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50대 남성·판사 출신으로 대표되던 헌법재판관의 ‘벽’이 무너졌다. 여성, ‘향판’, 변호사 등의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물들이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되며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우즈베키스탄에서 전자 결재를 통해 이미선·문형배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을 재가했다. 두 신임 재판관의 임기는 이날 오전 0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인 18일 서기석·조용호 헌법재판관이 퇴임하며 생긴 공백을 바로 메우겠다는 뜻이다.
이번 임명에 따라 헌법재판소 역사상 처음으로 3인 여성 재판관 시대가 열렸다. 현재 헌법재판관 9명 중 3명은 여성이다. 비율로 따지면 33%다. 지난 1988년 헌법재판소 설립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지난 2003년 전효숙 전 헌법재판관이 첫 여성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됐다. 지난 2006년 전 전 재판관 사임 이후 끊겼던 여성 헌법재판관의 명맥은 지난 2011년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이 임명되며 이어졌다. 이정미 전 재판관 후임으로 지난 2017년 이선애 헌법재판관이 임명됐고, 지난해 이은애 헌법재판관이 역대 4번째 여성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됐다. 이미선 헌법재판관이 합류하며 여성 헌법재판관의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됐다.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서만 활동한 이른바 ‘향판’ 출신 재판관의 명맥도 다시 이어지게 됐다. 이미선 재판관과 함께 임명된 문 재판관은 경남과 부산에서만 판사 생활을 해왔다. 지난해 퇴임한 향판 출신 김창종 전 헌법재판관의 뒤를 잇게 된 것이다. 문 재판관은 지난 9일 인사청문회에서 “생의 대부분을 지방에서 살아온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헌법에서 선언한 지방분권의 가치가 최대한 실현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판사 출신이 아닌 ‘순수 변호사’가 헌법재판관에 임명된 것도 새로운 변화 중 하나였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지명으로 지난해 이석태 헌법재판관이 취임했다. 법관, 검찰 경력이 없는 변호사 출신이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된 최초의 사례다. 이석태 헌법재판관은 변호사로 법조인생을 시작, 외길을 걸어왔다. 고(故) 박종철 열사의 유가족이 국가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사건,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재심 등을 맡아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받았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되면서 ‘보수 색채’를 띠었던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달라질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11일 산부인과 의사가 제기한 ‘낙태죄 위헌’ 헌법소원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불합치는 조항의 위헌성을 인정하면서도 특정 시점까지는 유효하다고 판단하는 결정이다. 재판관 4명은 헌법불합치, 3명은 단순위헌 의견을 냈다. 합헌 의견은 2명뿐이었다. 지난 2012년 낙태죄 합헌 결정을 뒤집은 것이다.
일각에서는 군 동성애 처벌을 규정한 군형법과 사형제 폐지 등에서도 향후 전향적인 판결이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2월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군 동성애 처벌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도 지난 2017년 제청돼 현재까지 심리 중이다. 헌법재판소는 앞서 사형제와 군 동성애 처벌 조항 등을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