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페이 이대로 가면 또 하나의 지브로(Gbro)가 될 겁니다” 제로페이를 담당하는 한 공무원의 발언이다. 지브로는 서울시가 택시의 승차거부를 줄이겠다며 개발한 앱이지만 현재 소비자와 택시기사 모두에게 외면 받으며 탁상공론의 산물로 평가받고 있다.
정부와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제로페이를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제로페이는 QR코드를 이용한 계좌 송금 방식의 결제 시스템이다. 당초 서울시가 서울페이로 도입을 추진하다가 문재인 대통령의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정책과 맞물려 정부 사업으로 확대됐다.
제로페이는 도입 전부터 우려가 큰 사업이었다. 금융권은 물론 핀테크 업체, 심지어 학계에서도 제로페이가 소비자는 물론 소상공인들의 외면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결국 제로페이의 정식출범 한 달간의 성적은 이러한 우려를 현실화했다.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 제로페이 결제실적은 8633건에 결제금액은 1억9949만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1월 31일 기준 제로페이에 정식 등록한 가맹점이 4만6628개인 것을 감안하면 한 달 동안 가맹점당 거래실적이 0.19건, 4278원에 불과한 셈이다.
제로페이 외면받는 이유는= 제로페이가 외면 받고 이유는 무엇일가. 가장 큰 이유는 일단 사용이 카드에 비해 불편하다는 점이다. 카드만 내밀면 업주가 알아서 결제를 해주는 것과 달리 제로페이는 소비자가 앱을 키고 QR코드를 찍어 금액을 입력하는 방식으로 결제가 진행된다. 또한 제로페이에는 신용카드의 후불결제 기능이나 다양한 부가서비스도 존재하지 않는다.
불편함을 뛰어넘을 혜택도 부족하다. 정부는 제로페이 결제금액의 40%를 소득공제에 반영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연봉의 25%를 제로페이로 결제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제로페이 가맹점이 4만6600개 수준에 불과한 상황에서 사실상 달성 불가능한 조건이다.
여기에 소상공인들 역시 제로페이 사용에 시큰둥한 반응이다. 제로페이가 연매출 8억원 이하 가맹점에 대해 0%의 수수료율을 적용한다고 하지만 이미 매출 5억원 이하 소상공인은 0.5%~1.3%의 낮은 수수료율을 적용받고 있다. 이마저도 부가가치세 매출세액 공제를 받을 경우 0.1~0.4% 수준으로 낮아진다.
마포의 한 가구점 사장은 “고객이 제로페이를 이용할 경우 이득이 늘어나지만 얼마 되지 않는다”며 “얼마 되지 않는 이득을 위해 고객에게 제로페이 사용을 종용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혜택을 추가하겠다는 계획이다. 서울의 경우 390여개 공공·문화시설에서 제로페이 할인을 제공하고, 결제액의 1∼2%를 ‘T머니 마일리지’로 환급해 줄 예정이다. 여기에 제로페이 사용의 최대 걸림돌로 작용하는 신용카드의 공제혜택도 폐지를 검토하고 나섰다.
풀어야할 과제와 해법은= 다만 정부의 제로페이 혜택 확대에도 사라지지 않는 우려가 있다. 동종 서비스가 이미 시장에 출시된 상황에서 이를 뛰어넘을 제로페이 혜택과 서비스 품질을 정부가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금융권 관계자는 “제로페이는 민간시장에서 카카오페이나 네이버페이와 경쟁해야 한다. 지금은 정부의 정책성과 창출과 연결돼 지원이 확대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민간 업체만큼 혜택과 서비스 관리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로페이의 계좌이체 수수료를 언제까지 은행에 강제로 떠넘길 수 있는지도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정부가 제로페이 등을 통해 민간시장에 직접 개입하기 보다는 ‘민간 시장’ 활성화에 주력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더미래연구소는 “제로페이와 같은 모바일 직불카드는 기본적으로 정부가 제도적 환경을 구축·감독하고 유인책을 제공하되, 궁극적으로는 민간시장 중심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정부가 직접 공공의 지급결제 수단을 제공하게 되면 혁신의 유인동기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에서 추진 중인 모바일 직불서비스 등 민간의 공용인프라 구축을 적극적으로 독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