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난다고 손녀가 싫어해”…명절에 탑골공원 찾는 노인들

“냄새난다고 손녀가 싫어해”…명절에 탑골공원 찾는 노인들

대부분 오갈 데 없이 시간 보내려고 공원 찾아

기사승인 2019-09-14 00:08:00

추석 당일에도 탑골공원에는 많은 노인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탑골공원은 국내 최초의 도심 내 공원으로 알려져 있다. 1919년 3.1운동 당시 만세운동 참가자들이 운집해 만세운동의 발상지가 됐고 공원 내 팔각정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지금은 서울의 대표적인 노인들의 쉼터다.

아홉 시부터 운영하는 탑골공원. 오전 9시 반께 공원을 찾으니 20명쯤 되는 노인들이 각자 자리를 잡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 노인들은 가방에서 종이로 된 깔개를 챙겨 공원을 찾았다. 대다수가 공원 중앙에 있는 팔각정에 걸터앉거나 누워있었다. 혼자 온 노인들은 멍하니 있거나 이어폰을 귀에 꽂은 상태로 가만히 있었다.

탑골공원 바깥 편에는 장기를 두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10개가 넘는 장기판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장기를 뒀고, 그 주위의 사람들이 그들을 둘러싸서 구경했다. 훈수를 두다가 혼나는 노인도 있었고, 처음 만난 사람에게 장기를 권하고 겨루는 노인도 있었다.

오전 10시가 지날 무렵, 노인의 수는 50명 가까이 늘었다. 동대문에 사는 A 노인과 대화를 해보니 평소보다는 사람이 덜 모인 편이라고 말했다.  A 노인은 “집에서 차례 지내고 아들, 손자·손녀가 불편할 것 같아 빨리 공원으로 왔다”면서 “집에 있는 것보다 밖에서 바람 쐬고 친구들 만나 이야기하는 것이 더 편하다”고 말했다.

추석이 평소와 다른 바 없다는 노인도 있었다. 올해 80세인 B 노인은 “추석이라는 것이 오래간만에 애들 만나서 얘기하는 날인데 집구석이 그렇지 못하다”면서 “나이가 80세가 되면 오갈 데 없는 백수다. 손자, 손녀도 나를 나이 많고 냄새난다고 싫어한다”고 하소연했다. 이 노인은 어릴 적 꿈이 장수하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더 늦게 죽으면 불행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오전 11시가 조금 넘자, 이 노인은 “노인 무료급식소로 가야 한다”며 발길을 돌렸다. 

창덕궁 근처에 사는 D 노인은 “가족은 맨날 보는데 뭐...”라면서 “탑골공원과 종묘에서 시간을 자주 보낸다. 노인이 놀 만한 곳이 이런 데 밖에 없다”라고 추석임에도 공원에 나온 이유를 말해줬다. 종로에서 고시원 생활을 하는 E 노인은 “아버지로서 자식들 보기가 좀 그래서 이번 추석에도 만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점심시간이 지난 탑골공원에서는 정치 토론이 벌어졌다. 자신을 대학교수라고 밝힌 C 노인은 전직 대통령을 언급하며 나라가 이 모양이 된 이유에 대해 대통령이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갑론을박하며 다른 노인과 나라의 미래를 전망하기도 했다. 박정희 대통령에서부터 조국 법무부 장관에 대한 논의까지 주제는 다양했다. 지금 젊은 세대와 경험, 교육받은 내용 등이 달라서 말 섞기조차 힘들다는 의견도 있었다. 

추석을 맞아 공원을 찾은 외국인과 가족 단위 관광객들도 많았다. 이들은 셀카봉 등을 이용해 공원 내에서 사진을 찍거나 벤치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다. 밝은 분위기가 여기에 있는 노인들과 대비됐다.

노인들의 놀이터인 탑골공원. 명절임에도 여러 이유로 가족을 피해 많은 노인들이 나와 있었다. 실제 대다수는 오갈 데가 없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나온 것이었다. 최근 SBS 인기가요 유튜브에서 90년대와 00년대 영상을 보여주면서 사람들이 모여서 채팅한다고 ‘온라인 탑골공원’이라고 불리고 있다. 노인들에게도 다양한 놀이 공간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노상우 기자 nswreal@kukinews.com

노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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