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참 ‘이상한 패배’였다”
프랑스의 사학자 마르크 블로크는 지난 1940년 독일에 참패를 당한 프랑스군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프랑스는 지난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로부터 대승을 거뒀습니다. 그때의 기억 때문일까요. 28년 후인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과거와 똑같은 전술을 펼쳤습니다. 전차와 전투기로 중무장한 독일에 보병(步兵)으로 맞선 것이죠. 독일이 승리할 수밖에 없는 ‘이상한’ 전쟁이었습니다.
2019년 한국에서도 이상한 전쟁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질 수밖에 없는 미세먼지와의 전쟁입니다. 17일 미세먼지가 다시 한반도에 유입됐습니다. 앞서 13일부터 15일까지 사흘 동안 미세먼지가 전국을 뒤덮었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해당 기간 500여건이 넘는 미세먼지 해결 촉구 청원이 빗발쳤습니다. 온라인에서는 미세먼지로 인해 숨을 쉬기 힘들다는 비판이 쏟아졌죠.
정부는 미세먼지의 공습에 칼을 빼 들었습니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를 실시했습니다. 공무원들은 열화상 카메라를 통해 차량의 공회전을 단속했습니다. 행정·공공기관의 차량 2부제가 실시됐습니다. 서울에서는 2.5t 이상 노후경유차의 운행이 제한됐죠. 그러나 효과는 미미했습니다.
최근 한반도 미세먼지는 중국 탓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국내외 연구기관의 기상 자료와 위성사진 등을 통해 중국에서 한반도로 유입되는 오염물질의 띠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서해 최북단에 위치한 인천 옹진군 백령도에서는 서풍이 불 때마다 미세먼지 수치가 급증합니다. 백령도는 내륙과 멀리 떨어진 탓에 공장이나 차량이 많지 않습니다. 백령도의 서쪽에는 중국이 자리해있죠.
정부가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사이 피해는 커지고 있습니다. 국민은 매일 아침 마스크로 중무장하는 등 각개전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공기청정기로 ‘마지노선’을 구축하고 있지만 미세먼지를 막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생의 최전선에 선 일용직 노동자, 노점상 등 노동취약계층은 미세먼지에 속수무책 노출되고 있습니다. 미세먼지 마스크의 비싼 가격 탓에 저소득층에게 피해가 집중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이제는 전술을 바꿔야 할 때입니다. 정부의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는 국내 발생 미세먼지를 낮출 수 있으나, 국외발 미세먼지를 없애는 적절한 해법이 아닙니다. 중국이 모르쇠로 일관하는 상황에서 한반도 미세먼지의 원인부터 명확히 규명해야 합니다. 철저한 조사를 통해 미세먼지 발생 원인을 확인하고, 공조를 요청하는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합니다. 정부가 국내 미세먼지 저감에만 주력한다면 이상한 패배는 반복될 것입니다. 언제까지 ‘동장군’에 기대어 미세먼지가 물러나길 속수무책으로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 사진=곽경근 대기자 kkkwak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