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생일’ 전도연 “‘슬퍼야 돼, 울어야 돼’ 생각 안 하려고 했어요”

[쿠키인터뷰] ‘생일’ 전도연 “‘슬퍼야 돼, 울어야 돼’ 생각 안 하려고 했어요”

기사승인 2019-04-03 05:00:00


“영화 ‘밀양’ 이후로 아이 잃은 엄마 역할은 안 하겠다 생각했어요.”

2007년 개봉한 ‘밀양’(감독 이창동)은 전도연에게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다. 그 후로도 비슷한 역할의 시나리오가 밀려들었지만 모두 거절했다. 영화 ‘생일’(감독 이종언)은 그랬던 전도연의 결심을 12년 만에 깨게 만든 영화다. 전도연은 ‘생일’에서 사고로 아들을 잃고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가는 엄마 순남 역을 맡았다. 3년이 지나도 그날의 기억을 잊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아들의 존재를 느끼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최근 서울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전도연은 이종언 감독의 출연 제안을 두 번 거절했다고 털어놨다. 아직 현재 진행 중인 세월호 참사를 다루는 것에 대한 부담과 아이 잃은 엄마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과거 결심이 그 이유였다. 그럼에도 출연하게 된 건 시나리오를 읽으며 느낀 좋은 점이 더 컸기 때문이다. 전도연은 “마냥 아프고 슬픈 얘기 아니었다. 아픔과 슬픔을 극복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얘기였다”고 설명했다. 또 ‘밀양’에서 스태프로 함께 일했던 이종언 감독에 대한 믿음도 컸다.

“감독님에 대한 신뢰는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부터 생겼어요. 이종언 감독은 ‘밀양’을 찍을 때 이창동 감독님의 연출부였어요. 저를 ‘언니’라고 불렀고, 전 ‘종언아’라고 불렀죠. 그랬는데 ‘저 이런 거 썼습니다’라고 시나리오를 가져왔더라고요. ‘언니랑 같이하고 싶다’고 했죠.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바로 감독님이라고 불렀어요. 그 글을 쓴 이종언 감독을 존중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거든요. 감독님은 전처럼 편하게 하라고 했지만, 제가 불편해서 그런 게 아니었어요. 상대에 대한 예의고 존중하는 마음이었죠. 그런 마음이 들게 하는 시나리오였어요.”

‘생일’은 전도연에게도 선뜻 출연을 결정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었다. 순남이 느낄 감정을 체화해서 연기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도 모두 말렸다. 전도연 역시 촬영하는 동안 끙끙 앓느라 잠을 설쳤다. 근육이 심하게 뭉쳐 운동하러 가서는 “출산 장면을 찍었냐”는 얘기까지 들었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부터 정말 많이 울었어요. 모니터해달라고 부탁한 지인들도 지인들도 하나같이 오열하면서 저를 말리셨죠. 힘든 얘기인데 감당할 수 있겠냐고 하더라고요. 막상 하겠다고 결정한 이후에는 순남의 감정보다 제 감정이 앞서 나갈까 봐 걱정을 많이 하고 의심했어요. 특히 순남이 아파트 방에서 우는 장면이 부담스럽고 힘들, 아니 무서웠어요. 시나리오엔 명백하게 순남이 느낄 감정이 적혀있어요. ‘순남이 아파트가 떠내려가라 운다’라고요. 제가 느끼는 대로 하자고 생각했는데 너무 명확하게 쓰여있어서 부담스럽잖아요. 방법은 없고 자꾸 생각을 떨쳐내려고 했어요. ‘슬퍼야 해, 울어야 해’ 같은 생각을 안 하려고 했죠. 카메라가 돌기 전까진 계속 잘할 수 있을까 무서워하면서 촬영했어요.”

연기 이외의 고민도 컸다. 아직 슬픔이 사라지지 않은 세월호 참사를 영화 소재로 쓰는 것부터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는 상황이 마음에 걸렸다. 유가족들이 영화를 어떻게 볼지도 중요한 문제였다. 전도연은 “지금도 그 부담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다 끝난 이야기가 아니라 계속 살아가야 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사람들의 피로도가 높고 오해도 있잖아요. 아직 모든 게 규명되지도 않았고요. 그 때문에 혹여라도 제 연기 속 말 한마디가 오해의 골을 깊게 만들지 않을까, 없던 오해가 생기지 않을까 조심스러웠고 어려웠어요. 영화를 시작할 때부터 촬영이 끝나고 홍보를 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그래요. 말 한마디가 어렵고 조심스럽죠. 개봉일이 정해진 이후부터가 제일 무서운 시간이었어요. 영화가 공격당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영화를 보면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알 텐데, 정치적인 이야기나 이슈를 불러일으킬 영화가 아니란 걸 알 텐데 보기 전까진 모르는 거잖아요. 그래서 제작보고회에 서기까지가 정말 힘들었어요. 막상 제작보고회를 하니까 배우나 영화에 참여한 사람들도 그렇지만, 그 자리에 오신 기자들도 다 똑같이 어렵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더라고요. 그걸 느끼니까 조금 힘이 났어요.”

전도연은 일상에선 순남과 다르다며 웃었다. 힘든 일이 있으면 ‘나 힘드니까 위로 좀 같이 해줘’라고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스타일이란다. 그러면 세상이 끝날 것처럼 무겁고 심각했던 일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무섭고 걱정이 많았던 결국 ‘생일’도 결국 전도연에게 위로와 응원이 됐다.

“저한테 ‘생일’은 외면하고 싶은 걸 용기 있게 맞섰다는 의미가 큰 영화예요. 슬프고 마음을 다칠 줄 알았지만, 오히려 제가 더 위로를 받은 것 같아요. 하루하루 감사함을 느끼고 힘을 받았죠. 위로받고 응원받고 힘이 됐어요. ‘생일’은 제게 그런 작품이에요.”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 사진=매니지먼트 숲 제공

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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