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 된 국회’...바른미래 사보임‧한국 집단점거‧민주 비상대기[여의도 요지경]

‘전쟁터 된 국회’...바른미래 사보임‧한국 집단점거‧민주 비상대기[여의도 요지경]

기사승인 2019-04-27 05:00:00

지난 23일 국회에는 전운이 감돌았다. 전날 여야 4당이 합의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이 이날 추인됐기 때문이다. 이후 자유한국당에는 의원 총동원령이 발령됐다. 더불어민주당 정개특위‧사개특위 소속 의원들에겐 언제고 회의 소집에 응할 수 있도록 비상대기령이 떨어졌다. 캐스팅보트를 쥔 바른미래당은 사보임 공방에 휩싸였다.

불만 당기면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한 일촉즉발의 상황. 25일 결국 회의를 소집하려는 민주‧정의당과 이를 저지하기 위해 회의실을 점거한 한국당의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26일에는 ‘빠루’(노루발못뽑이)‧망치 등의 도구들까지 동원됐다.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한 이번 주(4월22일~26일) 국회의 ‘패스트트랙’ 공방을 되짚어봤다.

22일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패스트트랙을 태울 선거제‧개혁법안에 대해 극적 합의했다. 합의안에는 준연동형 비례대표 도입을 골자로 한 선거제 개혁, 수사권과 제한적 기소권을 부여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이 담겼다.

이튿날 여야 4당은 일제히 의원총회를 열고 합의안에 대한 의원들의 동의를 구했다. 민주당과 정의당, 민주평화당은 만장일치로, 바른미래당은 마라톤 회의 끝에 12(찬성):11(반대)로 합의안을 추인했다. 

여야 4당이 합의한 일정에 따르면 합의안은 25일 국회 소관 상임위에서 의결을 거친 뒤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될 방침이었다. 하지만 패스트트랙 처리는 반대 목소리를 내왔던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일부 의원들의 철통 방어선에 의해 저지됐다.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는 당 소속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오신환‧권은희 의원에 대한 사보임(기존 위원을 새 위원으로 교체)을 결정했다. 패스트트랙 의결 요건인 소관 상임위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다. 앞서 오 의원과 권 의원은 공수처 합의안에 대해 반대의 입장을 피력해왔다.

바른미래당 일부 의원과 한국당 의원들은 즉각 반발에 나섰다. 국회법에 따르면 사보임 결정의 권한은 각 당 원내대표에게 있지만 임시국회 회기 중에는 불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원내대표는 의원의 질병 등 중차대한 이유가 있을 경우라는 예외조항을 이유로 들며 사보임을 강행했다.

바른미래당 관계자는 “당내 사보임을 찬성하는 의원들도 이번 당 지도부의 사보임 결정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당 분열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다 좋자고 하는 건데 이렇게까지 절차를 무시해도 되는지 모르겠다는 의견이 있다”고 전했다.

이에 한국당은 당 소속 의원과 보좌진 등에게 총동원령을 발령했다. 이들은 먼저 오 의원의 사보임 허가를 막기 위해 최종 결재권자인 문희상 국회의장을 찾아갔다. 요구 과정에서 고성과 설전이 벌어졌고 문 의장은 저혈당 쇼크 증상으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됐다.

병상 중이던 문 의장의 결재로 사보임이 결정되자 한국당은 정치개혁특위와 사법개혁특위가 열릴 만한 세 개의 회의실을 점거했다. 일부 의원들은 사개특위 위원으로 교체된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실 앞을 봉쇄했다. 결국 채 의원은 경찰‧소방서 등에 신고해 감금 6시간만에 탈출에 성공했다. 

민주당에도 비상대기령이 떨어졌다. 민주당 소속 정개·사개특위 위원들은 회의 소집에 곧바로 응할 수 있도록 25일 늦은 밤까지 국회에 머물렀다. 개별일정으로 대기가 어려운 정개특위 위원 박완주 의원을 사임 하고 권미혁 의원을 보임하기도 했다.

결국 법안을 접수하려는 민주당과 이를 막으려는 한국당의 충돌을 시작으로 국회 곳곳에서는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육탄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민주당 의원과 보좌진, 당직자 중 여럿은 타박상으로 통증을 호소했고, 한국당 김승희·이철규 의원은 갈비뼈 골절로 병원을 찾기도 했다. 

이에 민주당 지도부는 영상을 근거로 한국당 의원 10여명, 당직자 및 보좌진 10여명을 국회법 위반 등으로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바른미래당 지도부는 비공개회의 등을 통해 향후 대응 전략을 짜는 데 골몰 중이다. 국회 본청에서 밤샘 농성을 벌여온 한국당은 민주당의 법안 접수와 정개·사개특위 회의를 막기 위해 주요 장소에 인력을 배치했다.

한편 이 같은 여야 대치의 중심에 있는 민주당과 한국당 지지율은 차기 총선을 앞두고 오히려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김대진 조원씨앤아이(여론조사기관) 대표는 “두 정당에게는 굉장히 필요했던 극한 대립일 수 있다”면서 “이번 대치를 각 당의 지지층을 결집시키려는 방도로 이용하려는 셈이 보인다”고 주장했다.

실제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22∼24일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1508명에게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5%p)한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과 한국당 지지율은 각각 38.6%, 32.1%로 전주 대비 0.8%p 상승했다.

엄예림 기자 yerimuhm@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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