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민족을 대표하는 것은 언어와 글, 그림, 음악 등으로 대표되는 문화다. 그렇다면 이(異) 문화를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무얼까. 바로 음식이다.
한식(韓食). 우리 나라의 음식은 많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이른바 집밥을 비롯해 궁중음식, 토속 음식까지 파고 들어가자면 끝이 없다. 그러나 대표성을 띈 음식은 손에 꼽는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묻는다면 열이면 열 김치를 떠올릴 것이다. 다만 한식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김치가 꼽힐 수는 있지만, 김치가 한식을 대표할 수는 없다.
최근 정부는 한식의 경쟁력을 높이고자 해외 우수 한식당을 지정하고 관련 전문인력 양성기관을 운영토록 하는 내용의 ‘한식 진흥법’을 공포했다. 그간 한식 정책의 경우 식품산업진흥법 등을 토대로 사업을 추진해야 했기 때문에 법적·제도적 기반이 취약해 지속적인 발굴과 추진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년 8월 시행되는 한식 진흥법이 효과를 볼지는 미지수다. ‘밀어줄’ 힘이 없기 때문이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한식 관련 예산은 100억5800만원으로 지난해 대비 18.9% 줄었다. 이는 농식품부 전체 예산에서 식품산업 부문의 예산이 줄었기 때문이다. 식품이 농식품부 예산에서 차지하는 부분을 불과 5% 수준에 불과하다.
예산이 부족하면, 자연스레 ‘선택과 집중’이 필연적이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김치에 목을 메고 있다.
그간 정부는 ‘한식=김치’ 구도를 벗어나지 못해왔다. 2010년에는 세계김치연구소를 설립했으며 2012년에는 ‘김치산업진흥원’을 제정했다. 2013년에는 한국김치와 김장문화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켰다. 2015년에는 중국 위생당국을 설득해 중국의 식품 위생기준을 개정토록 해 대중국 김치수출을 재개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또한 김치산업진흥 종합계획 2차 계획을 통해 2022년까지 국산김치 품질경쟁력 제고를 위한 우수종균 보급, 김치응용제품 개발·지원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여전히 한식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김치를 내세우는 그림이다. 그렇다면 세계 외식 시장에서 김치의 위치는 어떨까.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해외 한식당 점포 수는 2009년부터 2017년 사이 9253개에서 3만227개로 세 배 이상 껑충 뛰었다. 해외 호텔에 입점한 한식당도 최근 3년 사이 37개에서 123개로 늘어났다.
그러나 한식의 성공을 뒷받침한 것은 김치가 아니다. 한식진흥원이 해외 16개 주요 도시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해외에서 한식당을 찾은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은 비빔밥이 37%로 가장 많았다. 이어 치킨과 불고기, 전골, 잡채 등이었다.
우리에게 있어 김치는 한식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그러나 무대가 세계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이미 수년간 누적된 데이터는 이 사실을 충분히 증명하고 있다. 김치를 배제하자는 뜻이 아니라, 10년간 통하지 않았다면 다른 길을 찾자는 것이다.
가장 한국다운 음식은 가장 세계적인 음식이 아니다. 수백 포기의 김장을 하고 외국인을 불러다가 사진을 찍는 행사는 국가적 자기만족에 불과하다. 적어도 외국에서는, 김치를 버려야 한식이 산다.
조현우 기자 akg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