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화의 인문학기행] 이탈리아, 열다섯 번째 이야기

[양기화의 인문학기행] 이탈리아, 열다섯 번째 이야기

기사승인 2019-01-15 18:00:00

세례당의 입구와 마주한 큰 건물이 피사 두오모, 즉 피사 대성당이다. 특히 피사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중세 로마 가톨릭성당으로 성모승천(Assumption of the Virgin Mary)에 헌정된 것이다. 성당은 건축가 부쉐토(Buscheto)의 감독으로 1063년부터 짓기 시작했다. 비용은 시칠리아에서 치른 무슬림과의 전투에서 얻은 전리품을 처분해 마련했다. 

같은 해 베네치아에서는 산마르코 대성당의 재건축이 시작됐던 만큼 피사와 베네치아 두 해양공화국 사이에 경쟁이 치열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보나노 피사노(Bonanno Pisano)가 제작한 성당 정면에 있는 청동문의 문고리에 기록된 날짜에 따르면 대성당은 1180년에 완공됐다. 

건축은 원래 교차부위에 웅장한 큐폴라가 있는 그리스 십자가 모양으로 설계됐지만, 라틴 십자가 모양으로 변경했다. 중앙의 네이브에 양측으로 두 개의 측랑을 두었고, 애프스와 세 개의 네이브를 가진 수랑(transept)을 두었다. 건물 내부를 보면, 검은색과 흰색의 대리석을 교대로 쌓은 아치를 둔 점, 돔을 타원형으로 만든 점 등 회교사원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아마도 부쉐토가 이슬람과 아르메니아 건축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성당의 외부는 전리품으로 얻은 다양한 색깔의 대리석, 모자이크와 청동작품들로 장식됐다. 그 가운데 지붕 동쪽에 있는 그리핀은 1061년 팔레르모전투에서 얻은 것이다. 성당의 파사드에 있는 청동문은 라이네리우스(Rainerius)성인의 문인데, 1180년 무렵 보나노 피사노가 주조한 것으로 신약에 나오는 24개의 장면을 묘사되어 있다. 1595년 대화재에서도 살아남은 작품이다.


처음에는 대성당 내부를 관람할 계획이 없었는데, 인솔자가 입장권을 구했다면서 일행들을 모아 입장하게 됐다. 문대현 인솔자가 여러 방면으로 애를 많이 썼다. 덕분에 성당안의 양쪽 벽에 가득 걸려있는 그림들은 물론 유명한 설교단도 보았다. 14세기 초, 지오반니 피사노(Giovanni Pisano)가 제작한 설교단은 역시 1595년 대화재에서 살아남은 것으로, 다각형의 상단에는 예수의 생애를 조각해 넣었다. 강단을 지지하는 기둥에 새긴 허큘리스의 조각은 중세에서는 보기 드물게 누드로 표현됐다. 

성당 안에 걸려있는 27점의 그림들은 구약의 이야기와 예수의 삶을 묘사한 것인데, 16세기와 17세기에 걸쳐 토스카나지역에서 활동한 화가들이 그렸다. 그 중에는 ‘아그네스 성녀’, ‘캐서린과 마가렛 성녀’, ‘베드로성인과 세례 요한’ 등 세 작품은 안드레아 델 사르토(Andrea del Sarto)가 그린 것이다. 그림이 걸려있는 중간에 보면 13세기 말에 키마부에(Cimabue)가 제작한 촛대받침을 들고 있는 천사의 청동상이 있다.

애프스 오른쪽에 있는 기둥 위에 올려져있는 암포라(amphora,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 사용된 목이 길쭉하고 바닥이 뾰족한, 손잡이가 둘 달린 항아리)는 성경에 나오는 ‘카나(Cana)의 결혼식’에서 예수가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을 일으켰을 때 사용된 것이라고 전해진다. 오른쪽 측랑에는 피사의 수호성인 라이네리우스 성인의 유해가 안치돼있다. 

피사의 대성당에는 교황 그레고리오 8세의 무덤도 있다. 본당 중심의 큐폴라에 걸려있는 램프는 갈릴레이의 램프라고 한다. 갈릴레이는 피사의 대성당에 걸려있는 램프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진자운동의 등시론(isochronism)’을 세우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원래의 램프는 지금 걸려있는 것보다 작은 것으로 지금은 캄포산토의 박물관에 보관돼있다고 한다.

대성당의 동쪽에 서 있는 종탑은 기울어진 모습 때문에 피사의 사탑(Torre pendente di Pisa)이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해졌다. 탑의 높이는 낮은 쪽에서는 55.86m, 높은 쪽에서는 56.67m다. 기저부에서의 벽 넓이는 2.44m이며, 탑 전체의 무게는 1만4500톤으로 추정된다. 꼭대기에 이르려면 296개 또는 294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이 차이는 7층의 북쪽에 있는 계단이 두 개가 적기 때문이다. 

