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술금융 확대를 위해 신용평가와 기술평가의 일원화를 추진한다고 밝히면서 시중은행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당국이 기술평가와 신용평가를 통합한 통합여신심사 모형의 금융사 활용을 확대하기 위한 압박 수단으로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의 출연금을 다시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전날 실물경제를 지원할 혁신금융 추진방안의 하나로 혁신·중소기업에 일괄담보, 미래성장성 평가에 기반한 자금을 향후 3년간 100조원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100조원 가운데 90조원을 기술금융을 통해 공급하겠다는 방침이다.
기술금융 확대를 위해 금융위가 내놓은 방안이 신용평가와 기술평가의 일원화다. 그동안 금융사의 여신심사 과정에서 금리인하 또는 대출한도 확대 등에만 활용되던 기술평가를 신용평가와 통합해 대출 여부에 직접 반영되도록 만들겠다는 것. 결국 기술수준에 따라 대출이 성사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의도다.
금융위는 이를 위해 통합여신심사 모형 활용 실적에 따라 금융사에 신보·기보의 출연금 감면 혜택을 주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금융위의 발표 직후 금융권에서는 한숨부터 나오고 있다. 금융사들은 이미 신보·기보의 출연금 압박을 겪어본 경력이 있어서다.
신보·기보가 신한·국민·하나·우리 등 은행권을 중심으로 금융사에서 거두어들이는 출연금은 한 해 1조4000억원(2017년 기준) 규모에 달한다. 이를 거두어들이는 과정에서 기술신용대출 실적 상위 1~2위 금융사는 출연료의 10%, 5%를 감면하고, 하위 1~3위 금융사에는 7%, 5%, 3%의 출연금을 더 거두어들인다. 실적 하위 금융사에서 출연금을 더 걷어 상위 금융사의 출연금을 깎아 주는 구조다.
금융위는 이같은 신보·기보의 출연료 차등적용 과정에서 모형 활용 실적을 중점적으로 들여다보겠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이러한 줄세우기식 경쟁 유도에 부작용이 뒤따른다는 점이다.
앞서 금융사의 기술신용대출 실적에 따른 신보·기보 출연금 차등화 이후 ‘무늬만’ 기술금융인 대출이 급격히 증가했다. 기술평가서 한 장에 담보대출이 기술금융 대출로 둔갑하거나, 기술금융 실적을 늘리기 위해 기술평가 등급 조작이나 날림 심사가 늘어난 것. 여기에 금융사 간 우수 기술기업을 빼오기 위한 출혈 경쟁도 벌어졌다. 금융사의 한숨이 나오는 배경이다.
따라서 금융권에서는 통합여신심사 모형 활용에 따른 신보·기보의 출연금 감면이 단순 실적 평가에서 벗어나 지원성과 평가로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기술금융 지원에 따른 기업의 성과를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평가에 따른 페널티를 제외하고 포상으로만 인센티브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평가 결과에 따른 페널티가 부과될 경우 출혈 경쟁이나 부실 여신심사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인센티브가 포상으로만 마련될 경우 건전한 경쟁 환경이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통합여신심사 모형의 안착을 위해 당분간 신보·기보의 출연금 페널티 적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신보·기보의 출연금 차등 적용에 따른 금융사간의 양적 경쟁에 따른 부작용은 테크평가 개편에 따라 상당부분 개선됐다”며 “2020년까지 통합여신심사 모형의 안착을 위해서 페널티를 적용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