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 좀 지났지만 한동안 온라인에서는 신조어 ‘탈룰라’가 유행했습니다. 탈룰라는 대화 도중 의도치 않게 상대방의 부모 또는 가족을 욕되게 한 상황을 무마하고자 하는 변명을 뜻합니다. 자메이카 봅슬레이팀을 다룬 영화 ‘쿨러닝’에서 유래했습니다. 영화 속에서 팀원 중 한 명은 썰매의 이름을 ‘탈룰라’로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이에 다른 팀원은 “매춘부의 이름 같다”며 비꼬았죠. “탈룰라는 어머니의 이름”이라는 대답이 돌아오자 팀원들은 “아주 예쁜 이름이다. 썰매 이름으로 하자”며 상황을 수습했습니다. 가족은 일종의 ‘성역’이기에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 동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가족 이야기에는 말 한마디조차 조심스러워지죠.
그래서일까요. 다른 이의 가정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지적하거나 비판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 부모가 아동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퍼져있죠. 주변의 방관 속에서 다수의 아동이 학대 피해를 입었습니다. 학대에는 ‘훈육’이라는 변명이 붙었죠. 지난 5년간 가정 내 학대로 숨진 아동은 134명에 달합니다.
이러한 통계에 포함되지 못한 아이들도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죽인 후 자살하는 경우입니다. 어린이날인 지난 5일 경기 시흥의 한 농로에서 세워진 차 안에서 A씨(34)와 아내(35), 아들(4), 딸(2) 등 4명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생활고를 겪던 A씨가 자녀들을 살해한 후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7일에는 장애를 가진 아들을 살해한 후 자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남성이 경찰에 검거됐습니다.
‘동반자살’로 지칭되지만 이는 엄연한 학대이자 폭력입니다. 의사표현이 어려운 자녀를 살해한 후 자살했다는 것이 올바른 표현입니다. 자녀가 의사표명을 할 수 있는 나이일지라도 이들의 의사는 존중되지 않았을 확률이 높습니다. 부모일지라도 자녀의 생사여탈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이기 때문입니다.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학대 아동을 발견, 보호할 체계를 마련하고 가정의 생계가 무너지더라도 버틸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마련돼야 합니다. 언제까지 아동학대 그리고 자녀 살해 후 자살하는 부모의 이야기를 ‘한 가정의 몰락’으로 치부할 수 없습니다. 사회 안전망이 무너져 일어난 참사라는 점을 이제는 직시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