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직 중 목숨을 잃은 전공의의 산재 인정을 위한 자리가 열렸다.
지난 2월 가천대길병원에서 당직 중에 목숨을 잃은 ‘고 신형록 전공의 산재 승인 촉구 기자회견’이 30일 인천노동복지합동청사 앞에서 열렸다. 이날은 신 전공의의 산재를 판정하는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열리는 날이다.
이승우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전공의의 죽음으로 참혹한 현실이 드러났어도 현장은 여전히 변한 것이 없다”며 “점점 더 심하게 굴러가고 있다. 다시는 이런 참혹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재발방지대책 마련과 산재승인을 촉구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열게 됐다”고 밝혔다.
신 전공의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감정서에 따르면 사인을 해부학적으로 규명되지 않은 내인에 의한 사망으로 보고 있다. 이 회장은 “평소 지병이 없던 신 전공의가 근무 중 갑자기 사망했다는 사실이 마음 아프게 할 뿐만 아니라 전공의들이 처해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공포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 전공의는 전공의법에서 명시한 근로시간인 주 80시간을 훌쩍 넘긴 110시간을 했다고 이 회장은 주장했다. 대전협은 신형록 전공의의 사망원인을 ‘만성과로’로 보고, 관련 자료를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 제출했다. 대전협은 신 전공의가 주 110시간 이상 근무했다고 주장했다. 일주일이 168시간이므로 매일 16시간 가까이 근무했다는 것.
근로복지공단 산재 인정기준에서는 ▲근무일정 예측이 어려운 업무 ▲교대제 업무 ▲휴일이 부족한 업무 ▲유해한 작업환경에 노출되는 업무 ▲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 ▲시차가 큰 출장이 잦은 업무 ▲정신적 긴장이 큰 업무 등의 가중요인이 주 52시간 미만 근무에서는 2개 이상 있을 때와 주 52시간 이상 근무에서는 1개 이상 있을 때, 주 60시간 이상 근로 시 총 세 가지 경우를 들어 인정하고 있다.
다만, 부검으로도 사인이 불분명한 경우 업무와의 연관성을 신청하는 사람이 내야 하는 구조라 과로로 판정되지 않을 수 있다. 이 회장은 “전공의 법에 따라도 주당 근무시간이 80시간인 상황에서 산재가 판정되지 않으면 과로사는 이 나라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런데도 산재승인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 이 회장의 설명이다.
지난 3월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의사 과로사 대책 토론회’에서 김형렬 서울성모병원 작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의사가 주체인 질병판정위원회조차 의사들의 과로로 산업재해를 신청하면 이를 과소평가하며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고 주장했다.
신 전공의의 유족은 지난 2월 27일 보건복지부의 감사결과를 보면 가천대길병원이 전공의법과 관련해 전 항목 위반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신 전공의 유족은 “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병원이 받은 제재는 과태료 500만원이 전부라는 사실이 유가족으로서 너무 비참하다. 동생의 산재 판정으로 전공의들이 과도한 근무환경에서 수련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행동하는 간호사회 최원영 간호사도 함께 했다. 최 간호사는 “이것은 명백한 타살”이라며 “의사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전문의를 충분히 고용하지 않고 과중한 업무를 지운 길병원이 죽인 것. 주당 110시간 이상을 일했던 신 전공의의 급여를 따져보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친다. 그렇게 아낀 인건비는 길병원의 주머니에 들어갔다. 그게 신형록 전공의의 목숨값”이라고 규탄했다.
이어 “그의 죽음이 해부학적으로 불분명할지 모르나, 당직표나 근무시간을 보면 명백하다”며 “이게 과로사가 아니라면 어떤 죽음에 과로사가 있겠는가, 당연히 산재로 인정받아야 하고 제2, 제3의 신형록이 나오지 않도록 노동조건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수진 보건의료노조 가천대길병원지부장은 “비슷한 시기에 유명을 달리한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의료센터장과 신형록 전공의가 비교된다”며 “윤 센터장은 국가유공자가 되고 병원에서도, 정부에서도 죽음을 기렸지만, 신 전공의의 죽음에 대해선 그렇지 못했다. 두 분 모두 환자를 위해 애쓴 만큼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말했다.
노상우 기자 nswrea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