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택시장에서는 무순위 청약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정부의 강도높은 대출규제가 맞물리면서 아파트 분양시장이 현금부자들만의 리그로 변실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업계는 두 가지 입장으로 나뉘었다. 한 쪽은 대출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인 반면, 다른 한 쪽은 대출규제의 문제가 아닌 조세 형평성 등 사회의 근본적인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무순위 청약은 청약통장 없이도 만 19세 이상이면 신청이 가능하고, 주택 보유 및 세대주 여부도 무관하게 접수가 가능하다. 또 당첨자 이력 기록이 남지 않아 추후 1순위 청약을 넣는데도 제약이 없다. 다만 투기·청약과열지역에서는 해당 주택건설지역 또는 해당 광역권(서울의 경우 수도권) 거주자여야 한다.
지난 16일 진행한 홍제역 해링턴 플레이스 무순위 청약에서도 미계약분 174가구 분양에 5835명이 몰려 경쟁률이 평균 33.5대1에 달했다. 서울 동대문구 e편한세상 청계센트럴포레 역시 미계약분 지난 2월 90가구 무순위 추첨 분양에 3000여명이 신청하기도 했다.
이에 일각에선 서울에서 무주택자의 청약기회가 좁아지는 데 반해 현금 동원이 가능한 부자들에게만 오히려 청약기회가 넓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무순위 청약에서는 중도금 대출 가능 여부가 분양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9억원 초과 주택은 원칙적으로 중도금 대출이 금지되면서 현금 동원이 가능해야 청약이 가능하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대출규제 등 시장이 무주택자 위주로 가다보니까 분양가가 비싼 물량들은 필히 미분양이 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며 “그런 물량들이 무순위 청약을 통해 해소가 되는데, 자금 동원력이 있어야 하는 만큼 현금부자들의 줍줍현상이나 투기수요가 몰리는 식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현금부자들만의 리그로 전락…대출규제, 풀어야 해” = 업계에선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출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쪽과 아니라는 쪽으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우선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쪽은 정부의 강도 높은 대출 규제로 인해 서울 등 인기지역의 경우 무주택자의 청약기회가 좁아지고 있는 반면, 현금 동원이 가능한 부자들에게 오히려 청약기회가 넓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권대중 교수(명지대 부동산학과)는 “무순위 청약이 인기 있게 된 배경에는 정부의 청약시장 규제가 강하게 작용했다”며 “무순위 청약은 청약통장이나 가점 등이 필요 없어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에 1순위 당첨이 어려운 수요자들이 대거 몰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당초 전용면적 85㎡ 이하 주택의 경우 수도권 공공택지와 투기과열지구에서는 모두 가점제를 적용해 공급하며, 청약과열지역에서는 75%를 가점제로 당첨자를 가리도록 했다”며 “하지만 분양가가 9억을 넘으면 대출을 받을 수 없게 되는 규제가 추가되면서 현금부자들만 무순위 청약에 성공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로썬 이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규제를 완화하는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상속·증여 등 불평등한 사회구조 때문” = 반면 일각에선 대출규제 완화가 근본적 해결방안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었다. 이들은 무순위 청약이 현금부자들만의 리그가 되어가는 근본 원인은 대출규제에 있다기보다, 부의 세습으로 이어지는 사회 전체적인 불평등한 구조에 있다고 봤다.
진미윤 LH토지주택연구원 박사는 “이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근본 원인은 단순히 정책상의 허점이라기보다 빈익빈부익부라는 불평등한 사회적 구조 탓이 크다”며 “현금부자들의 상당수가 상속이나 증여 등 편법적인 방법으로 벌어들인 수익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상속, 증여 등의 문제가 조세형평성 차원에서 해결된다면 무순위 청약이 현금부자들만의 소유가 되지도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지금처럼 계약시점에 이르러서 청약 합격 여부를 결정하지 말고, 당초 청약시점부터 꼼꼼하게 분류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무분별한 청약은 계약시점에 이르러 부적격자가 속출하게 되면서 시장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권일 부동산인포 팀장은 “대출규제 등으로 인해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대출규제 때문에 현금부자들만 혜택을 본다는 주장에 대해선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과 같은 정부 기조 하에선 규제를 푸는 쪽 보다는 오히려 청약 시점에 꼼꼼하게 따져서 무순위 물량이 최대한 적게 나도록 거르는 것이 중요하다”며 “지금은 누구나 다 청약할 수 있게끔 하고 계약시점에 이르러 거르고 있는데 이같은 상황이 혼란의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