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궁전(Neue Residenz)에서 대성당광장(Domplatz)으로 나오면 오른쪽으로 보이는 건물이 옛 궁전(Alte Hofhaltung)이다. 15세기 무렵 하인리히 2세의 영지에 세운 주교의 궁궐로서 주거용 건물과 상업용 건물들로 구성됐다. 이곳은 9세기 초에 들어선 바벤베르크(Babenberg) 성이 있던 장소로 사람들이 정착하기는 그보다 200년 앞선 시점이었다. 바벤베르크 성의 첫 번째 주인은 바벤베르크 가문의 포폰 1세 백작이었다. 이 성은 974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오토 1세에 의해 신성로마제국의 재산이 됐고, 995년 바바리아 공작이 된 하인리히 2세가 궁전을 차지하게 됐다.
하인리히 2세가 1002년 독일왕국의 왕이 되고, 1014년에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면서 옛 궁전은 제국의 중심이 됐다. 한편 하인리히 2세의 지원으로 교황이 된 베네딕토 8세는 1020년 교황으로서는 처음으로 이탈리아 영토의 밖에 있는 밤베르크를 방문했다. 그는 옛 궁전에 있는 토마스 예배당(Thomaskapelle)에서 미사를 집전해 마리아와 토마스 성인에게 경의를 표했다.
하인리히 2세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던 시절, 옛 궁전 입구 근처에 제국의 공식적인 중심(umbilicus imperii, 제국의 배꼽)을 나타내는 기둥을 세웠다. 예수의 모습을 조각한 기둥은 신성로마제국의 중심이자 세상의 중심을 의미하는 이 지방의 방언을 따서 ‘타터만(Tattermann)’ 기둥이라고 불렀다. 좌고 8.5m에 머리에는 1.7m높이의 관을 쓴 예수조각은 1779년 광장을 보수하며 사라지고 말았다.
타터만 기둥은 일종의 도로 원표(元標)로 우리나라로 치면 종로와 세종로가 만나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도로원표의 비각은 교보빌딩 앞에 있었다. 스페인의 경우 마드리드의 솔 광장에 서 있는 곰 동상이 이에 해당된다. 사라지고 없는 타터만 기둥 자리에는 예루살렘 쪽을 향한 5각형의 유리판을 커다란 화강암 위에 올려놓은 설치예술작품이 있다.
2007년 밤베르크 출신 이스라엘 예술가 미차 울만(Micha Ullmann)이 제작한 것이다. 유리판에 대성당의 종탑과 하늘이 비치기 때문에 이를 들여다보는 사람이 스스로를 예수라 느끼게 된다는데, 대부분의 경우 유리판이 제대로 기능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제작의도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한다.
1024년 하인리히 2세가 죽은 뒤, 밤베르크의 주교가 옛 궁전을 차지하게 됐지만, 1085년 화재로 불타고 말았다. 하지만 궁전이 재건된 이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1208년 독일왕국의 스바비아의 필리프 왕이 이곳에서 열린 딸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비텔스바하 가문의 오토 8세에 의해 살해당하기도 했다.
1475년부터 안뜰을 구성하는 반목조의 건물들을 짓기 시작해 1568~1570년 사이 옛 궁전 터에 있는 대부분의 건물들이 재건됐다. 가장 큰 변화는 르네상스 양식의 외관을 가진 새로운 상공회의소 건물(Ratsstubenbau)이 들어선 것이다. 대성당 광장 쪽으로 낸 창문은 에라스무스 브라운(Erasmus Braun)의 조각 작품으로 장식돼있다. 더해 밝은 색의 사암을 조각한 옛 궁전의 아름다운 문(Schöne Pforte) 역시 주목할 만하다.
1573년에 판크라츠 바그너(Pankraz Wagner)가 건설한 아름다운 문의 상인방 중앙에는 밤베르크 대성당을 배경으로 한 성모 마리아의 조상을 세웠고, 성모 마리아의 양 옆으로는 하인리히 2세 황제와 쿠니군데 황후를, 그 다음에는 밤베르크 대성당의 수호성인인 베드로 성인이 왼편에, 그리고 조지 성인이 오른편에 시립하고 있다. 더 밖으로는 왼쪽에 성 오토 주교와 오른쪽에는 성 킬리안 주교가 시립하고 있다. 왼쪽 끝에는 밤베르크 가까이 흐르는 마인 강을 나타내는 남성 신이 오른쪽 끝에는 레그니츠강을 나타내는 여성 신이 반쯤 누운 자세를 하고 있다.
