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서] 게임중독(게임사용장애)에 대한 이해

[진료실에서] 게임중독(게임사용장애)에 대한 이해

기사승인 2019-06-04 16:44:10

글: 기선완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전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

국제질병분류(ICD) 개편에 나선 세계보건기구(WHO) 때문에 국내 게임업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WHO가 향후 전개될 11번째 ICD 개편 작업에서 게임중독(게임사용장애)을 정식 질환 군에 포함시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안을 만장일치로 의결한 까닭이다.

 미국정신의학회가 지난 2013년 정신질환 분류(DSM-5)를 발간하며 게임사용장애에 대해 향후 정신질환으로 지정할 수도 있는 후보 질환에 포함시킨 지 6년 만의 일이다. WHO는 지금까지 이 문제를 놓고 여러 차례 전문가 회의를 가졌다고 한다. 2015년 전 세계 중독의학 전문가들이 한국에서 모임을 갖고 이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기도 했다.

 ICD-11의 게임사용장애 진단 기준은 아주 보수적이고 엄격한 평가기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게임을 ‘잘’ 즐기고 일시적으로 게임에 몰입하게 되더라도 결과적으로 게임을 사용하는 행동 자체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알코올 중독(알코올 사용장애)이 술을 마시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지 않듯이 게임사용장애 역시 모든 게임 사용자들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게임사용을 자기 스스로 조절하지 못해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초래하고 돌이킬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게 되는 경우다. 실제 진료 현장에서 얼마든지 이런 게임중독 환자들을 관찰할 수 있다. 

 뇌 과학과 영상의학의 발전으로 게임사용 장애에 대한 과학적 근거들은 많이 축적되어 있다. 소아청소년기의 어떤 특성이나 우울증 혹은 주의력결핍과잉운동장애(ADHD)의 이차적인 합병증으로 게임사용장애가 올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특별히 이런 선행 문제가 없는 게임사용 장애 환자들도 존재한다. 당연히 환자가 원래 가지고 있는 심리적 문제가 게임사용 장애의 발병에 영향을 주고, 재발 방지를 위해 원발성 정신장애도 같이 치료해야 하지만, 어디까지나 중독은 중독일 뿐이다. 즉 스트레스와 우울한 기분을 해결하기 위해 게임을 하다 스스로 조절이 안 될 정도로 게임사용이 문제가 되었다면, 우울한 기분이 좋아져도 이미 푹 빠져버린 게임에서 스스로 헤어나기란 어렵다는 말이다.

 술은 인류의 장고한 역사, 전통, 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태백의 한시에서 술과 관련된 풍류와 멋을 느낄 수 있다. 주류 산업은 그 자체로 경제적, 산업적 가치를 갖는다. 술의 종류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알코올 사용 장애에 빠지고, 어떤 이는 단지 ‘애주가’ 수준에서 그친다. 많은 종류의 주류는 중독과 관련된 공통 물질로 ‘에탄올’을 공유하고 있다.

 게임도 술과 같이 산업적 가치를 지닌다. 게임은 첨단 산업기술의 결정체이며 복합 문화적 창작물이다. 게임업계 종사자들의 자부심이 대단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마치 유명 전통주를 만드는 장인들처럼…. 게임의 종류도 술과 같이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많은 종류의 게임들이 중독과 관련된 공통점은 보상(rewards)이다. 예를 들면 게임은 예상하지 못한 점수를 얻을 수 있는 대단한 기회를 주기도 하고 우연히 득템(아이템 얻기)을 하게 만든다. 운동이나 영화, 바둑과 같은 즐길 거리에 일시적으로 몰입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대부분, 지속적으로 과도하게 몰입하지 않는다. 그러나 게임은 다르다. 일부가 게임중독이 된다. 당연히 게임을 좋아하고 즐기는 보통 사람들은 게임중독이 아니다. 또 게임으로 승부를 다투는 프로게이머들을 중독 환자라고 하지도 않는다.

 중독 물질이 뇌의 특정 부위를 자극하는 것처럼 인간의 어떤 행동들은 뇌의 특별한 곳을 자극한다. 뇌과학자들은 그 부위를 ‘보상 회로’라고 부른다. 물질이 아니면서도 우리들의 뇌 속 보상회로를 자극하여 행위중독을 만드는 행동이 도박이다. 과거 충동조절장애로 구분이 되던 인간의 문제 행동들이 최근에는 행위중독으로 다시 분류되고 있다. 이는 과학적 근거에 의한 것이다.

 다만 정신의학적으로 질환 수준이 되려면 인간의 타고난 생물학적 특성, 성장발달 과정의 심리적 문제, 그리고 그가 처한 환경의 여러 가지 스트레스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심각한 문제를 초래해야 한다. 사회적 기능 저하와 함께 일상생활 수행에도 문제가 생기며 이런 현상이 지속적으로 일어날 때 드디어 병적이란 판정을 받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환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항상 주의해야 한다. 환자는 도움이 필요하고 더불어 같이 살아야 할 존재이다. 배제와 차별의 대상이 되어선 절대 안 된다. 병원에서의 진단도 회복을 위해 필요한 것일 뿐이다.

 이해 당사자인 게임업계가 게임사용장애의 질병 분류 목록 등재에 우려 섞인 반응을 보이는 사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게임업계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좀 더 성숙하고 책임감 있는 행동을 보여줬으면 한다. 그리고 ‘과몰입’이란 정체불명의 회피성 신조어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기를 바란다.

 게임은 마약과 다르다. 아직 발병 원인 탐구와 예방, 치료에 연구가 더 필요하다. 게임 산업 발전과 게임사용장애 예방과 치료를 위해 우리 모두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정리=이기수 기자 elgis@kukinews.com

이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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