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퇴근길 인쇄골목을 밝히는 ‘동묘마케트’ 박상현 사장

[쿠키인터뷰] 퇴근길 인쇄골목을 밝히는 ‘동묘마케트’ 박상현 사장

기사승인 2019-07-25 04:00:00



동묘역 인근, 완구거리와 인쇄골목이 맞닿아 있는 이 골목은 밤이 되면 고요하다. 역 주변이나 완구거리에는 이따금 찾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마저도 낮일 뿐 해가 지면 걸목 어귀에 땅거미만 켜켜히 쌓인다. 

역을 벗어나 몇 개의 골목을 굽이 들어가면 골목을 밝히는 작은 가게가 나온다. 동묘역에서 도보로 5분이지만, 초행자는 10분 안에 찾기도 버겁다. 길찾기 어플리케이션으로도 쉽게 찾기 어려운 이 곳은 수제맥주와 피자 등을 판매하는, 골목 분위기와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동묘가라지’와 ‘동묘마케트’다. 동묘가라지는 피자와 수제맥주, 동묘마케트는 와인이 주(主)다. 

동묘마케트의 경우 주문은 셀프(Self)로 이뤄진다. 원하는 맥주를 쿨러에서 꺼내고 진열된 과자를 집어 자리에서 즐기면 된다. 와인이나 요리 안주의 경우 주문하면 된다. 조금은 불친절하게 느껴질 부분도 있지만, 조용한 시간을 즐기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알맞다.


가오픈 중인 동묘마케트에서 박상현 사장을 만난 것은 해가 어스름 질 무렵이었다. 대학교를 졸업한 뒤 수제맥주 스타트업으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2년 반이 지난 이후 회사를 그만뒀다. 그리고 재직 시절부터 눈여겨왔던 동묘 인쇄골목으로 찾아들어왔다. 박 사장은 이 골목에서 1년 전 동묘가라지를 열었고, 지금은 다시 동묘마케트 오픈을 앞두고 있다. 주택가도, 번화가도 아닌 이 오래된 인쇄골목에 자리잡은 이유는 뭘까. 

박 사장은 동묘 지역을 선택한 이유를 크게 실리적인 이유, 그리고 내재적 동기 두 가지를 꼽았다. 

“충분히 지역에 대한 조사를 했는데, 어떻게 생각해도 안될 것 같지 않았어요. 소득 수준이 높지는 않지만 거주인구가 많고, 인근 경제활동 인구가 많은 편이어서 평일 매출 확보가 가능하다고 봤죠. 최근 동묘 구제시장과 문구·완구 시장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주말 소비인구 유입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것에 비해 트렌디한 식당이나 술집이 없었거든요. 투자비와 고정비 부담을 낮춘 창업을 시도하면 성공까지는 아니어도 실패하지는 않을 것 같았어요.”

내재적 동기로는 태어나고 자란 곳에 대한 애착이었다. CD가 없던 시절 흔히 ‘게임팩’이라고 하는 불법카트리지 게임 소프트를 구매하던 곳이 바로 이 곳이었다. 과거 이 시장골목이 생계형 장터였고, 지금의 박 사장은 생계를 위해 가게를 열고 있다. 


“동묘 시장이 위치한 창신·숭인동은 서울의 여타 지역들과는 구분되는 분명한 특징이 있어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농촌과 비슷한 성향이 있죠. 지역에 내린 뿌리가 길게 가는 성향이 있더라구요. ‘여기서 이십 몇 년 장사 했지’ 하는 분들도 부지기수고, 부모님의 공장일을 물려받아 이어가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고요.”

처음 인쇄골목에 가게를 내기까지는 이러한 지역특성에 오히려 어려움이 있었다. 외지 사람이 쑥 들어와서 장사를 하겠다고 가게를 내자 썩 반기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가게를 오픈한 뒤에도 쓰레기를 버리는 거나 외부에 물건을 두는 것으로도 크고 작은 마찰이 있었다. 

“텃새라고 볼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안정화된 일상에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변화나 불편함이 생기는 일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다만 조금만 가까워지면 정감있고 좋은 곳입니다. 지금은 즐겁게 생활하고 있어요. 10년만에 돌아와 장사를 하면서 어릴적 제 모습을 기억하는 어른들이 반갑게 반겨주신다든지 초·중·고 동창들이 우연찮게 검색을 통해 방문했다가 만나는 경우들도 있었어요.”


현재 박 씨가 운영하고 있는 첫 번째 매장인 동묘가라지는 약 33㎡(10평) 규모로 1년 정도 유지해왔다. 월 매출은 대략적으로 2000~3000만원 사이다. 지역특성상 단골이 많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신규-단골 비율은 6:4 정도로 오히려 신규 비율이 높다. 정식 오픈을 앞두고 있는 동묘마케트는 가오픈 1개월 기준 일 매출 20만원, 신규 비율은 80% 수준이다. 

신규 창업자들에 대한 조언도 더했다. 기존 요식업 등 상업이 유지돼오던 자리는 아무리 동묘 인쇄골목이라고 하더라도 생각보다 세나 권리금이 높고 자리 자체가 잘 나오지 않는 점, 전체 규모가 큰 지역은 아니지만 한 블록마다 소비패턴과 소비대상이 갈리는 지역인 만큼 직접 발로 뛰는 시장조사가 필요하다는 점 등이다. 

또 소비력이 높다고 볼 수 없는 고객층이 대상인 만큼, 판매재화의 원가와 가격 책정에 있어서 신중해야 한다. 

“요식업 첫 걸음을 뗀 지 얼마 안 된 제가 왈가왈부 하기는 어렵지만, 어디서 무엇을 창업하든 주의해야할 점이라고 생각해요. 디테일이 다를 뿐 다들 비슷비슷하니까요. 물론 목표도 있습니다. 작은 목표로는 우선 가게가 잘 됐으면 하는 거고요. 큰 목표로는 이 골목을 활성화시키고 싶어요. 제 가게가 잘 되면 새로운 유입 창업자가 들어올 테고, 그러면 골목은 물론 지역까지 커지겠죠. 조금은 부끄럽지만 경리단길 ‘장진우 거리’처럼 이 골목을 ‘박상현 거리’로 만드는 것이 제 꿈입니다.”

조현우 기자 akg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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