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상 철거·ILO 협약 지연…문재인 정부, 노동계와 관계 ‘삐걱’

노동자상 철거·ILO 협약 지연…문재인 정부, 노동계와 관계 ‘삐걱’

기사승인 2019-04-17 06:44:00

노동친화성을 강조했던 문재인 정부의 사회·경제 정책과 관련해 노동계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등은 16일 오전 서울 청와대 앞에서 부산 지역 강제동원노동자상(노동자상) 철거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부산시는 지난 12일 행정대집행을 통해 부산 동구에 세워졌던 노동자상을 철거했다. 민주노총 등 시민단체가 동상 설립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노동자상은 일제강점기 국내외로 끌려갔던 강제동원 노동자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민주노총,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등의 노동단체가 중심이 돼 시민단체와 함께 일본 단바망간기념관, 서울 용산역 앞에 노동자상을 건립했다. 민주노총과 시민단체는 부산에 이어 대전, 광주, 울산 등에도 새로운 노동자상 건립을 준비 중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정부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부산시는 과거를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노동자와 시민단체의 염원을 짓밟고 노동자상을 탈취했다”며 “문재인 정부가 수수방관한 탓도 크다. 민주노총은 강제 철거에 맞서 부산시와 정부를 향해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계가 정부에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노동자상 설립뿐만이 아니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이 지연되는 것 또한 노동계를 들끓게 하는 요인이다. ILO 핵심협약 비준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당시 노동 공약이다. 우리나라는 ILO 가입국이지만 결사의 자유, 단결권 및 단체교섭, 강제노동 금지 등의 ILO 핵심 협약에 28년째 비준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 ILO 협약 비준 관련 결론이 날 것으로 예상됐으나 경영계의 반발로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민주노총 측은 지난 15일 보도자료를 통해 “ILO 핵심협약은 기본 가운데서도 기본인 노동기준”이라며 “노동 3권을 축소시키고 사용자 노조 공격권을 보장하려는 국회의 법 개악 시도는 민주노총의 총파업과 총력투쟁을 부를 뿐”이라고 강조했다.  

탄력근로제 확대와 최저임금법 개정안 등 정부의 노동정책도 노동계의 질타를 받고 있다. 탄력근로제는 특정일의 노동시간을 연장하는 대신 다른 날의 노동시간을 단축해 일정기간 평균 노동시간을 법정노동시간에 맞추는 방식이다. 즉, 일감이 몰리는 기간에는 오래 일을 하고 업무가 없을 때는 노동시간을 줄여 평균 노동시간을 주 52시간에 맞추는 것이다. 탄력근로제가 인정되는 단위기간은 본래 2주 이내 또는 3개월 이내였다. 그러나 지난 2월 경사노위는 단위기간을 최대 6개월로 확대하는 법안을 내놨다. 이와 관련 노동계 등에서는 “노동자의 과로사를 합법화하는 법안”이라고 반발했다.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정안은 최저임금심의위원회를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는 것이 골자다. 정부 추천의 전문가로 구성된 구간설정위원회가 최저임금의 인상폭 구간을 미리 설정하기에 노동계의 입장이 반영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민주노총 측은 문재인 정부의 ‘노동존중’ 의지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노동정책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면서 “‘주52시간제’와 최저임금 인상 등 실제로 이룬 것도 있지만 이후 해당 정책을 밀고 나가는 동력이 부족하다. 경영계의 요구에 따라 정책 노선을 바꾸는 것이 실망스럽다”고 꼬집었다. 주52시간제는 탄력근로제 확대로 인해, 최저임금 인상은 최저임금법 개정안으로 인해 사실상 무력화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민주노총은 지난 2017년 대선 직후 “문 대통령의 당선은 의미가 크다”며 “문 대통령이 ‘노동이 존중받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한 선언과 약속에 주목한다. 진정성을 보여달라”는 논평을 냈다. 문 대통령도 “노동계가 국정운영의 파트너라는 확고한 인식을 갖고 있다”며 노조와의 대화를 강조해왔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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