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까지 든든해지는 대구 방촌시장 ‘홍은이 가게’ 사랑의 국수

마음까지 든든해지는 대구 방촌시장 ‘홍은이 가게’ 사랑의 국수

기사승인 2018-11-22 23:07:24

 “작은 것이지만 이웃들과 나눌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쌀쌀한 초겨울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 21일, 대구 동구 방촌동 방촌새마을금고 뒤에서 조촐한 마을 잔치가 열렸다.

삼삼오오 이곳을 찾은 동네 어르신들은 밝은 표정으로 서로 안부를 묻고는 저마다 따뜻한 잔치국수 한 그릇을 앞에 놓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들 사이를 분주하게 오가며 어르신들에게 국수를 대접하는 하윤호(56), 김향숙(여·53)씨 부부의 얼굴은 모락모락 김이 나는 멸치 육수보다 더 따뜻하게 보였다.

하윤호·김향숙 부부가 동네 어르신들을 위해 처음 ‘국수 사랑 나눔 행사’를 연 것은 지난 2015년 4월이다.

거창한 이유도 뚜렷한 목적도 없다. 그렇다고 돈 걱정 없이 사는 부자도 아니다. ‘이웃들을 위해 무엇인가 나눠주고 싶다’는 것이 유일한 이유였다.

먹고 사는 것이 바빠, 아픈 시어머니를 간병하느라 잠시 잊고 있었던 이웃사랑이 다시 움트기 시작한 것이다.

김씨는 네 살배기 어린 아들을 데리고 고아원을 찾아가면서 처음으로 정기적인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아들에게 이웃을 돌보는 나눔과 베풂의 삶을 알려 주려고 시작한 일이다.

그러다 결혼 후 줄곧 모시고 있던 시어머님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간병을 위해 더 이상 고아원을 찾지 못했다.

“18년이란 오랜 투병 끝에 시어머님이 돌아가시니 구멍이 뚫린 듯 마음 한 구석이 허전했어요. 동네 어르신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했죠. 어르신들이 드시기 편한 국수가 좋겠더라구요.”

10년 전부터 방촌시장에서 ‘홍은이 가게’란 이름으로 보리밥과 우뭇가사리 콩국, 반찬을 팔면서 동네에서 제법 얼굴이 알려진 이들 부부는 천막을 펴고 잔치국수 말았다.

아내는 이른 아침부터 진하게 멸치 육수를 우려내고 면을 삶았고, 남편은 안내문을 만들어 동네 경로당을 돌며 어르신들을 초청했다. 

그렇게 시작된 방촌시장 홍은이 가게의 국수 사랑 나눔 행사는 4년 가까이 매월 셋째 수요일마다 열린다.

폭염에도, 비가 오고 눈이 내려도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다. 2015년 4월, 80그릇을 준비했던 국수는 이제 150그릇으로 늘어났다.

“국수를 맛있게 드신 한 할머니가 조심스럽게 ‘다음 달에 또 와도 되냐’고 묻더라구요. 그때 마음을 굳혔어요. 평생 내가 해야 될 일이라고.”

소문을 들은 새마을부녀회 회원 5~6명도 이제 셋째 수요일이 되면 하윤호·김향숙 부부를 거든다. 나누는 기쁨과 행복도 배가 됐다.

이들 부부는 국수를 드시러 오는 모든 동네 어르신들을 가족처럼 대한다. 특별할 것도 없는 국수 한 그릇이지만 집에서 먹는 그대로 만든다.

김향숙씨는 “치매 증상이 있는 한 할머니가 한 번도 잊지 않고 국수를 드시러 오는데 그 분을 볼 때마다 너무 감사한 마음에 눈시울이 뜨거워 질 때도 있다”며 “기쁜 마음으로 거들어 주는 예쁜 새마을부녀회 동생들까지 생기면서 힘들기는커녕 즐겁기만 하다”고 말했다.

방촌시장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 온 이들 부부의 아들 홍은(25)씨도 지난 10월 한식뷔페 ‘홍은이 집밥’을 차렸다.

통 크고 손맛 좋기로 소문난 어머니의 도움으로 벌써 방촌시장에서는 꽤 유명한 맛집이 됐다.

하윤호씨 가족들은 방촌시장에서 이름을 걸고 장사를 한다. 그리고 소소하지만 진정 어린 나눔의 삶을 실천하며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사랑으로 우려낸 하윤호·김향숙 부부의 국수 한 그룻은 방촌동 어르신들의 허기와 함께, 이 시대의 부족한 이웃사랑까지 채워준다.

대구=최태욱 기자 tasigi72@kukinews.com

최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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