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못 알아먹을까봐’ 사과문 번복한 SH공사…책임성 문제

[기자수첩] ‘못 알아먹을까봐’ 사과문 번복한 SH공사…책임성 문제

기사승인 2019-05-03 05:00:00

“이번 1차 행복주택 신청자분들께 철저한 검증 없이 문자를 발송해 혼선과 심려를 끼쳐드린 점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지난 26일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행복주택 서류심사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발표한 사과문이다. 이날 SH공사는 1차 행복주택 서류심사 대상자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합격자와 불합격자를 뒤바꿔서 문자를 전송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공사는 1차 행복주택 서류심사 대상자로 선정됐다는 문자를 5366명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이 가운데 불합격자 931명이 포함되면서 정작 서류심사 대상자 959명이 누락된 것. 

이와 관련 공사 측은 직원의 실수로 인해 당첨자 명단이 잘못 작성됐다고 해명했다. 서류심사대상자리스트를 사용하지 않고 가당첨자 리스트를 바탕으로 명단을 작성해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설명이다. 또한 공사는 과거엔 시스템이 자동으로 명단 작성을 했었지만, 몇 년 전부터 직원이 직접 하게 되면서 이 같은 사고가 발생했다고 전했다. 

공사 관계자는 “자동으로 하게 될 경우 한 번에 다수에게 연락이 가다보니 그에 따른 문의연락을 모두 소화하기 어려웠고 민원도 많아졌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직원이 수동으로 시간차로 인원을 나눠 발표했는데 여기서 서류심사 대상자 리스트가 아닌 가당첨자 리스트를 바탕으로 발송이 잘못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번복된 사과문과 협박성 공지에 있다. 우선 공사는 이번 실수에 따른 사과문을 26일과 29일 두 차례에 걸쳐 발표했는데 각 오류 경위에 대한 내용이 달랐다.

26일 사과문에서는 “우선공급대상자에서 3배수의 심사대상자를 선발해야 하는데, 1배수만 선정한 후 잔여 2배수 명단을 일반공급의 추첨 대상자로 결정함으로써 서류심사대상자 커트라인에 속하신 분들이 문자를 받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일반공급의 추첨대상자가 늘어나 서류심사 탈락 대상자까지도 서류심사대상자에 속하셨다는 문자가 발송되는 오류도 함께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29일 사과문에서는 이 같은 내용이 쏙 빠진 채 단순히 전산추출 실수로 인한 문제였다고 일축됐다. 취재 결과 공사는 사과문을 번복한 이유에 대해 “기존에 작성된 사과문의 내용이 복잡해서 신청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쉽게 수정했다”고 설명했다. 

사과문 번복을 통해 사고의 원인을 ‘전산추출의 실수로 인한 문제’라고 일축시켜버리는 공사 측의 행위는 쉽게 납득할 수 없다. 내 집 마련이 간절한 신청자들은 왜 이 같은 사고가 발생했는지 그 원인에 대해 명확히 알 권리가 있다. 공사 말대로 사고원인을 신청자들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판단된다면 그에 대해 몇 번이든 반복해 설명을 할 필요가 있다. 

이유에 대한 명확한 설명 부족은 의혹만을 가중시킬 뿐이다. 특정인을 리스트에 넣기 위해 일부 인원을 재추첨하거나 바꿔치지 한 것 아니냐는 일각의 의혹이 납득이 가는 이유다. 

또 공사는 자신들의 실수를 적반하장 격으로 신청자들 탓으로 돌리기까지 했다. 제보에 따르면 공사는 처음 홈페이지에 올린 잘못된 합격자 명단을 내리곤, 이를 본 사람이 인터넷 등에 이 내용을 유포할 경우 법적조치에 들어간다는 내용을 신청자 일부에게 보냈다.

실수는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그에 따른 대응 과정에서 신청자들이 이해하지 못할까봐 단순 실수로 인한 문제라고 해명한 행위와, 잘못된 명단을 본 사람들이 해당 내용을 유포할 경우 법적조치에 들어간다는 문자를 발송한 행위는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적반하장 격으로 시민들을 호도하고 기만하는 행위로 읽힌다.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을 책임지는 SH공사는 잘못이 있으면 인정하고 왜 그런 잘못이 발생했는지 명확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한 번으로 안 된다면 두 번, 세 번 반복해서라도 말이다. SH공사는 서민들에게 맞춤형 주거복지 서비스를 통한 내 집 마련 꿈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투명한 공기업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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