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으로부터 70미터 상공, 40센티미터에 불과한 난간에서 두 명의 노동자가 9일 넘게 사투에 가까운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대구 남구에 위치한 영남대병원. 이곳 옥상에 영남대의료원 해직노동자인 박문진 지도위원과 송영숙 부지부장이 오른 것은 지난 1일 오전 5시께. 이들은 ▲노동조합 기획 탄압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 ▲노동조합(지부) 원상회복 ▲해고자 복직 ▲영남학원 민주화 ▲비정규직 철폐 등을 요구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첫 고공농성이자, 보건의료 분야에서는 드문 벼랑 끝 투쟁이 벌어졌지만, 여론의 관심은 높지 않다.
영남대의료원을 둘러싼 노사 갈등은 지난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2월 영남대병원은 전년도의 부분파업을 이유로, 보건의료노조 영남대의료원지부 간부 10명을 해고했고, 18명 정직, 10명 감봉 등 중징계를 내렸다. 3년 후인 2010년 대법원은 해고자 10명 중 7명에 대해서는 부당해고로, 박문진·송영숙 등 간부 3명은 ‘정당 해고’라고 판결했다. 해고자들은 13년간 복직을 요구하며 단식, 삭발, 삼보일배 등 온갖 투쟁을 실시했지만, 복직은 여전히 요원한 상태다.
다시 옥상 위. 이들이 처한 환경은 가혹하다. 내리쬐는 직사광선을 피할 곳은 텐트하나, 그늘막 하나가 전부다. 햇빛보다 무서운 것은 강풍이다. 텐트가 날아가버릴만큼 강한 바람이 시시각각 이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8일 고공농성 중인 박문진 지도위원과 연락이 닿았다. 바람 때문에 전화통화가 수월치 않았다. 박 지도위원은 모친에게 “의료봉사를 떠난다”는 말을 남기고 옥상에 올랐다고 했다.
◇ “고공농성 외 방법이 없었다”
- 왜 70미터 고공농성을 시작했나.
13년 동안 투쟁을 했지만, 사측은 전혀 반응이 없었다. 결국 오랜 고심 끝에 끝장투쟁을 결정했다. 고공농성밖에 방법이 없었다.
- 옥상에 오를 때 사측의 제지는 없었나.
경로 등에 대해 보안을 유지했다. 사측도 나중에 우리가 올라온 것을 알고 발칵 뒤집어졌다. 우스갯소리로 ‘아이언맨이 우릴 데려다 줬다’고 했다.
- 그곳 상황은 어떤가.
사흘은 더웠고 이후에는 바람이 위협적이다. 난간은 고작 40센티미터 밖에 안 된다. 안전지대가 없어 위험하다. 그늘막 하나와 텐트를 쳤다. 밧줄로 몸을 묶고 교대로 낮과 밤에 불침번 서고 있다. 자칫 바람에 텐트가 날아가면 우리도 날아갈 수 있다.
- 식사는 어떻게 하고 있나.
1일 저녁부터 식사가 올라오게끔 사측과 합의를 했다.
- 건강 등 의료 지원은 받고 있나.
아직 9일차라 진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은 아니지만, 준비하고 있다.
- 사측은 불법점거라고 주장한다.
우리도 반박 기자회견을 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사측은 우리가 ‘불법으로 농성하고 있다’는 어처구니없고 비윤리적인 태도를 보였다. 병원이 어떤 곳인가. 생명을 치유하는 곳이다. 우린 이곳에 살기위해 올라왔다. 사측은 이를 불법으로 매도하고 해결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 이게 그들이 노사를 대하는 방식이다. 그들은 노조를 불법으로 파괴했다. 결국 우린 고공농성을 할 수밖에 없었다.
- 과연 요구사항을 사측이 수용할까. 사태 장기화가 예상된다.
장기 농성을 대비해 겨울옷을 챙겨왔다. 지금까지 사측의 태도를 보면 장기투쟁이 불가피하다.
- 사측은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여전히 ‘정당해고’라고 맞선다.
기획적으로 파업을 유도해 노조를 깬 것이다. 우리나라는 노동 3권이 보장돼 있다. 그럼에도 사측은 노조파괴 전문가에게 수억 원을 줘가며 불법적으로 노조를 파괴했다. 그들은 문을 걸어 잠근 채 밤 근무를 끝낸 간호사 조합원에게 노조 탈퇴서를 작성하지 않으면 집에 보내지 않았다. 불법적인 행위는 사측이 자행했다. 다시는 노조에 대한 이런 일들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 가족에게는 고공농성 사실을 알렸나.
모친에게 캄보디아로 의료봉사활동을 간다고 했다. (노조 활동 등으로) 평생 구속, 수배, 해고를 당됐던 딸이다. 굳이 고공농성 사실까지 알리면 모친이 마음 아파할 것 같았다.
박 지도위원은 “노조 파괴와 부당해고는 청부살인”이라고 했다. 더 하고 싶은 말이 없냐는 물음에 이렇게 말했다. “더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말길.” 보내온 사진 속에 두 해직노동자는 미소 짓고 있었다. 뒤로는 대구 시내가 한눈에 보였다. 더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말길.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 환자를 돌보고 싶다는 그의 소박한 바람은 언제쯤 이뤄질까.
한편, 영남대병원 측은 8일 오후 1차 교섭에서 해당 사안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병원 관계자는 “이들이 안전하게 내려오길 바란다”고 했지만, 요구사항 수용과 관련해선 말을 아꼈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