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수목극 ‘어쩌다 발견한 하루’(이하 ‘어하루’)가 심상치 않다. 시청률은 3~4%(닐슨코리아 기준)대를 오가고 있지만, 화제성이 대단하다. 이 드라마는 지난 29일 분석 업체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이 발표한 10월 4주차 TV드라마 화제성 순위에서 정상에 올랐다. 2주 연속 1위다.
이 조사 결과는 지난 21일부터 27일까지 방송 중이거나 방송 예정인 한국 드라마 26편을 두고 뉴스 기사, 블로그와 커뮤니티, 동영상 사이트, SNS 등에서 발생한 네티즌 반응을 분석한 것이다. 온라인상에서 작품에 관해 이야기하고 재생산하는 시청자가 많다고 볼 수 있다.
‘어하루’는 출발 당시 기대보다 우려를 받았던 작품이다. 만화 속 인물이 자아를 갖게 된다는 설정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경험이 많지 않은 신예배우들을 주연으로 기용한 것도 모험이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베일을 벗자, 약점으로 여겨졌던 것들이 강점으로 뒤바뀌었다.
■ 스테이지와 섀도, 상상력이 만들어낸 신세계
‘어하루’는 자신이 사는 곳이 만화 속 세상이며 자신은 조연임을 자각한 고교생 은단오(김혜윤)가 엑스트라 하루(로운)와 함께 정해진 역할을 거부하고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모험을 그린 드라마다. 인물들이 존재하는 세상은 작가가 정해준 대로 행동할 수 있는 스테이지와 캐릭터가 자아를 가지고 움직일 수 있는 섀도로 나뉜다. 만화 속 캐릭터가 살아 움직인다는 점은 앞서 방송됐던 MBC 드라마 ‘더블유’(W)와 비슷하지만, 그보다 세계관에 대한 설정이 분명하다. 시청자는 규칙이 있는 게임을 진행하는 자세로 드라마를 지켜볼 수 있다. 방송 후에 드라마를 두고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 매력적인 캐릭터·열일하는 배우들
은단오를 연기하는 김혜윤은 ‘어하루’에서 맞춤옷을 입은 모양새다. JTBC 드라마 ‘SKY 캐슬’에서 강예서 역을 맡아 호평받았던 그는 ‘어하루’서 운명을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단오를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로운과 이재욱, 이나은, 정건주, 김영대, 이태리 등도 만화적 상상력이 가미된 작품의 분위기에 맞춰 흥미로운 캐릭터를 선보이고 있다.
스테이지와 섀도에서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처럼 변하는 배우들을 보는 재미도 있다. 은단오는 스테이지에서 자신의 마음대로 말을 할 수 없어 답답해하고, 단역에 가까웠던 하루는 이름과 자아가 생긴 후 차차 변하기 시작한다. 스테이지와 섀도의 법칙을 알게 된 백경(이재욱)은 섀도에서 아버지에게 서슴지 않고 대들다가 스테이지에서 순한 양이 되기도 한다.
■ ‘어하루’로 발견한 지상파 드라마의 방향성
장기간 드라마 부진에 시달려온 지상파 채널에 ‘어하루’는 새로운 길을 열 수 있는 힌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정한 시청층의 취향을 반영한 완성도 있는 작품은 열렬한 고정 팬덤을 형성하기 쉽고, 이는 OTT 콘텐츠 구매 등 또 다른 소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어하루’가 보여준 덕분이다. 지난 9일 방송한 ‘어하루’ 5~8회분은 국내 OTT 플랫폼 웨이브(WAVVE)에서 34만 명이 넘는 이용자 수를 기록하며 주간 조회수 1위를 차지했다. 중화권 반응도 뜨겁다. 중국 최대 SNS 웨이보에서 높은 검색 순위를 기록했고, 대만에서도 OTT와 방영권 계약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세현 기자 inout@kukinews.com