1984년 옛 궁전의 카타린 예배당(Katharinenkapelle am Domplatz)에서는 노르베르트 괴츠(Norbert Götz)가 설립한 그림자 극장(Theater der Schatten)이 들어왔다. 할로겐램프를 사용한 그림자극은 윤곽이 뚜렷해 표현범위가 확장됐는데, 입체적인 그림을 이용하며 빛을 움직임으로써 화면에 시각적 효과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곳에서 공연되는 ‘빛과 그림자(Licht und Schatten)’라는 작품은 1000년의 세월을 지내온 밤베르크의 역사를 괴츠의 해설로 90분에 걸쳐 소개된다.
1938년부터는 밤베르크 역사박물관(Historisches Museum)이 옛 궁전에서 문을 열었다. 1838년 요셉 헤머라인(Joseph Hemmerlein)이 대규모 미술품 수집품을 밤베르크 시에 기증하면서 미카엘수도원에 개관했던 것을 이곳으로 이전한 것이다. 이곳에는 선사시대부터 현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사적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대형 예술품, 돌조각, 수공예품을 비롯해 16~19세기의 시계와 다양한 시기의 동전도 있다. 천문학과 수학에 관한 도구도 볼 수 있다. 특히 도자기와 채색도기로 구성된 빌라 데사우어(Villa Dessauer)와 루트비히 컬렉션이 볼만하다.
한편 옛 궁전의 안뜰에서는 2011년에 개봉된 폴 앤더슨(Paul WS Anderson) 감독의 영화 ‘삼총사(Three Musketeers)’를 촬영하기도 했다. 옛 왕궁 안으로 들어가 봤는데, 반목조의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는 안뜰은 아주 고풍스러운 느낌이 든다. 하지만 무슨 공연이 예정돼 있는지 많은 의자들이 안뜰을 가득 메우고 있어서 분위기를 망치고 있었다.
11시 무렵 밤베르크를 떠나 드레스덴으로 향했다. 아마도 호프(Hof)를 거쳐 플라우엔(Plauen), 츠비카우(Zwickau), 켐니츠(Chemnitz)를 거쳐서 갔을 것이다. 밤베르크를 떠나 1시간 반 쯤 갔을까 창밖으로 CFC라고 쓰인 팻말이 보인다. 지금은 사라진 서독과 동독의 경계를 나타내는 표지라고 한다. 하지만 CFC의 의미를 아직도 확인하지 못했다. 정황을 고려하면 서독의 영역이었던 바이에른 주에 속하는 트로겐(Trogen)과 동독의 영역이었던 작센 주 부르크스타인(Burgstein) 사이의 어디쯤에 있던 서독과 동독의 경계였던 것 같다.
독일 내 국경(Deutsch-deutsche Grenze)은 통일이전 독일연방공화국(Bundesrepublik Deutschland, 서독)과 독일민주공화국(Deutsche Demokratische Republik, 동독) 사이의 경계로 1949년 설치됐다가 1990년 폐지됐다. 발트 해와 체코슬로바키아(이 나라는 19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됐다)의 국경선에 이르는 독일 내 국경은 155㎞ 길이의 베를린 장벽을 뺀 길이가 1393㎞에 달했다.
