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돼서 병원에서도 개선의 바람이 불고 있지만, 실제 일하는 노동자들이 느끼는 변화는 아직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사용자나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나 관계 우위를 이용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 등을 금지하는 내용이 골자다. 지난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직장생활 경험이 있는 만 20세에서 64세 남녀 1500명 중 73.7%가 ‘직장 내 괴롭힘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직장내 괴롭힘은 의료계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2017년 한림대 성심병원의 간호사 장기자랑 강요, 2018년 서울 아산병원에서 태움으로 인한 간호사 자살, 올해 서울의료원의 간호사 사망 등이 대표적이다.
법으로 직장 내 괴롭이 금지되자, 각 병원은 규정을 바꾸고 괴롭힘 행위자 처벌 규정 강화 및 전 직원을 대상으로 교육등을 실시 중이다.
일례로 인제대학교 백병원은 전국 5개 백병원에 고충상담원 15명을 선발해 고충 상담 제도를 재정비했다. 또 ‘직장 내 상호존중 문화 확산 포스터 공모전’을 열고, 수상 작품을 병원에 게시해 의료현장 폭력 예방 및 상호존중 캠페인에 활용키로 했다. 또 경희대병원은 법 시행 이전에 폭력방지위원회를 운영, 관련 교육을 진행하고 고충상담실을 운영 중이다.
그러나 정작 병원 근로자가 체감하는 변화는 크지 않다.
서울대병원의 경우, 7월5일 법 시행을 앞두고 전 직원 교육을 하다 사단이 났다. 강사로 초빙된 노무사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부적응자·저성과자의 문제 제기 도구가 될 것이라고 강의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반발한 간호사들은 병원장의 사과를 요구했다.
결국 병원장이 사과하면서 사태는 일단락 됐지만, 병원 문화 개선의 의지에 의문이 제기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이에 대해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교육에 대해 노무사와 상의를 하거나 방침·방향을 요청했던 것이 아니라, 병원의 입장이라 보기 어렵다"고 해명했다.
다른 병원의 근로자들도 매한가지였다. A병원 근로자는 “윗사람이 변하지 않으면 달라지는 것은 없다”라며 “병원에서 규정을 바꾸고, 교육을 진행하지만, 진실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과도한 업무지시’ 등은 여전하다”고 밝혔다.
전공의들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지 고용노동부가 알려주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승우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법 시행 전에 전공의도 해당 법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지 노동부에 질의했지만, 답변을 듣지 못했다”며 “같은 날 폭력·성희롱·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전공의법’도 개정됐다. 전공의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포함돼야 하는데 노동부에서 법 간 상위 관계를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노동부와 보건복지부 모두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상급종합병원에서 일하는 전공의 B씨도 “해당 법에 대해 교육 및 강연이 병원 내에서 진행됐지만, 현장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라며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사람들이 교수들이 ‘저런 건 신고하는 사람에 문제가 있지’, ‘어차피 신고를 당해도 별 것 없더라’ 등으로 법 자체를 조롱했다”고 귀띔했다.
노상우 기자 nswrea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