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3조 슈퍼예산 본격 심의, 경기 살릴 묘수는

513조 슈퍼예산 본격 심의, 경기 살릴 묘수는

당·정, ‘소득주도성장’에 올인 vs 야, ‘친 시장·기업정책’이 해법… 충돌 예고

기사승인 2019-10-23 01:00:00

총지출 500조원을 사상 처음으로 돌파한 ‘슈퍼예산’에 대한 심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경기부양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두고 여·야가 시작부터 삭감과 증액 사이에서 극명한 견해차를 보이며 강하게 충돌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와 정부, 집권여당은 대규모 예산편성을 통한 정부주도적 경기부양정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국회를 찾아 예산안 시정연설을 통해 ‘혁신적 포용국가’, ‘함께 잘 사는 시대’를 만들기 위해 과감한 예산편성으로 대외적 경제파고를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협조해줄 것을 당부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원내대변인은 대통령 시정연설 이후 “미중 무역분쟁 및 일본의 수출규제 등 경기 하방리스크가 큰 상황에서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 또한 저성장과 양극화, 일자리, 저출산·고령화 등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확장예산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논평하며 야당의 협조를 촉구했다.

심지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22일 오전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올해 대비 9.3% 늘린 513조5000억원 규모의 예산안 심의과정에서 정부 예산안의 취지와 구조, 내용이 최대한 유지되도록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야할 것이라고 주문해 정부와 청와대의 의지가 국내시장과 경제에 오롯이 반영될 수 있도록 힘써달라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일련의 요구는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혹은 2015년 그리스발 ‘유로존 경제위기’와 비견될 세계적 경기둔화 등 대외경제여건의 악화에, 인구구조변화와 저소득·저성장으로 대변되는 국내경기침체의 장기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돈을 풀어 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국민의 소득을 높여 경기를 활성화시켜야한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반해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한 야당은 현 정권이 추구하는 ‘소득주도성장’ 기조를 유지한 상황에서 ‘확장적 재정정책’은 그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며 국민부담만 가중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시정연설 직후 열린 의원총회에서 “문 대통령이 최근 경제현장도 다니고 기업도 만나고 해서 혹시나 하는 일말의 기대 있었다. 하지만 오늘 연설을 요약하면 빚을 내서라도 내 맘대로 하겠다는 것”이라며 “이번 정기국회에 나라의 운명이 걸렸다. 문재인 정권의 무모한 포퓰리즘 망국 예산을 막아야 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예결위 한국당 간사인 이종배 의원도 “내년도 예산은 사상 최대의 적자국채를 찍어내고 통합 재정수지도 적자 전환하는 등 재정건전성에 빨간불을 켜는 것”이라며 “통계 왜곡형 단기 일자리, 소득주도 성장을 위한 예산, 선거용 선심성 예산, 대북 퍼주기 예산, 법적 근거 없는 사업 예산 등을 찾아내 삭감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본격적인 예산안 심사에 앞서 22일 열린 사실상 ‘전초전’에서도 이 같은 양상은 극명하게 드러났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대통령 시정연설 이후 개최한 ‘2020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공청회’에 출석한 전문가들 간, 여야 의원들 간에도 의견이 갈렸다.

조영철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 때 이명박 정부는 막대한 적자를 감수하고 확장적 재정정책을 썼고 그 덕에 신속하게 위기에서 극복할 수 있었다”면서 “경제 불황에서 정부는 적자를 감수하는 확장적 재정정책을 적극적으로 써야 한다는 것은 경제학의 ABC다. 오히려 9.3%는 충분치 않다”고 주장했다.

이어 “IMF 등 세계적인 기구들이 최악의 상황이 될 것이라고 한다. 다만 인상반영된 40조원을 삭감한다면 내년 순수 경제성장률은 1.3~1.5%로 떨어질 것이다. 확장적 재정편성이 필요하다는 반증”이라며 “불필요한 예산은 감액해야하지만 확장률이 떨어지면 복지지출은 늘고 조세수입은 더 떨어져 경기회복을 기대하긴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조 수석연구위원의 주장에 공감하며 “대외적 경제상황이 퍼펙트 스톰급이다. 오히려 내년의 확장적 예산이 너무 적지 않느냐고 생각한다. 충분치 않은 예산 중 어디에 집중해서 써야할지를 고민해야할 때”라고 정부의 확정적 재정정책이 결코 많지 않지만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반면 양준모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재정확대로는 경제를 살릴 수 없다. 그간 재정확대로 경제가 얼마나 성장했는지에 대한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국가채무와 이자지불액 증가를 문제 삼으며 “(현 제도와 경제상황이 유지될 때) 영원히 갚을 수 없는 빚을 미래세대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역사에 이름이 남지 않는 국회를 만들어주길 간청한다”고 반박했다.

현진권 국민대학교 경제학과 겸임교수도 “정부가 푸는 돈은 공짜라는 인식이 강하다. 노동을 하려는 유인을 줄인다. 많은 경우 공짜 돈이 확대되면 생산에 전념해야할 주체가 정부 돈을 받으려 집중하게 된다”면서 “재정여력이나 건전성을 판단할 때 공기업의 부채나 공무원연금 등의 적자는 반영되지 않았다. 이를 반영할 때 부채비율이 결코 낮지 않다”고 꼬집기도 했다.

한편 한국당은 513조5000억원 가량을 편상한 2020년도 정부예산안을 ‘세금중독예산’으로 규정하며 “선거용 선심성 예산과 통계왜곡용 단기 재정일자리 사업예산을 대폭 삭감하는데 주력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특히 일자리예산 2조5000억여원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실패를 국민 세금으로 무마하려는 방만예산으로 보고 삭감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한국당 정책위원회가 22일 발간한 ‘2020 회계연도 예산안 100대 문제사업’에서는 일자리안정자금지원금(2조1116억4000만원)과 국민취업지원제도(2771억2800만 원) 예산을 전액 삭감대상으로 삼았다. 이외에도 예산증가분의 50% 가량을 차지하는 복지·환경·국방 관련 예산에 대해서도 면밀히 검토해 민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과감히 잘라낼 것이라고 엄포하기도 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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