나치 독일의 영토에 진주한 연합군과 구 소련군이 각각 점령한 지역 사이에 설치된 경계선을 두고 서쪽은 서독군과 연합군이, 동쪽은 5만 명의 동독군이 경비를 섰다. 동쪽 경계선에는 철제 울타리와 가시철조망에 더해 차량통행을 저지하는 참호, 망루가 설치됐다. 심지어는 자동 부비트랩과 지뢰까지 무수히 설치해 엄중하게 경계하던 국경이었다. 사실상 동독 주민의 탈출을 저지하기 위한 목적이 컸을 것이나 표면적으로는 나토의 군사공격에 대한 방어선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서독은 이 국경을 다만 “소비에트 점령 지역의 경계선”이라면서 독일 분단의 잔인함과 부당함을 강조했다. 서독이 국경선에 세운 표지판에는 “Hier ist Deutschland nicht zu Ende - Auch drüben ist Vaterland!(독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국경 건너 저편 역시 조국입니다!)라고 적혀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 내 국경의 배후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와 바르샤바조약기구 소속의 군사 수백만 명이 배치돼있어 동서세력이 첨예하게 맞선 장소였다.
1952년까지는 독일 내 국경의 대부분에서 왕래가 가능했던 것이 강화돼 6개의 도로와 3개의 고속도로, 8개의 철도, 그리고 엘베강과 중부독일운하(Mittellandkanal) 등 19곳을 통해서만 왕래할 수 있었다. 1989년 11월 9일, 동독 정부는 베를린 장벽과 독일 내 국경의 개통을 발표한 다음날 수백만 명의 동독사람들이 서독을 방문했다. 1990년 통일이 공식화되면서 독일 내 국경은 사실상 사라졌으며, 옛 국경선을 따라 국립공원과 자연보호구역을 설치하는 등 유럽 녹색지대의 일부로 선언됐다.
옛 독일 내 국경을 지나면서 인솔자는 통일 당시 동서독의 상황과 남북한의 상황을 비교해 설명했는데 기억은 없으나 꽤나 깊이가 있었다는 기록만 남아있다. 밤베르크를 떠난 버스가 3시간 반 정도 달려 드레스덴에 도착했다. 드레스덴에 들어선 버스가 강변을 따라가는데 엘베(Elbe) 강이라고 했다.
엘베 강은 해발 약 1400m인 체코 북부의 크루코노체(Krkonoše)에서 발원해 체코와 독일 동부를 거쳐 서북쪽으로 흘러가 함부르크에서 북서쪽으로 110㎞ 떨어진 쿡스하픈(Cuxhaven)에서 북해로 흘러든다. 총 연장은 1094㎞다. 폴란드와 체코의 국경을 이루는 크루코노체는 ‘거대한 산맥’이라는 뜻의 체코어이며, 독일어로는 같은 의미로 리센게비르게(Riesengebirge)라고 한다. 엘베 강에는 블타바(Vltava) 강, 잘러(Saale) 강, 하플(Havel) 강, 물드(Mulde) 강, 슈발츠 엘스터(Schwarze Elster) 강, 오흐레(Ohře) 강 등이 합류한다.
체코의 체스키크롬루프와 프라하를 지나는 블타바(독일어로는 몰다우(Moldau)) 강은 프라하 북쪽에 있는 미에니크(Mělník)에서 엘베 강에 합류한다. 체코어 이름인 블타바나 독일어 이름인 몰다우 모두 ‘급류’를 의미하는 옛 독일어 ‘빌트 아바(wilt ahwa, 아바는 물을 의미하는 라틴어 아쿠아(aqua)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믿어진다. 블타바 강은 거의 직각으로 돌진하듯 엘베 강을 향하다가 합류하기 직전에 꼬리를 내리면서 어슷한 기울기로 엘베강 에 합류한다.
합류지점에서 따져보면 엘베 강이 시작되는 크루코노체까지는 294㎞인데 반해 블타바 강이 시작되는 체르니 포톡(Černý Potok)까지는 434㎞나 된다. 뿐만 아니라 미에니크에 이르기까지 배수지나 배수량에 있어 블타바 강이 엘베 강보다 월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강이 합류된 뒤에 엘베 강으로 부르게 된 것은 역사적 배경이나, 두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보면 블타바 강이 지류처럼 보인 탓이 있다고 한다. 어떻든 엘베 강과 그 지류로 구성되는 엘베 강 유역은 유럽의 강들 가운데 4번째로 넓은 14만8268㎢에 달한다. 구 동독과 체코의 대부분 지역이 포함되며 폴란드와 오스트리아의 일부 지역도 지난다.
글·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평가책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