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일어나 음식을 하기로 했지만 남편은 잠에서 깨지 않는다. 시어머니의 도마질 소리에 불편함을 이기지 못하고 혼자 나간다. 처음 마주하는 ‘작은집’ 며느리와 인사하고 음식을 만든다. 뒤늦게 나온 남편은 “쟤가 뭘 할 줄 아느냐”는 시어머니의 만류에 부엌에서 쫓겨난다. 차례를 마친 후 식사를 하는 가족들. 남자들은 차례를 지냈던 큰 상에, 여자들은 작은 상에 각각 모여 앉아 식사한다.
인스타 웹툰 ‘며느라기’에 그려진 명절의 모습이다. 2만3000여명이 ‘좋아요’를 누르며 공감했다. ‘페미니즘’ 바람이 불고 있지만 성차별적인 명절 풍경은 여전하다.
여성에게만 전가되는 가사노동은 명절 불평등 1순위로 꼽힌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지난달 28일부터 지난 2일까지 조합원 65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추석 명절연휴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73.2%는 ‘명절 가사노동을 여성들이 주로하고 남성이 거드는 정도’라고 답했다. ‘온 가족이 공평하게 분담한다’ 21.5%였다.
명절에 시가 또는 처가를 찾는 순서 역시 평등하지 못했다. 지난 2월 이데일리가 사람인에 의뢰해 기혼 남녀 478명(남성 334명·여성 144명)을 대상으로 ‘남녀의 역할로 본 명절문화에 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명절에 시가 및 친정을 어떻게 방문하느냐(본가 및 처가를 어떻게 방문하느냐)’는 질문에 61.9%가 ‘시가를 먼저 방문한 후 친정에 간다(남성 응답자 기준: 본가를 먼저 방문한 후 처가에 간다)’고 밝혔다. 친정(처가)을 방문하지 않고 시가(본가)만 방문한다고 응답한 경우도 5.4%였다.
명절에 가족을 만나 사용하게 되는 불평등한 호칭도 문제다. 아내가 남편의 동기를 부를 때는 도련님, 아가씨 등의 존칭을 사용한다. 반면 남편은 아내의 동기를 처남, 처제 등으로 부른다.
“가부장적 명절 문화를 보며 비혼을 다짐한다”는 여성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 1월 발표한 ‘중국의 인구정책 변화와 한중 미혼여성의 결혼·출산 가치관 비교’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서울 거주 여성 응답자 중 18.3%는 결혼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결혼 제도가 남편 집안 중심이기 때문에’라고 답했다. 베이징 거주 여성 응답자 중 3.9%만 같은 답을 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직장을 다니는 김모(31)씨는 “명절 일주일 전부터 팀의 기혼 여성들이 ‘시댁에 가는 대신 출근하고 싶다’고 입을 모은다”며 “아직도 남아있는 가부장적 문화 때문에 결혼으로 잃게 될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온라인에서도 “명절마다 비혼·비출산 의지가 다져진다” “명절을 맞아 비혼파티를 준비하겠다” 등의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전문가는 ‘명절문화’가 달라진 사회상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영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명절에 만나는 가족은 부모의 동기 등이 포함된 ‘확대가족’”이라며 “평소 인식하던 가족의 개념과 다르니 불편하고 거리감이 느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가부장적인 한국 문화에서 며느리의 본가 가족은 ‘가족’의 개념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이는 갈등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