탑이 기우는 현상은 건설 중에 나타나서 점차 심해졌는데, 1990년에는 5.5도까지 기울었다. 1993년부터 2001년 사이에 기울기를 교정하는 공사를 한 끝에 3.97도로 줄였다. 12세기 피사에서 활동하던 구글리엘모(Guglielmo)와 보나노 피사노(Bonanno Pisano)가 피사 대성당 종탑을 설계했을 것이라고 오랫동안 이야기돼왔다. 하지만 2001년의 연구에 따르면 활동 시기나 작품경향을 고려했을 때, 디오티살비(Diotisalvi)의 작품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종탑은 199년에 걸쳐 세 단계로 건설됐다. 종탑은 1173년 피사의 전성기에 건설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흰색 대리석을 쌓아 기단을 만들었는데, 전형적인 코린트양식으로 주두를 장식한 기둥을 연결한 폐쇄된 아케이드의 형태이다. 1178년 2층까지 건설이 진행되면서 탑의 남쪽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종탑을 세운 곳의 지반이 단단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기초를 3m밖에 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무렵부터 피사공화국은 제노나, 루카, 피렌체 등과의 전쟁을 이어가야 했기 때문에 거의 1세기 동안 종탑의 건설이 중단됐다. 종탑의 건설이 중단된 동안 기반토양이 다져지면서, 종탑이 기우는 현상도 완화됐다. 

1272년 캄포산토의 건축가 지오반니 디 시모네(Giovanni di Simone)가 맡아 종탑건설이 재개됐다. 종탑이 기우는 현상을 보완하기 위해 상층부는 기울어진 쪽을 높여지었다. 결국 종탑은 곡선의 형태로 지어졌다. 1284년 메로리아(Meloria) 전투에서 피사군이 제노아군에 패퇴하면서 공사는 다시 중단됐다. 1319년에 7층이 완성됐고, 1372년에는 종탑이 올려졌다. 토마소 디 안드레아 피사노(Tommaso di Andrea Pisano)가 고딕양식에 로마네스크양식을 조화시켜 만든 종탑에는 아름다운 음조의 장음계에 대응하는 7개의 종이 달려있다. 가장 큰 종은 1655년에 달았다.

피사의 사탑이 기울어지는 것으로 유명한 것 외에도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물체의 강하속도가 질량과는 무관하다는 실험을 한 장소로도 유명하다. 갈릴레오는 이곳에서 서로 다른 무게를 가진 포탄 두 개를 떨어뜨려 자신의 이론을 확인했다. 이 사실은 갈릴레오의 비서 빈센초 비비아니(Vincenzo Viviani)가 기록해 사후 출판된 갈릴레오의 전기,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역사 기록(Racconto istorico della vita di Galileo Galilei)’을 통해 전해졌다.

세례당과 대성당 사이의 공간에 북쪽으로 있는 캄포산토(Campo Santo)는 기적의 광장에 지은 네 번째이자 마지막 건물이다. 기념비적 묘지(Camposanto Monumentale) 혹은 오래된 묘지(Camposanto Vecchio)라고 한다. 12세기에 피사의 대주교 우발도 란프란키(Ubaldo Lanfranchi)가 제3차 십자군 원정에서 돌아오면서 골고다의 신성한 흙을 가져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었다. 

원래는 산타 레파라타(Santa Reparata) 교회의 세례당이 있던 폐허가 묘지로 쓰이던 장소였다. 처음에는 산티시마 트리니타(Santissima Trinità, 가장 신성한 삼위 일체)라는 교회로 짓기 시작한 것인데, 공사가 진행되면서 용도가 변경됐다. 직사각형 형태의 거대한 고딕 양식 회랑건물은 건축가 조반니 디 시몬 (Giovanni di Simone)에 의해 1278년부터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1284년 멜로리아 해전에서 피사군이 제노바에 패하면서 어려움을 겪다가 1464년에 완성됐다. 

캄포산토의 외벽은 43개의 폐쇄된 아치로 이뤄졌고, 2개의 출입구가 있다. 오른쪽의 것이 원래의 문이다. 우아한 고딕양식의 닫집으로 장식돼있으며, 닫집에는 14세기 후반 지오바니 피사노 (Giovanni Pisano)의 뒤를 이은 예술가들이 네 명의 성인으로 둘러싸인 성모 마리아를 그렸다. 이곳에 안치된 무덤들은 대부분 아케이드 아래에 있다. 캄포산토에는 고대 로마시대의 거대한 석관들을 모아두고 있기도 하다.

캄포산토의 벽은 1360년부터 제작되기 시작해 3세기 이상 이어진 프레스코화로 장식돼있다. 첫 번째 작품은 프란체스코 트라이니(Francesco Traini)가 남서쪽 벽에 그린 ‘십자가에 못 박힘(Crucifixion)’이다. 남쪽 벽에는 부오나미코 부팔마코(Buonamico Buffalmacco)의 ‘최후의 심판’, ‘지옥’, ‘죽음의 승리’ 및 ‘아나코레티 넬라 테바이드’ 등이 있다. 

북쪽 벽에는 15세기 무렵 베노쪼 고졸리(Benozzo Gozzoli)가 그린 ‘구약성경의 이야기들’이, 남쪽 아케이드에는 1377년부터 1391년 사이에 안드레아 보나이우티(Andrea Bonaiuti), 안토니오 베네지아노(Antonio Veneziano) 그리고 스피넬로 아레티노(Spinello Aretino) 등이 그린 ‘피사의 성인들 이야기’와 타데오 가디(Taddeo Gaddi)가 14세기 말에 그린 ‘욥기’가 있다. 북쪽 벽에는 피에로 디 푸키오(Piero di Puccio)의 ‘창세기 이야기’ 등을 볼 수 있다.

글·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평가수석위원

1984 가톨릭의대 임상병리학 전임강사
1991 동 대학 조교수
1994 지방공사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1998 을지의대 병리학 교수
2000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원 일반독성부장
2005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2009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2018 동 기관 평가수석위원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오준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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