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이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영화처럼 찍었어요. 넷플릭스는 주로 작은 화면에서 보지만 영화 감독님이 오시면서 영화 같은 퀄리티가 됐죠. 물론 제작환경이 영화와 완전히 똑같진 않았어요. 영화가 1이고 드라마가 10이라면 2~3 정도 됐어요. 또 드라마는 매회 기승전결이 있지만 ‘킹덤’은 300분을 하나의 서사로 갔잖아요. 그래서 6부작 드라마지만 300분 분량의 영화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배우 주지훈은 최근 인터뷰에서 넷플릭스 ‘킹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김성훈 감독과 배우 류승룡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럼, 여기서 질문. 영화처럼 찍은 드라마 ‘킹덤’은 영화일까, 드라마일까.
영화와 드라마 장르의 경계가 점점 옅어지고 있다. ‘영화 같은 드라마’는 이제 옛말이 됐다. 드라마는 영화처럼 찍고 영화는 다시 드라마화되고 있다.
지난달 25일 공개된 ‘넷플릭스’ 킹덤과 다음달 2일 종영을 앞둔 OCN ‘트랩’은 각각 6부, 7부에 불과하다. 분량이 짧은 데는 이유가 있다. 기존 16부작 기준의 드라마가 아닌 2시간 분량의 영화를 찍는 방식으로 촬영됐기 때문이다. 마치 영화 3~4편을 몰아서 찍는 것처럼 전체 분량을 한 번에 촬영해두고 드라마의 문법에 맞춰 편집하는 방식이다. 탄생 과정이 독특한 만큼 ‘트랩’에는 드라마나 미니시리즈 대신 ‘시네마틱 드라마’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킹덤’은 시즌1이 공개되기도 전에 시즌2 제작을 확정짓는 이례적인 행보를 보였다.
제작진도 바뀌었다. 주로 영화를 하던 제작진이 투입됐다. ‘킹덤’의 김성훈 감독은 ‘끝까지 간다’, ‘터널’ 등 영화만 찍어왔다. 드라마는 처음이다. ‘트랩’은 영화 ‘백야행’을 연출한 박신우 감독과 영화 '완벽한 타인', '역린' 등을 연출한 이재규 감독이 총괄 프로듀싱을 맡았다. ‘트랩’의 박신우 PD는 제작발표회에서 “원래는 영화로 준비하던 작품”이라며 “드라마 포맷이 맞는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바뀌는 건 제작 방식뿐 아니다. 하나의 콘텐츠가 다양한 매체에서 새롭게 탄생하는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도 활발해지는 추세다.
지난달 첫 방송을 시작한 tvN 월화드라마 ‘왕이 된 남자’는 2012년 개봉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리메이크 버전이다. ‘왕이 된 남자’는 단순히 영화의 아이디어를 빌려온 것을 넘어 드라마에 맞는 새로운 이야기를 덧붙였다. 섬세한 각색은 드라마의 높은 완성도로 이어져 호평받았다. 종영을 앞둔 지금까지도 시청률 1위를 지키며 순항 중이다. ‘왕이 된 남자’에 이어 ‘신과함께’, ‘라디오스타’ 등 관객들에게 사랑받은 한국 영화들이 줄줄이 드라마화를 앞두고 있다.
거꾸로 드라마를 영화화 하는 경우도 있다. OCN에서 두 시즌을 방송한 ‘나쁜 녀석들’은 스핀오프 영화 ‘나쁜 녀석들: 더 무비’로 재탄생된다. 드라마에 출연했던 배우 마동석, 김상중이 그대로 출연한다.
아예 영화와 드라마를 동시에 제작하는 사례도 있다. 네이버 자회사 스튜디오N은 자사 웹툰 ‘비질란테’를 영화와 드라마로 동시 제작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같은 배우들이 같은 세트에서 영화와 드라마를 동시에 찍는 방식이다. 이미 웹툰 원작으로 1, 2편을 동시 제작해 대성공을 거둔 ‘신과함께’의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접근이다.
영화와 드라마의 구분이 없어지는 건 관객과 시청자의 변화 덕분이다. 이제 영화, 드라마 포맷 자체보다 더 재미있는 콘텐츠로 시선이 쏠리는 분위기다.
남예종예술실용전문학교 연기과 이호규 교수는 “영화와 TV 드라마의 매체별 구분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전제한 후 “다만 최근 작품을 선보이는 플랫폼이 다양화되고 있다. 특정작품을 더 재미있는 서사와 플롯을 통해 시청자, 관객과 만나려는 시도는 더욱 다양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더욱 다양화되고 쉽고 재미있게 콘텐츠를 만끽하고 싶은 소비자들의 욕구는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