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스 101’이 반복하는 것

‘프로듀스 101’이 반복하는 것

‘프로듀스 101’이 반복하는 것

기사승인 2019-05-24 06:00:00


Mnet ‘프로듀스’ 시리즈에는 공식이 있다. 매 시즌 반드시 등장하는 장면들이다. 1회에는 어색하게 첫 등장한 연습생이 어디에 앉아야 할지 고민한다. 1위 자리에 앉아보는 연습생도 있고, 누군가 차지한 1위 자리를 두고 다투는 연습생도 있다. 쉬는 시간에는 배가 고프다거나 외모에 대한 잡담을 나눈다. 이미 데뷔한 선배 연습생이 등장하면 모두 일어서서 인사를 하고 언제 앉아야 할지 고민한다. 기획사 이름이 뜰 때마다 어느 가수의 소속사인지 설명하고 대형 기획사가 등장하면 감탄한다. 국민 프로듀서 대표가 등장하면 외모를 칭찬하고 좋아한다. 연습생들의 첫 무대는 적당히 잘하는 소속사의 무대를 보여준다. 그들이 B나 C를 받으면 연습생들은 왜 A가 아닌지 의아해하며 자신들의 무대를 걱정한다. 멘토들이 지루해하면 반드시 A를 받는 실력자가 깜짝 등장한다. 오랜 기간 연습한 연습생의 진정성이 강조되면, 연습생들이 각자 아이돌을 향한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인터뷰 장면이 등장한다. 방송 중간에 TV를 틀어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익숙한 장면들이다.

각 시즌을 구분 짓는 건 프로그램의 제목과 출연하는 연습생들이다. 시즌1에서 여자 연습생 101명, 시즌2는 남자 연습생 101명이 출연했다. 시즌3는 한국과 일본 연습생 48명씩 96명이 출연했다. 시즌4는 다시 남자 연습생 101명을 출연시키는 대신 ‘X’라는 키워드를 내세웠다. 멘토진은 여러 시즌 반복한 익숙한 얼굴로, 대표와 연습생들은 새로운 얼굴로 채운다. 매회 새로운 얼굴들이 매 시즌 똑같이 반복되는 구성에 들어가 각자의 역할을 찾아내고 분량을 만들어낸다. 대다수의 연습생들은 이제 이 프로그램에서 데뷔하면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둘지, 어떤 장면이 자신에게 유리하고 불리한지, 어떤 장면이 방송에 나갈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똑같은 구성에도 프로그램을 보게 만드는 건 출연자들의 힘이다. ‘프로듀스’ 시리즈의 변화와 성장은 출연자들이 만들어내고 있다. 멘토들도 실력이 부족한 연습생들을 혹독하게 대하던 것에서 벗어나, 열심히 하고자 하는 의지와 발전 가능성에 더 높은 점수를 주기 시작했다. 연습생들의 무대마다 “잘해라”라고 응원하는 것도 이전과 다른 모습이다. 이전 시즌에 보지 못한 에너지와 매력, 진정성을 보여주는 연습생들이 더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한다. 전 시즌과 똑같이 멘토가 화를 내는 상황에서 학습된 리액션을 보여주는 연습생보다는 처음 보는 반응과 스토리, 매력을 보여주는 연습생을 기억하게 된다. 이번 시즌 투표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연습생 김요한의 경우 태권도 선수 출신이란 독특한 이력과 신선한 무대로 부족한 실력에도 A등급을 받았다. 이어진 인터뷰에서도 자신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첫 회 3위로 출발한 김요한은 방송 전부터 화제가 된 연습생들을 제치고 2회부터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시청자들은 관심 있는 연습생들의 서사를 직접 쓰고 있다. 방송에서 주목받지 못한 연습생의 과거와 현재 스토리를 팬이 된 시청자들이 대신 전하는 것이다. 이전 시즌과 달리 연습생의 이름을 검색하면 ‘○○○이 데뷔해야 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카페, 커뮤니티 글이 눈에 띈다. 제작진에게 선택받은 것 같은 연습생이 아닌 자신만의 연습생을 직접 홍보하는 건 학습의 결과다. 시청자들은 ‘프로듀스’ 시리즈의 데뷔조를 완성하는 건 자신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들에겐 이미 각자 응원하는 연습생들을 홍보해 데뷔시킨 경험이 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노하우과 자신감이 충분히 쌓였다. 3회 기준 시청자 투표 10위 안에 든 연습생 중 김민규(젤리피쉬), 이은상(브랜드뮤직), 구정모(스타쉽)는 독보적인 실력을 보여준 것도 아니고 방송에서 크게 주목받지도 못했지만, 이미 팬들에게 확고한 사랑을 받으며 데뷔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방송 시간은 더욱 늘어났다. ‘프로듀스 X 101’ 1회의 방송 시간은 무려 2시간 23분이었다. 웬만한 영화 한 편보다 긴 시간이다. 시즌1 1회의 방송 시간은 1시간 25분이었다. 길어진 분량에 대해 안준영 PD는 “간절히 자신의 꿈을 위해 나아가는 친구들을 단 몇 분이라도 방송을 통해 보이게끔 하려고 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안 PD는 2년 전 시즌2 직후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공정성 논란에 대해 “한 명이 주목받는 것보다 다양한 연습생들이 주목받도록 했다”며 “많은 연습생들에게 분량을 줬다”고 해명했다. 데뷔의 기회가 간절한 연습생들이 더 많이 주목받을 수 있도록 분량부터 편집과 노래까지 최대한 맞추려 한다는 태도였다.

매 시즌 똑같은 스토리가 반복되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역할을 맡는 사람만 바뀌었을 뿐, 잠깐만 봐도 예상 가능한 전개가 예상대로 흘러간다. 제작진은 이전 시즌과 같은 구성에 넣을 그림을 찾아서 붙여넣는다. 그 과정에서 주목받고 분량을 얻어내는 건 출연자들의 몫이다. 한 회를 보려면 2시간이 넘는 시간을 들여야 한다. 매회 하나의 에피소드가 끝나는 것도 아니라 다음 회를 봐야 결과를 알 수 있다. 긴 시간을 들여도 다루지 못한 인물의 스토리는 시청자가 쓴다. 변화와 발전이 없고, 새로운 서사는 출연자와 시청자가 쓰고, 영화보다 긴 시간을 들여야 하는 예능이 있다면, 이 예능을 계속 봐야 할 이유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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