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법을 준수하기 위해 도입된 'EMR 셧다운제'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의료현장에서 다른사람의 아이디로 처방하는 경우가 많고, 이것이 의료법 위반임을 알면서도 법이 되레 불법을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다수 수련병원에서 시행 중인 ‘전자의무기록(EMR) 셧다운제’에 대한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중 70%가 넘는 전공의들이 ‘근무시간 외 본인 아이디를 통한 EMR 접속 제한이 있거나 처방이 불가능하다’, ‘타인의 아이디를 통한 처방 혹은 의무기록 행위를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즉, 전공의법을 지키려고 의료법 위반인 대리처방을 유도한다는 말이다.
아이디 공유 실태에 대해 수련 기관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 대해 ‘대부분 교수진이 알고 있고 암묵적인 합의가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절반에 가까웠다. 병원 운영을 위해 불법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
대전협은 “EMR 셧다운제는 전공의의 노동을 일률적으로 착취해 정당한 대가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실제 근무시간을 축소 보고할 수 있는 편법으로 작용한다”며 “마치 전공의 법이 명시하는 근로시간 조항을 준수해 근무하고 있다고 보고해야 하는 것이 이 사태를 낳게 한 원인 중 하나라고 판단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EMR 셧다운제를 운영 중인 의료기관은 "제도 운용 이전부터 전공의 대표와 논의해왔다"고 해명했다. A병원 관계자는 “본인이 근무시간을 입력하게끔 해 부작용을 최소화하고자 했다”며 “시간을 일률적으로 정하지 않고 각 과에 따라 조절했다. 전공의법에 따라 주80 시간은 지키려 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타 병원의 사례를 보고 제도를 도입했지만, 전공의마다 수련환경이 달라 지키기 어렵다”며 “수술 중에 시간이 끝났으니 나갈 수도 없고, 응급사태 상황에 퇴근하겠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80시간 이상되는 근무시간에 대한 수당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이에 대한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또 B병원 관계자는 “사유를 입력하면 아이디를 풀 수 있다. 시간 외 수당도 지급하고 있고 추가되는 근무시간도 기록하고 있다”고 밝혔다. C병원 인사는 “법을 지키려 강경하게 진행하고 있다. 근무시간을 확인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을 뿐 전공의들의 근무시간이 주 80시간을 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지현 대전협회장은 “전공의법에 걸리지 않으려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며 “서류상 지켜진 주 80시간은 아무 의미도 없고 전공의법 취지에도 어긋난다. 전공의의 노력을 무시하는 행위로 EMR 셧다운제는 폐지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지난해보다 올해 전공의법 준수가 잘 됐다고 하는 것은 전산 처리에 불과한 잘못된 통계”라며 “EMR 셧다운제로 초과근무 시 받을 수 있는 임금도 받을 수도 없고 다른 아이디로 처방했을 때 책임관계도 모호해 환자 안전 문제도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수련환경을 개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각 병원 전공의 대표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면서까지 잘못된 행태를 지적했다. 대전협은 앞으로도 이 사안에 대해 추적관찰하고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노상우 기자 nswrea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