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선재길에 남아있는 일제의 목재와 노동력 수탈 흔적

오대산 선재길에 남아있는 일제의 목재와 노동력 수탈 흔적

기사승인 2019-08-14 04:00:00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공단은 광복 74주년을 맞아 오대산과 한려해상국립공원에서 일제강점기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는 탐방 과정(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대산에는 일제강점기, 목재 수탈과 노동력 착취 등의 이유로 화전민 마을이 생겨났으며, 현재까지도 월정사와 상원사의 선재길 구간에 화전민 가옥터 50여 곳이 남아있다. 

오대산 일대의 지명에서도 일제시대의 노동력 수탈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오대천 상류의 ‘보메기’는 계곡의 보를 막아 나무를 쌓아 놓은 뒤 비를 이용해 한꺼번에 무너뜨려 이동시켰다는 데에서 비롯된 지명으로 목재 수탈 과정에 이용됐다. 

‘회사거리’는 오대산에서 이송한 목재를 가공했던 조선총독부 산하 목재회사가 있던 자리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회사거리 인근에는 나무를 운반할 때 이용했던 목도(두사람 이상이 짝을 지어 밧줄에 목재를 연결해 운반하는 것으로 사람 수에 따라 2목도, 4목도, 8목도로 나뉜다)를 체험할 수 있는 목도 체험물이 설치돼 있다.

오대산국립공원의 탐방 과정 중 하나인 선재길 해설은 일제 강점기에 이곳에서 일어난 목재 수탈, 노동력 착취 등의 역사를 알려준다.

오대산 선재길은 일제가 목재를 빼내가려고 월정사 앞을 가로지르는 ‘목차레일’을 만들었고, 당시 설치됐던 레일의 일부는 아직까지도 오대산에 남아있다. 일제는 산 속에 살고 있는 화전민들을 동원해 나무를 벤 후 목차레일을 이용해 산 아래로 실어나르며 목재를 수탈했고, 노동력을 착취했다. 목재를 운반할 때 불렀던 노동요인 ‘목도소리’ 또한 아직도 오대산 일대에서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편 한려해상국립공원 지심도는 경상남도 거제시 일운면 지세포리에서 동쪽으로 1.5㎞ 떨어진 섬이다. 동백섬으로 불리며 매년 약 13만명이 방문하는 관광명소로 유명하지만, 과거 일제강점기 해군기지로 사용된 아픈 흔적이 남아있다.

지심도는 1936년부터 광복 직전까지 일본 해군의 군사요충지로서 함포 요새 역할을 했다. 일본 해군이 지심도 주민들을 동원해 만든 군가시설들은 아직도 지심도 곳곳에 남아있다. 선착장에서 이어지는 지심도 탐방로를 따라 걷다보면 일본군 소장 사택–탐조등 보관소-방향 지시석–포진지–탄약고 순서로 만나볼 수 있다.

일본군 소장사택은 1938년 1월 27일 준공된 전형적인 일본식 목조가옥으로, 당시 지심도에 주둔했던 일본 해군기지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는 발전소 등 부속 기관들이 함께 구성되어 있었다. 탐조등 보관소는 지심도에 조금하는 선박이나 사람들을 감시하는 탐조등을 보고나했던 장소로 당시 일본군이 사용했던 탐조등은 직경 2m, 빛의 도달거리가 약 7~9㎞에 이르렀다고 한다.

일본 해군의 함포요새 역할을 했던 지심도에는 4개의 포진지가 설치되어 있는데 지금까지도 그 원형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포진지와 함께 탄약과 포탄을 저장하던 지하벙커식 콘크리트 탄약고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지심도는 광복 이후에도 군사적인 요충지로서 우리나라 국방부의 관리를 받아왔다. 그 때문에 자연스럽게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면서 원시림에 가까운 자연생태계가 보존됐다. 현재는 2017년 3월 9일 국방부가 거제시에 지심도를 반환하면서 오랜 군사기지의 탈을 벗고 자연과 역사자원을 갖춘 관광지로서 탐방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지심도 탐방 과정은 해설을 통해 원시림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지심도의 현재와 일제강점기 해군기지였던 아픈 과거를 함께 느낄 수 있다. 오대산 탐방 과정은 국립공원공단 누리집에서 예약을 받으며 선재길 탐방 과정은 매주 토요일 1차례(오전 10시) 진행한다. 

조민규 기자 kioo@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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