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측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바이오 사업을 신성장동력의 비전으로 내세웠던 것은 사실상 (합병을 위한) 구실이 아닌지 의심이 든다. 과연 바이오 사업이 삼성의 주축으로 성장 가능할지도 의문”
얼마 전 만난 증권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익명을 요구한 내용이기도 하고 주관적 판단에 따른 것이기에 객관적인 평가는 어렵지만 설득력은 있어 보인다. 삼성물산은 지난 2015년 합병 당시 ‘글로벌 의식주휴(衣食住休)·바이오 선도기업’을 통합 삼성물산의 비전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논란과 관련한 일련의 흐름을 볼 때 이 같은 의심을 지우긴 어렵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논란이 또다시 수면 위로 오르면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혐의와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은 삼정KPMG와 딜로이트안진 소속 회계법인 관계자들이 “당초 금융당국과 법원에서의 진술과 달리 콜옵션 약정(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이전)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사전에 합작 계약서를 입수해 콜옵션을 알고 있었다’고 당초 진술을 그대로 뒤엎은 것이다.
콜옵션과 관련된 부분이 문제가 되는 까닭은 간단하다. 콜옵션과 관련된 내용의 인지 여부에 따라 기업가치는 크게 달라질 수 있어서다.
삼성바이오는 당시 2012년 당시 자회사였던 삼성에피스를 세우면서 합작사인 미국 바이오젠에 삼성에피스 지분을 ‘50%-1주’까지 살 수 있는 권리인 ‘콜옵션’을 부여했다. 하지만 관련 공시를 지난 2013년 말까지 공시하지 않았다가 2014년에 와서야 한줄 정도로 콜옵션 부여 사실을 밝혔다. 하지만 당시에도 콜옵션이 미치는 영향, 가격 등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 2014년 감사보고서에는 콜옵션과 관련해 “Biogen Idec Therapeutics Inc. 은 당사와의 주주간 약정에 따라 종속기업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지분을 49.9%까지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고 언급할 뿐이다.
이후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5년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에 관계회사로 변경했다. 이 같은 회계 기준 변경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당시 4조5000억원의 장부가 이익과 1조9049억원에 달하는 당기순이익을 거뒀다. 금융당국은 콜옵션과 관련해 “콜옵션 존재를 인지하고도 중요 내용을 부실하게 공시했다”고 지적했다.
회계법인 입장에서 본다면 콜옵션의 내용을 회사 측이 알려주지 않을 때 감사과정에서 잡아내기 쉽지 않다. 하지만 콜옵션 문제의 인지 여부에 상관없이 이후 회계법인의 ‘책임론’도 함께 뒤따른다. 이미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삼정회계법인 등 국내 대형 회계사의 ‘부실 평가’가 도마에 오른 바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김병욱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국내 회계법인이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기업평가를 증권사 보고서를 짜깁기해 판단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게다가 증권업계도 이번 쟁점에서 반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당시 각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한 곳을 제외하고 삼성바이오 관련 콜옵션 부채 가치를 리포트로 반영하지 않았다.
최근 다시 수면 위로 오른 삼성바이오 사태로 인해 회계 및 금융투자업계에 대한 불신은 더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평가에서 전문가집단인 회계법인이 부실한 분석을 해도 반성하지 않는다면 이와 유사한 논란은 앞으로 계속 이어져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유수환 기자 shwan9@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