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박정희 정권의 유신 체제 선포 당시 비상계엄 포고령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지난 2010년 이후 박정희 정권의 계엄령과 긴급조치 등이 위법했다는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대법원3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지난 1972년 10월 계엄령 선포 당시 불법 집회를 연 혐의(계엄령 위반)로 기소돼 징역 8월을 확정받은 허모(76)씨의 재심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21일 밝혔다.
재판부는 “72년 비상계엄 포고령은 기존의 헌정질서를 중단시키고 유신체제를 이행하고자 그에 대한 저항을 사전에 봉쇄하기 위한 것이 분명하다”며 “계엄 포고가 발령될 당시의 정치 상황 및 사회상황이 계엄 요건인 ‘군사상 필요한 때’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어 “72년 10월 계엄 포고는 위헌이고 위법해 무효”라며 “포고령 내용은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최대한 보장하도록 한 당시 헌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언론·출판과 집회·결사의 자유, 영장주의 원칙, 학문의 자유, 대학의 자율성 등을 침해한다”고 설명했다.
허씨는 72년 11월 지인들과 모여 도박을 했다는 이유로 ‘불법 집회 금지’ 규정을 어겼다며 기소됐다. 지난 73년 징역 8월을 확정받았다. 허씨는 판결 이후 40년이 지난 2013년 12월 재심을 청구했다. 재심 청구를 수용한 창원지법은 지난 2016년 허씨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도 원심 판결을 유지했다.
대법원은 지난달에도 박정희 정권 당시인 지난 79년 10월18일 부산과 마산에 내렸던 계엄령과 위수령이 위법한 조치였다고 판단했다. 대법원3부는 지난달 29일 부마 민주항쟁 때 유언비어를 퍼뜨린 혐의(계엄령 위반)로 기소됐다가 징역 2년을 확정받은 김모(64)씨의 재심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김씨는 민주항쟁 당시 “데모 군중이 반항하면 발포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이번 데모에서 총소리가 났다”는 유언비어를 유포한 혐의로 기소됐다.
유신 헌법 당시 이뤄졌던 ‘긴급조치’에 대한 재심에서도 속속 무죄 판결이 나오고 있다. 같은 달 서울고법 형사11부(부장판사 성지용)는 대통령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던 A씨(62)와 B씨(61)씨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긴급조치 9호’는 75년 5월 제정돼 유신 헌법을 부정반대·왜곡·비방하거나 개정이나 폐지를 주장·청원·선동·선전한 경우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게 했다.
지난 78년 군인 신분이었던 이들은 전북 전주시의 한 교회 앞에서 열린 반정부시위에 참여했다. 이들은 “유신헌법 철폐하라” “긴급조치 해제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후 검거된 A씨와 B씨는 각각 징역 2년에 자격정지 2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다. A씨와 B씨는 대법원의 재심 판결로 39년 만의 명예를 회복했다.
대법원은 지난 2010년 박정희 정권의 긴급조치 1호가 ‘위헌’이라고 첫 판결했다. 이후 명예를 회복하고자 하는 개개인의 재심 청구가 진행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재심은 더욱 활발하게 이뤄졌다. 대검찰청 공안부는 전국 검찰청에 과거 긴급조치 피해자들을 ‘구제’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피해자가 청구하지 않더라도 검사가 나서 대신 재심을 청구하는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게 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