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주도가 녹지국제병원, 일명 국내 첫 영리병원 개설을 둘러싸고 소란스럽다. 제주도민을 비롯해 시민사회·노동자단체들은 제주 영리병원 허가철회와 원희룡 제주도지사의 퇴진을 촉구하며 서울과 제주에서 촛불을 손에 들었다.
이들은 국내 1호 영리병원이 될 제주 녹지국제병원 허가는 의료민영화 추진일 뿐만 아니라 공론조사 결과까지 뒤집은 민주주의의 파괴조치라는 점에서 ‘제주 영리병원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비난하며 독단적 결정을 내린 원희룡 지사를 규탄했다.
오는 21일에는 1차 촛불집회와 동일하게 오후 4시30분 제주도청 앞과 오후 6시 서울 광화문 파이낸셜 빌딩 앞에서 2차 촛불집회를 개최하기로 하고 국민의 건강권과 생명을 담보로 벌이는 시대의 희극이자 비극을 종결짓기 위해 계속해서 불을 밝히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대한의사협회를 포함한 보건의료단체들도 동참했다. 의사협회는 제주도가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의 녹지국제병원 개원 반대 권고를 무시하고 영리병원 개설을 허가하는 것은 국내 의료체계의 왜곡을 유발하고 역차별 등 많은 부작용이 초래될 것이라며 항의방문에 나서기도 했다.
심지어 ‘외국인 전용’이라는 조건부 허가를 받은 녹지국제병원까지 원희룡 지사의 결정에 반발했다. 이들은 공문을 통해 당초 제주도와 논의하는 과정이나 사업계획서 상 내국인 환자의 진료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으며 국내법 상 진료거부를 할 수 없으므로 조건부 허가는 받아들일 수 없기에 법적대응을 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하지만 원희룡 지사는 제주도민들로 구성된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의 개설반대 권고와 시민사회의 비난, 보건의료계의 우려와 녹지국제병원의 반발 모두를 무시하고 문제될 것이 없다는 말만을 되풀이하며 귀를 닫았다. 이 같은 원 지사의 행동은 2013년 진주의료원을 폐원 당시 홍준표 전 경상남도지사가 취했던 모습과 닮아있다.
홍 전 지사는 취임 직후인 2013년 2월, 진주의료원 폐업방침을 발표했고, 공공의료의 추락과 지역민의 건강권 침해 등을 우려한 일련의 비난과 반대를 묵살했다. 게다가 홍 전 지사와 박권범 전 진주의료원장 직무대행은 환자에게 퇴원과 전원을 강요하고, 의료적 안전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등 인권침해 행동도 서슴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 시민사회·노동자단체는 화살을 정부로도 돌리고 있다. 영리병원 설립금지를 공약으로 내걸고 적폐청산을 입에 담은 문재인 대통령이 설립논란이 불거진 후 지금까지 사업계획에 대한 재검증은커녕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사태를 묵인했다는 이유에서다.
아울러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의료기관의 개·폐업 결정 전권이 부여돼 중앙정부 차원에서 이를 견제하거나 제재할 권한이 없어 지자체장의 독단적인 결정에 어떤 조치도 취하지 못한 채 손을 놓고 수수방관만 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여전히 책임회피에만 바빠 보인다. 제주 영리병원 설립허가의 최종결정권자는 원희룡 도지사에게 있으며 승인 과정에서 법률적인 문제는 없다는 답변만을 반복할 뿐이다. 과거 홍준표 전 도지사가 진주의료원을 폐원할 당시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이를 막아서지 못했던 것과 유사하다.
그리고 그 결과 진주시를 비롯한 경남지역 주민들의 건강권은 위협받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울산경남본부는 “왜 영문도 모른 채 환자와 노동자가 병원에서 쫓겨나 거리로, 죽음으로 내몰려야 했다”고 전했다.
문제는 유사한 상황이 제주도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제주지부장은 “국민의 기본권이 더 이상 지자체장의 독단에만 맡겨져서는 안 될 것”이라며 무소불위의 권한을 제한해야한다는 뜻을 밝혔다.
대한민국 헌법 제36조 3항에는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해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진주의료원 폐업사태나 제주 녹지국제병원 개설논란과 같은 현실에서 헌법에 명시된 보건에 대한 국가의 보호는 제한적인 듯하다.
분명 포괄적인 국가의 보호가 이뤄지는데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 하지만 적어도 공공의료기관이 폐업하고, 국민이 반대하는 영리병원이 설립되는데 있어서 국가가 주어진 의무를 다해야할 것이다. 국민에게 의무와 책임을 요구하는 것과 함께.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