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증인’(감독 이한)은 변호사 양순호(정우성)가 타성에 젖어가는 일상 속에서 ‘당신은 좋은사람이냐’는 질문에 관해 답하는 과정을 다룬다. 영화 속 순호는 지우라는 자폐 스펙트럼 증세를 앓고 있는 여고생에 의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재고하게 된다. 배우 정우성은 왜 순호를 선택했을까. 영화 개봉을 앞두고 최근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우성은 “일상에 대한 아쉬움을 순호로 해소했다”고 전했다.
“배우라는 직업이 가지는 특성상, 일상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거나 일상성에 대한 욕구를 해소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어요. 사실 배우는 언제나 남들에게는 특별한 사람이잖아요. 그렇다 보니 제가 채우고자 하는 욕망도 사실 어떤 캐릭터를 통해 대리만족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순호가 바로 그런 캐릭터였던 거죠. 순호가 영위하는 일상 안에서, 제가 해보고 싶었던 표현이나 느껴보고 싶었던 감정의 대리만족감이 순호를 통해 느껴졌어요. 어찌 보면 제가 순호를 연기해야 하지만 순호가 자연스럽게 정우성에게 얹힌 그런 느낌이기도 해요.”
최근 정우성이 연기해왔던 캐릭터와 순호의 결은 많이 다르다. 보는 사람도, 연기하는 사람도 편안하다.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지도, 자신의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고 작위적인 짓을 하지도 않는다. 한마디로 많이 편한 캐릭터다. 순호에 관해 정우성도 “연기하기 편했기 때문에 관객이 편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가 쭉 해왔던 역할이나 장르에 비해 순호는 좀 더 저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캐릭터였어요. 공기 좋은 숲속에서 숨 쉬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사실 여태까지 했던 캐릭터에는 디자인이 많이 필요했는데, 순호는 그런 게 필요 없었어요. 시나리오를 볼 때부터 순호는 개인의 개성이 있다기보다는 상대의 온도에 따라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싶기도 했죠. 대신 순간순간 보이는 위트를 강조하고 싶기도 했어요.”
정우성은 많은 배우들이 일상에서의 감정적 교감을 원하는지, 그리고 배우라는 직업이 화려한 반면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은지에 대한 생각을 모두가 할 거라고 말했다. 본인 또한 의도하지 않은 스트레스를,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받고 있었던 것 같다고도 밝혔다. 하지만 자신의 앞에는 운 좋게도 ‘증인’이 나타나주었다는 것이 그의 기쁨이다.
“누구라도 앞에 나타나면 움켜쥐게 되는 시나리오였어요. 이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제가 좀 지쳤다는 걸 자각했죠. 사실 그전에는 피곤한 캐릭터, 개성 강한 시나리오들을 주로 해왔는데 사실 그 안에서는 제가 얼마나 지쳐있는지 몰랐어요. 하지만 궤가 다른 이 시나리오를 보면서 ‘아, 너무 바쁘게 달려왔나’하며 자각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정우성’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가지고 있는 수식어와 이야기, 의미와 깊이는 너무나 많고 넓다. 지금 이 시점에서 정우성은 스스로를 돌아봤을 때 어떤 느낌일까. 어떻게 달려왔기에 그 긴 시간동안 계속해서 좋은 배우, 큰 배우로 남아있을 수 있었을까.
“그간 저 스스로를 어떤 사람으로 규정지으려고 하지 않았던 거 같아요. 저를 객관화해서 보고 싶었고, 제게 어떤 수식어가 붙더라도 만족하지 않고 나아가 ‘그 수식어가 나를 대변할 순 없다’는 생각을 늘 해오기도 했고요. 제 안에 저라는 사람을 더 많이 보여주고 싶고, 그런 노력을 지금도 하고 있고요. 그건 결국 저라는 배우를 완성시키는 과정의 연속인 듯 해요. 저는 지금도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완성하고 있는 과정 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전 분명 어떤 시기에는 스타였어요. 하지만 스타라는 말 안에서 그 말이 주는 좋은 것들에만 매몰됐다면 어느 순간에는 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스타는 현상일 뿐이며 남이 제게 준 것이지 제 것은 아니고요. ‘청춘의 아이콘’이라는 수식어 같은 것도 벗어던지려고 했어요. 수식어들이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벗어던지는 순간 그곳에 켜켜이 쌓이고, 그것도 쌓이게 되면 저의 여러가지 모습이 되죠. 그러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건 시간이에요.”
‘증인’은 다음달 13일 개봉한다.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