전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연회장(Banqueting House)이다. 화이트홀 거리를 걷다보면 빨간색 2층 버스를 자주 발견할 수 있다. 

“버스는 해적선인 양 우악스럽게, 무지럽게, 용서 없이 덤벼들고, 위태위태하게 남을 앞지르고, 대담하게 승객을 잡아들이는가 하면, 승객을 무시하고 뱀장어처럼 꿈틀거리면서 거만하게 수많은 차 사이로 달려갔다. 그 해적선은 돛을 잔뜩 부풀리고, 뽐내고, 화이트홀 쪽으로 달려갔다.”

승객을 짐짝처럼 생각하고 난폭운전을 일삼는 런던의 버스가 버지니아 울프에게는 마치 해적선처럼 비쳤나보다. 그 옛날 서울의 거리를 달리던 버스도 이에 못지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화이트홀 거리는 트라팔가 광장(Trafalgar Square)에서 끝난다. 새해맞이나 크리스마스 기념행사 혹은 월드컵 등 스포츠경기의 승리를 축하하는 행사가 열리기도 하지만, 정치적 사안에 대한 시위가 열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트라팔가 광장은  1805년 10월 21일 스페인의 트라팔가 해안에서 벌어진 해전에서 거둔 승리를 기념해 조성된 것이다. 

이 전투에서 넬슨 제독이 지휘하는 왕립해군 소속 27척의 함선들은 빌뇌브 제독이 지휘하는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소속의 33척의 함선과 전투를 치러 승리함으로써 18세기 들어 부상하던 영국해군의 위상을 확고하게 만들었다. 

트라팔가 광장이 있는 자리는 이전에는 챠링크로스(Charing Cross)라고 부르던 장소이다. 챠링은 템즈 강이 굽어드는 모습을 뜻하는 옛 영어 시어링(cierring)에서 유래했다. 챠링이라는 이름의 작은 마을에 크로스가 더해진 것은 1291~1294년 무렵, 에드워드1세 왕이 엘리노어(Eleanor)왕비를 기념하기 위해 십자가를 세운 다음이다. 나무로 된 십자가는 중세 조각가인 애빙던의 알렉산더(Alexander of Abingdon)가 제작했다. 이 십자가는 1647년 시민혁명당시 올리버 크롬웰에 의해 파괴됐다.

시인 조지 필(George Peele)은 1593년 발표한 시, ‘에드워드1세 왕의 유명한 연대기(The Famous Chronicle of King Edward the First)’에서 “선명하고 중후하게 조각된 십자가를 세운 곳에서 / 그녀의 입상은 영광으로 빛나리니 / 이곳을 챠링 크로스라고 부르게 되리라(Erect a rich and stately carved cross, / Whereon her statue shall with glory shine; / And henceforth see you call it Charing Cross)”라고 노래했다.

1535년 대화재 이후 재건된 마구간이 있던 이 지역을 정비하려는 계획이 1826년에 확정됐다. 건설될 광장은 1830년 즉위한 윌리엄4세 왕의 이름을 붙일 계획이었지만, 1835년 경 트라팔가 해전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트라팔가 광장으로 부르기로 했다. 이후 광장의 배치계획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1832~1838년 사이에 윌리엄 윌킨스(William Wilkins)가 설계한 내셔널 갤러리를 비롯해, 1941년 찰스 베리가 이어받은 광장개발계획에는 두 개의 분수가 추가됐다.

1838년 제안된 넬슨 기둥은 처음에는 66.52m 높이의 코린트식 기둥으로 설계됐지만, 시민들의 반대로 40.27m 높이로 축소돼 건설됐다. 넬슨제독의 동상은 1843년 11월 제막됐고, 기둥 주변에 배치하기로 한 4마리의 사자는 1867년에 제작이 완료됐다. 사자 한 마리의 무게는 약 7톤이다.

광장의 북쪽에는 3명의 제독의 흉상이 있다. 찰스 휠러경이 제작한 젤리코(Jellicoe)경, 윌리엄 맥밀란이 제작한 비티(Beatty)경 그리고 프란타 벨스키가 제작한 커닝햄(Cunningham)경 등이다. 광장 남쪽에는 프랑스 조각가 후베르트 르 수에르(Hubert Le Sueur)가 1633년 제작한 챨스1세의 청동 승마상이 서있다. 

내셔널 갤러리의 서쪽 잔디밭에는 그린링 기번스(Grinling Gibbons)가 제작한 제임스2세의 조각상이 있고, 동쪽 잔디밭에는 장-앙투안 후돈(Jean-Antoine Houdon)이 제작한 조지 워싱턴의 조각상의 복제품이 있는데, 이는 미국 뉴저지주에서 보내온 것이다. 

내셔널 갤러리를 구경할 수 있었다. 우리보다 조금 일찍 출발한 다른 상품에서는 테러의 위험이 있다고 해서 입장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한 시간 정도의 자유시간을 얻어 구경에 나섰으니 한 점을 보더라도 제대로 볼 것인가, 아니면 가급적이면 많은 작품을 볼 것인가 선택해야 했다. 안타깝게도 빈센트 반 고호의 ‘해바라기’는 볼 수 없었다. 

결국 많은 작품을 보기로 했다. 기억에 남기는 것이 쉽지 않아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는데, 결국은 어느 점잖은 런던 신사로부터 ‘그림은 그렇게 감상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책망을 받았다. 사실 언제든지 찾아와 무료로 감상할 수 있는 런던사람들과는 달리 우리와 같은 여행객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으니 그림을 감상하는 방법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한글로 된 안내서에 수록되어 있는 그림들은 대부분 감상, 아니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관람객들로 넘쳐나기 때문에 사진을 찍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 그림을 감상할 때 같이 감상을 하고, 여백이 생기는 짧은 시간에 사진을 찍다보니 초점이 맞지 않는 경우도 많다. 아무래도 런던에서 오래 머무는 여행을 다녀와야 하겠다. 요즘 유행이라는 ‘런던 한 달 살기’를 고민해보자. 

1824년 폴몰(Pall Mall) 10번지에 있는 앵거스타인의 타운하우스에서 개관한 내셔널 갤러리는 1832년 윌리엄 윌킨스의 설계로 지은 트라팔가의 현재 건물로 이전했다. 소장품이 늘어가면서 단편적으로 확장이 이어졌다. 지금은 13세기 중반에서 1900년 무렵에 이르는 기간에 만들어진 2300여 점이 넘는 그림을 소장하고 있다. 대부분 왕실 소유의 예술품을 넘겨받아 설립된 유럽의 박물관 혹은 미술관과는 달리 내셔널 갤러리는 영국 정부가 구매한 작품 혹은 개인의 기부금으로 구매한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글·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평가수석위원

1984 가톨릭의대 임상병리학 전임강사
1991 동 대학 조교수
1994 지방공사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1998 을지의대 병리학 교수
2000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원 일반독성부장
2005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2009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2018 동 기관 평가수석위원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오준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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