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미래의 미라이’ 어른들은 모르는 네 살 꼬마의 성장기

[쿡리뷰] ‘미래의 미라이’ 어른들은 모르는 네 살 꼬마의 성장기

‘미래의 미라이’ 어른들은 모르는 네 살 꼬마의 성장기

기사승인 2018-12-29 09:00:00


만만히 볼 영화가 아니다. ‘미래의 미라이’(호소다 마모루 감독)는 집 안에서 벌어지는 네 살 꼬마의 성장기, 그것도 애니메이션이다. 무슨 재미를 찾을 수 있을까 싶지만, 작은 아이가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며 성장하는 놀라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안에는 가족의 진정한 의미는 물론,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이어지는지 같은 존재론적인 고민도 담겨있다. 영화 전반에 깔린 따뜻한 시선과 보편적인 정서는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동시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미래의 미라이’의 주인공은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가족의 첫째 아들 쿤이다. 이제 막 태어난 여동생에게 잘해주겠다던 쿤은 약속과 달리 동생을 질투하고 괴롭히는 오빠로 돌변한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엄마는 여동생 미라이를 보살피는 데 정신이 없다. 아빠도 집안일에 바빠 놀아주지 않는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미라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바쁘다. 당황한 마음은 실망에서 분노로 진화한다. 결국 미라이는 내 동생이 아니라며 장난감으로 때리는 사태까지 일으킨다. 크게 혼이 난 후 정원으로 나간 쿤은 "왜 내가 싫어?"라고 묻는 미래에서 온 중학생 미라이를 만나게 된다.

‘미래의 미라이’는 어린 아이들이 어떤 경험을 발판으로 순식간에 성장하는지 상상력을 동원해 그려낸 작품이다. 영화에서 다루는 성장은 어른들의 입장에선 사소한 것들이다. 질투하던 동생을 더 이상 미워하지 않거나, 자전거를 배우거나, 떼를 쓰지 않는 것처럼 어느 가정에서나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이다. 하지만 네 살 쿤의 시점에선 작은 일이 아니다. 그를 둘러싼 세계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에 일어난 변화다.

영화는 쿤에게 일어난 작은 변화를 마치 스펙터클한 모험 성장 스토리처럼 능청스럽게 이어간다. 어떻게 여동생이 미래에서 왔는지, 쿤이 경험하는 환상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가벼운 놀이처럼 시작한 정원 판타지는 수십년 전 과거로도 가고 크기를 짐작할 수 없는 거대한 판타지 세계로 확장되기도 한다. 예상 범위를 가볍게 뛰어 넘어버리는 마지막 에피소드에 이르면 느슨하게 앉아 있던 자세마저 고쳐 앉게 된다.

영화에 담긴 다섯 가지 에피소드는 모두 주인공 쿤의 치기어린 투정에서 시작된다. 왜 투정을 부리는지 이해되는 면도 있지만 어이없을 정도로 이기적이고 당당한 행동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아무리 주인공이어도 이건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이면 정원에서 비현실의 세계가 펼쳐지며 예상 못한 이야기로 전개된다. 쿤은 다양한 인물들의 시공간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고 몰랐던 가족들의 모습을 발견하며 자기 자신을 되돌아본다. 아빠와 아들, 동생과 오빠 등으로 규정된 기존 관계를 넘어 한 인간으로 가족들을 바라보게 하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미래의 미라이’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현대 가족의 의미를 이야기라는 매개체로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 아주 작고 사소한 이야기를 소설이나 실사 영화가 아닌 애니메이션에서만 가능한 판타지로 표현하면서 왜 이 영화가 제작, 상영되어야 했는지를 설득해낸다. 다음달 16일 개봉. 전체 관람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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