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정부의 24조원 규모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사업 선정을 두고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투자금융(IB) 분야의 먹거리 사업 부족에 시달리던 은행권은 이번 예타 면제로 참여 가능 사업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24조원 가운데 18조5000억원이 재정사업으로 추진되면서 은행권의 기대는 한순간 무너졌다.
30일 은행권에 따르면 정부는 전날 24조1000억원 규모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대상 23개 사업을 확정해 발표했다. 이 가운데 SOC사업은 약 16조원 수준이다.
은행권은 그동안 가계대출 중심의 수익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IB사업에 집중해 왔다. 은행 입장에서 IB사업은 자금주선 수수료와 함께 대출 이자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어 수익증대에 효자 역할을 해온 영향이다.
그러나 은행권은 정부의 SOC 예산이 지난 2015년 26조원에서 지난해 19조원까지 줄어들면서 참여 가능한 딜(DEAL) 부족 현상에 시달려 왔다. 이번 SOC사업 예타 면제 사업 확정으로 참여 가능한 사업이 늘어나길 기대한 배경이다.
이러한 기대는 정부가 예타 면제 사업을 대부분 재정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무너졌다. 이날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23개 사업에 드는 예산 24조원 가운데 18조5000억원이 국비로 마련된다. 민간 자금이 투입되는 나머지 5조5000억원도 지방비를 포함한 규모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24조1000억원 중 국비는 18조5000억원이다. 나머지는 지방비, 민간 부담이다. 국비는 앞으로 10년간 사업이 추진되기 때문에 연간 소요는 평균 2조원 정도가 안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결국 민간이 참여 가능한 사업은 최대로 잡아도 5조5000억원에 불과한 것. 이는 신한은행이 지난해 수주한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B노선(GTX-B)'의 사업비 6조원 보다 낮은 수준이다.
A 은행 관계자는 “5조원을 가지고 국내 금융투자업계와 은행업계가 참여할 경우 단일 은행에 돌아오는 이익은 크지 않을 것”이라며 “참여 가능한 사업이 많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에 한 참 못 미친다”고 토로했다.
은행권에서는 정부가 국비 사업을 선택한 배경이 현 정부의 민간투자사업에 대한 불신에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B 은행 관계자는 “현 정부 들어 민간투자사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형성되어 있다”며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이번 예비 타당성 면제 발표를 통해 그러한 인식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번 예타 면제사업에 대한 경고성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C 은행 관계자는 “금융사는 예비 타당성 검사 등을 토대로 사업의 성공 가능성 등을 검증한 뒤 사업에 참여하는데 예타 면제를 받을 경우 검증 없이 사업에 참여하는 꼴”이라며 “예타 면제 사업은 그만큼 위험성이 올라간다”고 밝혔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