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의 안정적인 주거권 보장을 위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주인집이 경매에 넘어가면 세입자 10명 중 4명은 전세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돌려받지 못한 전세금은 총 3672억원, 세입자 1가구당 평균 3230만원 수준이다.
◇“세입자 보호법 시급”=세입자와 청년, 시민사회단체 등 100여 개 단체로 구성된 주택임대차보호법개정연대는 23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대 마지막 정기국회에서 정부와 여당이 합의한대로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하라”고 촉구했다.
발언에 나선 홈리스행동 이동현 활동가는 “20대 국회가 민생을 외면하고 정쟁에 몰두하는 동안 주거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한 41건의 법안이 국회에 발의되었지만 단 한 건도 처리되지 않았다”며 “그 중 12건은 세입자들의 안정적인 주거권 보장의 핵심인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인상률상한제가 포함되어 있다”며 법안의 빠른 처리를 주문했다.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김태근 변호사는 이어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임차인이 임대인의 일방적인 요구 조건을 수용하지 않고서는 임대차 계약을 갱신할 수 없는 구조”라며 “국회는 국민 생활의 기초인 주택임대차에 계약갱신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월세인상률상한제에 대해서는 “가계물가지수 상승률과 연동하면 임대인의 재산권 침해 문제는 제기될 여지가 없다”고 설명했다.
세상을바꾸는사회복지사 김혜미 간사는 “이번 국감에서 집이 경매로 넘어가면 세입자 10명 중 4명은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세입자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반드시 전월세 신고제 도입과 함께 보증금 보호가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1989년 임대기간이 1년에서 2년으로 늘어난 이후 30년째 주거세입자들은 2년마다 이사를 다녀야 하는 힘든 현실”이라며 “세입자들이 한 집에서 오래 살 수 있도록 주택임대차보호법이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10명 중 4명 전세금 못받아=실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박홍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대법원 경매 현황을 분석한 데 따르면 2015년부터 올해 8월까지 세입자를 둔 채 경매에 넘겨진 2만7930가구 가운데 40.7%(1만1363가구)에서 ‘임차 보증금(전세금) 미수’가 발생했다. 주인집이 경매를 거치는 과정에서 세입자 10명 중 4명꼴로 못 받은 전세금이 남았다는 얘기다.
이들이 돌려받지 못한 전세금은 총 3672억원, 세입자 1가구당 평균 3230만원 수준이다.
특히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소액임차인 최우선 변제금’조차 보전 받지 못하고 보증금 전액을 고스란히 떼인 경우도 11.4%(2만7390가구 중 3178가구)에 이르렀다. 현행 최우선 변제금 제도는 지역에 따라 5000만원∼1억1000만원(서울) 이하 전세금의 경우 1700만∼3700만원 범위에서 경매·공매 등 과정에서 다른 권리보다 앞서 세입자가 확보할 수 있다.
연도별로는 ▲2015년 1026가구 ▲2016년 851가구 ▲2017년 582가구 ▲2018년 482가구 ▲2019년(8월까지) 237가구가 한 푼의 전세금도 건지지 못했다. 4년 8개월간 보증금 전액 손실 가구 중 61.7%는 단독주택·다가구 등 ‘아파트 외 주택 거주자’였다. 올해만 따지면 아파트 외 세입자의 비중은 69.2%까지 치솟았다.
집주인에게 체납 세금이 있으면 경매가 아닌 공매가 이뤄지는데,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올해 9월까지 4년 9개월 동안 공매된 주인집 734가구에서 세입자가 전세금 253억원을 받지 못했다. 전세금을 모두 떼인 세입자는 177가구(명), 이들의 전세금 총액은 127억원으로 집계됐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