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한모씨는 최근 ‘리퍼브 매장’을 통해 가전제품과 생활용품을 구입하고 있다. 혼자 사는 살림에 제값을 주고 새것을 구입하는 게 아깝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에 반에 가격이 떨어진 리퍼브 제품은 성능 대비 가격이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이 좋으면 새것이나 다름없는 제품을 구입할 수도 있었다.
#.주부 서모씨는 대형마트에 가면 항상 ‘반값 할인’ 매대를 찾는다. 유통기한이 얼마 안 남거나 재고가 많아 급히 팔아야 하는 떨이 상품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반찬, 즉석조리 식품뿐 아니라 고급 디저트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치솟는 물가에 반값 할인 매대는 반가울 따름이다. 잘만 이용하면 장 보는 가격을 크게 절약할 수 있었다.
최근 경기 불황이 계속되면서 ‘리퍼브 제품’에 대한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 ‘리퍼브 제품’은 유통기한 임박, 제품 흠결, 반품으로 가치가 떨어진 상품을 값싼 가격으로 되파는 것을 일컫는다.
과거 리퍼브 제품은 가전‧가구 위주였으나, 최근엔 생활용품부터 패션 및 액세서리로 품목을 다양화하고 있다. 특히 경기 불황과 맞물려 폭발적 성장세를 띠고 있다. 얼마 전 리퍼브 제품을 취급하는 킴스닷컴, 이유몰, 떠리몰 등의 쇼핑 사이트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연일 화제에 오르내렸다.
실제 ‘떠리몰’의 경우 2년 전 90여명에 불과하던 회원 수가 올해 7만3204명으로 급증했다. 매출도 매달 60~80%씩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슷한 품목을 취급하는 ‘임박몰’ 또한 월 1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불황이 소비 트렌드에 영향을 미치며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중요하게 여기는 소비자가 늘어난 것이 주 요인이다. 새 제품과 비교해 성능 면에서 차이가 없고 가격이 저렴한 리퍼브 제품에 사람들이 관심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브랜드보다 가성비에 집중하는, 사치가 아닌 가치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분석한다.
실제 신한카드 트렌드연구소가 작년 11월부터 3개월간 신한카드 이용 고객 1033만명의 소비 패턴을 분석한 결과, 리퍼브 시장은 2013년에 비해 10배 가까이 커졌다. 신한카드에 등록된 80개 리퍼브 매장을 기준으로 2013년 1월 이들 매장의 매출은 2800만원 수준이었지만, 4년 만에 10배에 육박하는 매출 신장을 나타냈다.
과거에 리퍼브 제품은 ‘떨이’로 여겨지며, 기업과 소비자 사이서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면 최근엔 유통업계와 소비자가 주목하는 시장으로 당당히 떠오르고 있다. 소비자는 합리적 소비를 할 수 있어 좋고, 업계 입장에서는 엄청난 폐기 비용과 ‘재고’ 부담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대기업 제조사 및 유통사와 손을 잡은 리퍼브 전문 쇼핑몰도 등장한 상태다.
리퍼브 시장의 규모는 온라인 쇼핑의 급성장과 함께 더욱 커질 전망이다. 지난 5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월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10조원을 돌파해 역대 최대수준을 기록했다. 이에 쉽게 구입하고 쉽게 반품하는 ‘반품족’도 급증세다. 이런 ‘반품족’의 증가는 리퍼브 대상인 반품 제품들의 증가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아울러 1인 가구의 증가로 유통기한이 임박한 리퍼브 제품의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이유몰을 비롯 ‘떠리몰’, ‘임박몰’ 등 온라인 리퍼브 매장은 유통기한이 1주일도 채 안 남은 식품류를 값싼 가격에 내놓고 있다.
2030의 젊은 1인가구들은 이곳에서 ‘합리적’ 소비를 실천하고 있다. 이에 힘입어 작년 100여개였던 리퍼브 오프라인 매장은 올해 300여개 수준으로 증가했다. 업계는 올해 리퍼브 시장 규모가 작년 대비 약 30% 성장해 10조원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과거, 브랜드 제품 새것만 고집하던 소비 트렌드가 가성비를 중요시하는 합리적 소비로 변화하고 있다”면서 “성능이나 맛과 건강에 문제가 없다면, 값싼 제품을 구매하는 게 낫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리퍼브나 B급 제품은 재고 처리 성격의 상품이란 것을 인지하고, 물건 상태나 성능에 하자가 없는지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며 “교환이나 환불 여부도 체크해봐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한전진 기자 ist1076@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