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전 아현2구역 재개발 현장을 찾아가봤다. 최근 양화대교와 성산대교 사이 한강변에서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자살을 선택한 박모씨가 살던 동네다. 박모씨는 아현2구역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강제집행을 당한 이후, 씻지도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노숙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유서에는 ‘세 번의 강제집행으로 모두 뺏기고 쫓겨났다. 3일간 추운 겨울을 길에서 보냈고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렵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아현2구역은 서울지하철 2호선 이대역과 아현역 사이 6만5553㎡를 차지하는 재개발 지역이다. 이 자리에는 최고 25층짜리 공동주택 1419가구가 지어질 예정이다. 2016년 6월 관리처분인가를 받고 이주 및 철거가 진행돼 왔다. 이곳에 살던 지역 주민들은 현재 뿔뿔이 흩어진 상황이다.
마을의 첫 느낌은 마치 유령마을을 보는 듯 했다. 불과 몇 분 전만해도 아현역에서 내려 소란스런 도로와 상권을 지나왔는데, 이곳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기자는 추위에 몸을 한껏 웅크린 채 사연이 있는 마을로의 걸음을 내딛었다. 누군가로부터 이 마을에 얽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재개발 바람이 크게 휩쓸고 간 마을엔 한기만이 감돌고 있었다. 이곳에서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서 지내고 있는지, 사연을 물을 수 있는 존재는 부재했다. 집으로써의 생을 다한 상처 입은 공간들은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더 이상 집이라고 할 수 없는 흉측한 건물들의 창은 남아난 게 없었고, 방 안 곳곳엔 뜯어진 문짝과 소화기 등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골목엔 온갖 생필품들이 깨진 유리조각들과 나뒹굴고 있어 발 디딜 곳이 없었다.
조심히 걸음을 이어 마을 중심부로 들어가 봤다.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집을 발견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심히 문을 두들겨 봤다.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나 없었다. ‘아이가 자고 있으니 방문객은 이쪽으로 연락해주세요’라고 문 앞에 붙어있는 메모 속 전화번호로 연락을 취해봤다. 신호음은 길게 이어졌다. 재개발로 인한 강제철거는 마을뿐만 아니라 사람마저도 유령을 만들어 버린 듯 했다. 한 아이가 받았다.
아이는 엄마를 찾았다. 수화기를 건네받은 엄마는 자신을 캄보디아에서 온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기자는 왜 아직 이주하지 못했는지, 대체 여기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우리도 (저들이) 왜 그러는지 잘 몰라요. 미안해요”라는 어눌한 대답뿐이었다.
해당 집을 뒤로 한 채 염리동쪽으로 이어지는 길목을 따라 좀 더 걸었다. 길가에서 만난 아현동 옆 염리동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아현동 재개발 지역은 너무나도 폐허가 돼서 몇 가구가 살고 있는지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20가구가 남았다는 사람도 있고, 15가구가 남았다는 사람들도 있고, 저마다 소문으로만 떠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최근 한 어르신이 매일 같이 아침부터 나와서 몇 시까지 동네를 배회하다가 들어가더라”라며 “한평생 살던 동네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안타깝다. 날씨가 추워져서 그런지 요샌 보이지 않더라”라고 걱정했다.
이후로도 아현동에 현재 거주하고 있거나 거주했던 주민을 만날 수는 없었다. 다만 옆 동네인 염리동 주민들로부터는 전해들을 수 있었다. 염리동에서 떡집을 운영하고 있는 사장님은 “남일 같지가 않다. 염리3구역도 현재 재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염리4구역은 다행히 투표 결과 재개발 구역에 해당되지 않아서 그렇지, 언제 또다시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돼 그들처럼 될지 모른다”고 걱정했다.
이어 “아현동 마을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안타깝다. 거기서 50년 넘게 살고 지내던 노인분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하고 별의 별 생각이 다 들더라”라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화곡동, 응암동 쪽으로 많이 갔다고 하던데 쫓겨서 도착한 그곳도 결국 낙후된 지역이라 재개발이 이뤄질 텐데...”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길가에서 만난 염리동 한 지역 주민은 여전히 자행되는 비인간적 강제집행에 대해서 토로했다. 그는 “몇 개월 전에는 시꺼먼 옷을 입은 사람들이 저 동네로 우르르 몰려가더라”라며 “아마 거기 살고 있는 사람을 쫓아내기 위해서 동원된 사람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발걸음을 돌려 다시 아현역 쪽으로 걸었다. 혹시나 누군가 그들을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아현시장을 방문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끝내 아현2구역 철거민들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작은 슈퍼를 운영하고 있는 한 어르신은 “우리도 잘 모른다. 여기 상인들은 다 다른 마을에서 와서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철거민들 중에 땅이나 집이 있었던 사람들은 보상을 받을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마저도 없이 판자 얹어 놓고 살던 사람들은 막막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선집을 운영하는 사장은 “분명 우리 손님 중에 그 동네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라며 “2구역뿐만 아니라 아현동 일대 재개발이 전체적으로 일어나면서 시장이 많이 죽었다. 결국 모두가 살기 어려워졌다”고 서러움을 토로했다.
만두가게 사장은 “개발도 좋지만 어느 정도 선에서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마을이 없어지고 아파트가 들어서니 시장이 너무 삭막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언제 안 힘들었겠냐마는, 요새는 있는 사람들은 더 좋아지고 없는 사람들은 더 어려운 시대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아현동 일대 재개발 지역 주민 및 소상공인들의 올 겨울은 유독 더 춥고 길지 않을까 싶다. 사라져가는 마을 뒤로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이 보인다. 머지않아 아파트 단지들로 탈바꿈할 아현2구역을 떠나는 발걸음은 씁쓸하다.
한편 아현2구역 주민 박씨는 지난 4일 '저는 이렇게 가더라도 우리 어머니께는 임대아파트를 드려서 나와 같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적힌 유서를 남기고 한강변에서 투신 자살했다. 이와 관련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정동영 의원(민주평화당)은 재건축 철거민, 주거권네트워크,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전국철거민연합과 함께와 함께 마포구 아현2구역 재건축 철거민 투신 관련 재건축사업 철거민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진 바 있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